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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Feb 16. 2023

몸 여행

자연의 순환

오랜만에 뒷산에 올랐다.


숲과 흙길에서 싱그러운 기운이 넘친다. 산에 올라 가장 좋은 것은 고요함이다. 오직  자신에 집중하며 걷다 보면 묵혔던 고민들이 어느새 스르르 사라진다.


최근 원인 없이 가슴 뛰는 증상이 계속되어 건강 검진을 신청했다. 위와 대장 내시경을 비롯하여 심전도 검사와 혈액 검사 등을 신청했다.


병원에 전화를 하자 이틀 후 검사가 가능하다고 하여 병원으로 바로 갔는데 나보다 후에 엘리베이터를 탄 여자분이 먼저 내려 접수하여 이틀 후 한번 남은 검사를 가로챘다.


주말을 넘겨 화요일 오전 11시에 검사시간을 예약하니 월요일부터 흰 죽을 먹고 저녁은 금식해야 하며 약을 탄 물 1리터를 15분 간격으로 4번을 복용하라고 한다.


월요일 아침부터 죽을 먹기 시작하자 음식갈증이 시작되었다. 아무런 맛이 없는 흰 죽만을 먹다 보니 시원하면서 적당이 짠 물김치 한 조각이 그리웠다.


아침과 점심을 흰 죽으로 먹고 저녁이 되어 물과 더불어 주어진 약물만 먹다 보니 시원한 탄산수부터 평소에 먹지 않던 햄버거 등 온갖 음식이 생각이 났다. 적당히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다음날 아침 11시에 병원으로 갔다.


기본 검사를 하고 내시경 검사실로 가니 환복을 하고 개구리 자세로 누우라고 한다. 그리고 주사를 맞자 어느 순간 기억이 사라졌다.


2시간이 흘러서 눈을 뜨니 회복실에 누워 있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담당의사분에게 가니 위와 대장내시경을 보여주면서 용정이 있어 제거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정맥이 있다고 한다. 가슴이 이유 없이 뛰고 가끔 어지러움을 느끼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의사는 오늘 하루는 금식해야 하며 다시 이틀은 흰 죽만 먹으라고 한다.


집으로 돌아와 물만 먹고 계속 잠을 잤다. 그리고 아침에 깨어 달아난 입맛을 참으며 흰 죽을 먹고 출근하였다.


오전에 적당히 회사 업무를 마무리하고 산을 오른다. 산의 초입을 오를 동안 그동안 나를 거쳐갔던 다양하고 자극적인 음식들이 온 마음과 몸을 지배한다.


평소에 즐기지 않던 빵과 탄산수 등이 간절해지고 이는 약간의 우울감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먹는 것에 집착이 없었는데 먹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산을 오르다가 생각이 없어질 때쯤 갑자기 산이 보이기 시작하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향산의 흙들과 나무가 빼곡한 산을 걸으니 여기 산천초목이 나의 부모님을 빌어 나를 빚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버님은 현재 그곳으로 돌아가 계신다.


이곳에서 온 나 또한 이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람이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이다.


이 길이 힘들고 두려운 것은 내 안에 있는 욕심 때문이다.


그 욕심이 젊은 시절에는 삶의 원동력이 되지만 나이가 들면 자신을 갉아먹는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연에서 와서 돌아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주위와 함께 나누는 지혜가 보이고 마음이 가난한 삶이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와 내적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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