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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Mar 20. 2023

카르투하 수도원

기독교판 알함브라

알람브라 궁전을 둘러보고 누에바 광장에 있는 식당에서 알함브라 맥주와 타파스를 점심으로 즐긴 후 15세기부터 시작하여 17세기에 완성한 카르투하 수도원으로 향했다.


돌로 덮인 수도원 정문과 광장을 지나 대리석 계단을 오르니 카르투하 수도원 입구가 나온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늘 한가한 수도원의 입구를 지나자 고요와 평화가 넘치는 정원이 여행자를 반긴다.  



묵상과 기도로 수도사들이 산책하는 중앙 정원을 천천히 한 바퀴 돌고 나서 아무 의자에 앉아 코발트 빛 하늘아래 오후 햇살을 멍하니 즐긴다.  


느린 오후의 시간 속에 느린 평화와 안식이 세속과 욕심에 찌든 여행자의 마음을 호수처럼 맑게 한다.  


중앙정원에서 제일 처음 만나는 아치형 문으로 들어서자 수도원의 식당이 나온다.



중세시대 후반 세속화된 기독교를 버리고 청빈과 명상 그리고 노동으로 믿음을 실천한 수도사들이 사용한 식당의 정면에 최후의 만찬을 보여주는 성화가 있다.  


성화 속 테이블에는 최후의 만찬에 가장 전형적인 양고기 외에 빵과 물만이 놓여 있다.


1810년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쫒겨난 수도사가 기록한 문헌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주일과 연회가 있는 날에만 모두 모여 식사를 하였다.
설교단 위에서 깨끗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성경의 구절들을 읽어주는 다미안 신부를 제외하고는 식사는 엄격한침묵 속에서 이루어졌었다.

사제복이 오래된 나무로 된 테이블에 쓸리는 소리, 식기가 그릇에 닿으며 내는 소리 또는 요리사 형제의 서툴거나 혹은 조용한 발소리가 주님의 말씀에 선율을 불어넣곤 했다.


식당을 나와 소규모 기도실과 회의실을 지나면 수도원 대성당이 나온다. 소박하고 검소한 대성당의 입구를 지나자 감탄이 절로 나오는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의 실내가 순례자를 압도한다.



16세기에 지어진 대성당은 신자들을 위한 뒷공간과 평수도사를 위한 성가대석 그리고 수도사들을 위한 중앙 제단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바로크식 장식과 조각 그리고 성화들로 압도적인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다.


밖은 검소하지만 안은 경이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사는 수도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성당은 성속의 묘한 일체감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수도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성가대석 세 번째 의자에 내 자리가 있다. 찬송과 기도를하면서 나는 이집트로의 탈출에서 어린 아들의 갈증을 달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를 찬양했다. 간소한 음식들은 떨어져 가고… 길은 길기만 하다.


중앙제단 뒤로 돌아가면 감동과 경이로움은 물론 천국의 모습을 재현한 성소가 나온다.



18세기 코르도바 출신의 예술가인 우르타도가 건축한 이곳은 건축과 회화 그리고 조각이 하나의 작품처럼 이어지며 빵과 포도주로 표현된 예수님의 몸과 피를 찬양하고 있다. 그 어떤 것도 멈춰 선 것이 없는 바로크식 조각들 위로 빛이 내려와 온 실내를 경건하게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당에서 가장 화려한 곳 중의 하나인 성구 보관실로 들어선다.



우아함과 완벽함을 잃지 않은 채 바로크 건축의 백미를 보여주는 성구실은 대리석과 목재 그리고 석고와 성화들이 하나님의 빛을 통하여 하나로 합쳐져 있다.



성구 보관실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작품은 호세 데 모라가 만든 성 브루노 조각상이다. 역사가인 안토니오는 이 작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성 브루노 조각상의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모든 것이 새어나가고, 증발하고,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그 내부에는 불꽃 밖에 없다.


당시 수도사의 회고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신부님들과 평수도사 형제들이 휴식을 취하는 6 시와 회랑에 사람이 없고 총회의실에 회의나 모임이 없을 때면 나는 늘 성 부르노의 작은 조각상을 보러 왔다.

그때마다 나의 헛된 생각들은 잊혔고 그의 시선은 내게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내가 카르투하 수도원에 두고 온 모든 것들 중에 성 브루노 조각만은 내 수도복 천 속에 숨겨 왔어야 했다.
그 조각을 보러 들르던 사람이 나뿐만 아니라 고독과 몽상에 빠진 모든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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