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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Feb 20. 2023

영웅

평범함 속에 위대함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는 벨라스케스이다. 그의 작품 <시녀들>과 함께 관람객을 사로잡는 작품이 <술꾼들 - 바쿠스의 승리>이다.  



작품에서 술의 신 바쿠스가 술꾼들에 둘러싸여 그들 중 한 명에게 승리의 화관을 수여하고 있다. 냉혹한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바쿠스는 그가 만든 술로 인간들에게 감성적이며 낭만적인 해방감을 맛보게 했다. 물론 술이 지나치면 인간은 타락하고 주정뱅이가 된다는 함정도 함께 도사리고 있다.


바로크 특유의 극적인  순간을 보여주는  작품에서 벨라스케스는 술의 신인 바쿠스를 인간과 같이 평범하면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단지 바쿠스가 신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는 신들처럼 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뿐이다.


작품 전체적으로 벨라스케스는 인간들과 바쿠스의 표정을 사실적인 흥겨움이 묻어날 정도로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신이지만 현실세상에서 인간들의 무리 속에 같이 즐기고 있는 바쿠스를 통해 평범함 속에 신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다음 전시실에 보이는 벨사스케스의 작품인 <불카누스의 대장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품에서 자신의 아내인 비너스가 전쟁의 신인 마르스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태양의 신인 아폴로가 불카누스에게 이야기를 해주자 대장간에서 일하고 있는 불카누스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있다.


그런데 불카누스는 신이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졌으며 인간처럼 놀라고 있다.


작품 전체적으로 생생한 얼굴표정과 사실적인 신체의 표현에서 역시 평범한 현실 속에 신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프라도 미술관 2층 중앙에 전시되어 있어 프라도 미술관을 가이드할 때마다 가장 많이 마주치는 작품이 티치아노의 <카를 5세>이다.  


살아생전에 부와 명예를 누린 베네치아 출생의 티치아노는 당시 유행하던 사실적인 형태에 명쾌한 색감을 더해 화려하고 역동적인 걸작을 탄생시키며 당시 카를 5세나 프랑수아 1세를 비롯한 각 국의 왕들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을 그릴 때  티치아노가 실수로 붓을 떨어뜨리자 카를 5세가 허리를 굽혀 붓을 주워서 직접 건네며 티치아노는 황제의 시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당대에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았다.


작품의 주인공인 카를 5세는 유럽 최고의 금수저 출신으로 오늘날의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반 이상을 차지한 왕이었다. 합스부르크가의 황제인 그는 유럽을 통일시키려는 야심을 가지고 평생 노력했으나 그의 생전에 단 한 뼘도 영토를 늘리지 못했다.


오히려 가톨릭 군주인 그는 이슬람 세력과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신교로부터 자신의 영토를 보호하는데 평생을 보내야 했다.



작품에서 신교와의 뮐베르크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카를 5세는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자신의 왕국으로 귀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들고 있는 창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한 고귀한 성물이며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세상에서 단 한벌뿐이 고급갑옷으로 티치아노는 그 특유의 기법으로 사실적이면 섬세하게 이를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압도적인 것은 노을 지는 하늘이다. 티치아노는 붉게 노을 지는 하늘을 그 특유의 사실적이면서 화려한 색감으로 그려내며 작품의 주인공인 카를 5세의 모습을 장엄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벨라스케스는 그 특유의 색감과 빛으로 카를 5세의 얼굴에 승리의 영광뿐만 아니라 전쟁의 피로감과 허망감 그리고 고독까지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의 모습에서 평생 꿈을 꾸며 살아오지만 평범한 현실과 일상에 갇힌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비록 지쳐있지만 붉게 물든 노을과 함께 그 영웅적인 면모가 반짝거리는 이 작품에서 매일 지루하게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 속에 우리 역시 위대함을 갖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위대함 속에 평범함이 있고
평범함 속에 위대함이 있다



프라도 미술관을 나설 때마다 평범한 일상 속에 신이 있다는 벨라스케스의 작품이 내내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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