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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Nov 27. 2022

달리 할말이 없다.

나 자신으로 사는 삶

언제부터인가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코로나 이후 3년이라는 긴 공백기를 지나서 유럽에서 인솔하면서 긴장감과 스트레스로 생긴 증상이다. 가만히 있어도 가슴 뛰는 나를 보면서 불안하면서도 비로소 나를 느끼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증상은 한 팀 두 팀 여행을 진행하면서 곧 사라졌지만 달리를 만나야 한다는 욕망으로 이어졌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자신이 자신으로써 살고 있다는 사실에 황홀감을 느낀다는 달리의 이야기를 떠 올리면서 내가 나로 사는 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상기하면서 달리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달리의 고향이자 무덤이 있는 피게레스까지는 바르셀로나에서 고속열차로 1시간 거리이다.



기차에서 내려 평화로운 시골 마을을 20분쯤 거닐자 노년에 달리가 폐허가 된 마을 극장을 자신의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달리 극장이 나타났다.  



생명과 부활의 상징인 계란과 자주색 벽에 인간의 배설물인 똥을 금색으로 치장한 극장으로 입장하자 달리가 꿈속에서 보았다던 장면이 안뜰을 가득 메우고 있다.



캐딜락 위로 원시 동굴에서 발견된 최초의 비너스 상이 서 있고 그 뒤의 야자수 나무 위로 르네상스 최고의 걸작품인 미켈란젤로의 <반항하는 노예상>이 보인다.


노예상 위로 바닷물이 뚝뚝 떨어지는 코발트 빛의 배가 돛대를 높인 채 하늘을 날고 있으며 그 주위로 오스카 상패를 연상시키는 금빛 여인들이 반쪽 얼굴을 하고 손을 들어 찬양하고 있다.


원시시대와 르네상스의 대작들이 현대의 상징인 자동차와 배와 어우러져 인간의 꿈과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을 금색 인간들이 찬양하고 있는 듯하다.  


뜰을 지나 극장 안으로 입장하자 정면에 달리의 대형 자화상이 고개를 숙인 채 창밖의 작품으로 향하고 있다.



그의 머리는 깨지기 시작했으며 가슴은 구멍이 난 채 뚫려 있지만 자신이 간직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의 어깨뒤로 영원함과 죽음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카탈루냐 지방의 적막한 절벽들이 보이고 자화상 밑으로 유아적 자기 이미지와 구멍에서 버려진 잔해들이 그를  더욱 외롭고 슬프게 만들고 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삶을 버티고 있다.


달리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 화가로서의 길에 들어섰다. 학창 시절 독재 체제를 비판하며 감옥에 투옥되기도 하지만 시험 중 부정행위로 퇴학당하는 듯 인간의 이중성을 일찍부터 스스로 깨쳤다.


성인이 되어 파리에서 피카소의 영향을 받으며 입체파 화가의 길로 들어서지만 곧 프로이트의 영향으로 초현실주의 화가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았다.


그가 상상하거나 꿈에서 본 것을 현실적인 배경에 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인상을 주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기억의 지속>이다.  



그는 치즈처럼 녹아내리는 불멸의 시간 속에 자신의 옆모습을 왜곡한 자신을 보여주는데 왠지 낯설지가 않다. 저 멀리 바다와 절벽이 사실성과 그리움을 더욱 진하게 한다.


본관을 지나 층층이 전시되어 있는 그의 작품 중에서 그가 마지막 사랑했던 갈라의 모습이 눈에 띈다.  



젊은 시절 순수한 초현실주의 이상에 의거해 자본주의와 독재정권에 맞서다가 평생의 연인인 갈라를 만나 뉴욕에서 승승장구하며 달리는 변심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링컨>과 <메이 웨스트>이다.  


먼저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링컨의 자화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갈라의 뒷모습이 이중적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매이웨스트의 방으로 입장하면 1930년대 세계적인 섹스심벌이었던 메이 웨스트의 입술로 만든 소파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소파를 지나 지나 조그만 계단을 오르자 그녀의 금발 안으로 그녀의 모습이 연상된다.


뉴욕에서의 물질적 풍요와 유명세에 모든 동료들이 그와 갈라와 비난하자 그는 부모님과 피카소보다 갈라를 사랑한다며 엽기적인 행동을 하며 세상을 조롱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천지창조>이다.  



수염난 달리가 두 손을 들어 세상을 보여준다. 그가 창조한 세상은 작고 건조하지만 그의 모습은 원색과 압축법으로  화려하면서 생동감이 넘친다.  


이어서 밀로의 비너스와 미켈란젤로의 모세 조각상 그리고 밀레의 만종이 그의 손을 통해 새롭게 탄생했다.



이제 그에게 정치적인 구호와 이상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명작들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으며 오직 갈라에게만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끝내 자신의 욕정을 못 누르고 또 다시 젊은 청년들과 바람을 피자 둘의 관계는 끝났으며 달리는 정신 착란과 노환으로 쓸쓸히 죽었다.


갈라가 치매로 죽은 지 2년 후의 일이다.



평생 자신으로 살았던 달리의 엽기적인 모습을 보면서 다시 중앙 로비로 나오니 커다란 둥근 유리 지붕이 달리의 거대한 자화상을 비추고 있다.



고대로부터 둥근 천장인 로톤다 밑에는 신이 있었다. 달리는 고개 숙인 채 머리가 깨지고 세상살이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결국 스스로 신이 되었다.


이곳 지하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어 묻혀 있는 달리는 여행자에게 말한다.


한 순간이라도 당신 자신으로서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신을 만나서 구원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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