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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Feb 06. 2023

여행의 정리

버티는 일상의 소중함

바르셀로나의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2주 전까지만 해도 겉옷을 입지 않아도 따뜻했는데 리스본에서 앞 팀을 보내고 다음 팀의 출발지점인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니 바람이 매섭고 날씨가 차다.  


오늘 방문한 구엘공원은 강풍으로 임시 휴업을 해서 내일 표를 바꾸어 입장해야 했다.


나의 입장에서 여행 일정은 늘 반복되지만 새로운 여행자와 매일 변하는 날씨로 늘 새로운 일상이 다가왔다.


특히 반짝반짝 빛나는 맑은 날씨로 일정이 시작되는 날이면 진심으로 날씨에 감사하며 그 하루를 즐겼으며,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나름의 낭만과 운치를 즐기려 노력했다.


그리고 겨울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에 있어서 무엇보다 날씨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다.


코로나 이후 지금까지 서유럽을 비롯하여 동유럽과 북유럽 그리고 스페인 포르투갈 등 10팀을 인솔하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지나갔다.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일상에 집중하며 여행을 즐기는 분이 있는가하면 과거의 자신에 갇혀 여행 초기에 허둥되지만 차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며 안정감을 찾아가는 분들의 모습도 보인다.


나 역시 오랫동안 출장으로 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구정 설에도 자리를 비우자 평생 처음 보고 싶다는 어머니의 음성을 전화로 들었으며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아내의 타박도 듣게 되었다.


얼마 전 함께 프라하를 여행했던 친구가 젊은 나이에 치매로 요양병원에 들어갔다는 소식과 오래전 서유럽을 여행하며 가장 활달하시던 분이 요실금과 변실금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한 동안 멍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반면 초등학교 은사님이 같은 유럽에서 여행 중이시라며 만나게 되면 맛있는 밥 한 끼를 함께하자는 소식으로 마음이 들뜨는가 하면 20년 넘게 오해로 연락이 안 되었던 선배의 연락으로 마음속 상처가 아물어지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매일매일 새롭게 벌어지는 여행 인솔은 나에게 하루하루의 깊이를 느끼게 했다.


그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8개월이 넘어서자 포기하지 않고 힘들게 버텼던 하루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충만한 시간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8개월을 정신없이 인솔하며 귀국해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삶의 원점으로 돌아온 것처럼 텅 빈 감정이 쏟아졌다.


아직도 여행사에 복귀 못한 동료들의 한숨에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여행이 나와 세상에 어떤 가치를 남기는지 한 순간에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당분간 쉬기로 했다.



지난 여행 중에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온 어머니가 초등학생에게 앞으로 여행 갈래 학원갈래 묻자 학원 간다고 대답하여 함께한 여행자들이 한바탕 신나게 웃은 기억이 있다. 그만큼 여행이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많은 돈과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고 장거리 비행과 매일의 잠자리와 먹거리가 바뀌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사람들이 여행하는 이유는 일상을 떠나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이다.


또한 이번 생애 다시 만날 수 없는 새로운 일상을 접하며 그 일상을 즐기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여행의 이유는 익숙한 일상에 파묻혀 고군분투하는 자신을 새로운 일상에서 만나서 위로하기 위해서이다.


행복과 아픔이 교차하는 어린시절과 사춘기를 보내고 사회로 나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고 좋은 사람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그 평범한 일상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힘들게 버티며 노력하는 자신을 만나서 선물을 주고 안아주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  



자신을 사랑하며 아름다운 삶을 위해 여행을 하는 분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세상은 보다 아름다워지리라 생각하며  길위에  자신도 게속 버티고 있기를 진심으로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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