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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ug 16. 2020

프라도 미술관

천국과 지옥

인생을 보는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 생로병사의 삶을 선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옥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행복과 삶의 가치가 달라진다.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하면 어릴 적 사지선다 시험을 보듯 프라도를  대표하는 네 명의 화가가 제시하는 네 가지 삶의 관점을 받아볼 수 있다. 자신이 바라보는 삶의 관점이 네 명의 화가 중 누구와 유사한지 알아보면서 미술관을 관람하다 보면 더욱 재미있는 미술 감상을 할 수 있다.  



1819년에 문을 연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 왕실에서 수집한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16세기까지 스페인은 전쟁과 이슬람의 지배로 문화의 불모지로 남아 있었다.


이슬람을 몰아내고 국토회복 운동에 성공하자 당시 스페인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자신들이 지배하던 베네치아와 플랑드르 화가들을 스페인으로 보내어 스페인 미술의 발전을 도왔다.


이로 인해 프라도 미술관에는 스페인 화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플랑드르 지방인 벨기에와 네덜란드 화가의 작품과 베네치아를 비롯한 이탈리아 화가의 작품들도 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화가가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보쉬이다. 그의 대표작이 <쾌락의 정원>을 먼저 감상하자.



쾌락의 정원


이 작품은 세 폭 제단화라는 중세의 전형적인 그림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제단화로 쓰인 적은 없다. 작품의 왼쪽 날개는 에덴동산을 표현하고 있으며 중간 패널은 쾌락의 정원을, 오른쪽 날개는 지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과 왼쪽 날개를 닫으면 날개 위로 천지창조의 2일째 모습과 창조자의 모습이 보인다. 이틀째에 물과 육지를 나눈 창조자는 곧 죄로 가득한 인류의 모습이 올 것이라는 생각에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다.



제단화의 왼쪽 날개는 에덴의 동산으로 풍요로움이 넘친다. 선악의 구분도 없으며 인간과 다른 피조물의 구분도 없다.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들이 평화롭게 존재한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연못 속의 부리 달린 악마가 수도사의 모습으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다.


작품 중앙에 아담의 갈비뼈에서부터 막 태어난 이브가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아담과 대면하고 있다. 아담도 막 잠에서 깨어나 그의 앞에 서 있는 이브의 모습을 발견하며 놀라고 있다.



중앙 패널에는 넓은 대자연을 배경으로 온갖 피조물이 쾌락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중앙에는 호수에서 여인들이 목욕을 하고 있으며 그 주위로 말을 탄 남자들이 호수를 돌고 있다. 그 아래로 남녀가 성행위를 암시하는 몸짓들을 하고 있으며 인간보다 큰 딸기가 보인다.


작품에서 보이는 딸기와 포도 그리고 체리는 성의 덧없음을 상징하고 새들이 과일을 물고 인간에게 주면 인간들이 붕어처럼 받아먹으며 악마의 노예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물고기는 땅 위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보이며 온갖 동식물이 인간과 혼연일체 되어 쾌락을 즐기고 있다. 유토피아를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수많은 등장인물을 담기 위해 뒤에 있는 것은 작게 그리는 원근법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곳곳에 보이는 유리구슬 안 남녀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행복과 사랑을 상징하고 쥐와 물고기는 인간이 타락하여 악마의 모습으로 변한 것을 보여준다. 구슬 옆 올빼미는 중세에서 사탄을 상징한다.



오른쪽 날개는 지옥의 장면을 담고 있다. 화면 중앙에 차가운 빙판과 뜨거운 불벼락이 화면을 뒤덮고 있으며 얼음판에서 위태롭게 스케이트를 타거나 불나방처럼 불 속을 뛰어드는 인간의 무리들이 보인다.


화면 오른쪽으로는 수녀의 가운을 걸친 돼지가 서약서에 사인을 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며 괴물의 얼굴을 한 특수 기계 장치가 인간을 통과시켜 웅덩이로 빠뜨린다.


웅덩이 주위에 악보가 그려진 인간의 엉덩이가 보이며 그 옆으로 구토를 하는 인간도 보인다. 살아서 많이 먹은 사람은 먹은 것을 토해내야 한다고 악마가 협박하고 있다.


그 외 악기를 즐겼던 인간들은 악기에 매달려 고문을 당하고 있으며 도박을 즐겼던 사람들은 게임 도구로 전락하였으며 생전에 토끼 사냥을 즐겼던 인간은 토끼에게 오히려 사냥당하고 있다. 매우 창의적인 방식으로 지옥을 표현한 오른쪽 패널 중앙에는 달걀 껍데기 모양의 몸 옆으로 하얀 모자를 쓴 보쉬가 우리를 쳐다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있다.


일곱 가지 큰 죄


기독교에는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가 있다. 교만(Superbia), 인색(Avaritia), 음욕(Luxuria), 질투(Invidia), 탐식(Gula), 분노(Ira), 나태(Acedia)로, 그 첫 글자만 따서 ‘SALIGIA’라고 부르기도 한다.



작품에서 가장 아래쪽이 분노를 보여준다. 길거리에서 두 이웃이 모자와 나막신을 벗어버린 채 서로를 죽이려 칼을 휘두르고 있다. 그 오른쪽이 교만으로 실내에 고급 벽장과 은제 가재도구, 꽃병으로 장식되어 있는 가운데 허영에 들뜬 부자 여인이 마귀가 내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다. 그 위로는 음욕이 보인다. 두 쌍의 남녀가 어릿광대를 보면서 시간을 즐기고 있으며 잘 차려진 탁자와 술병 그리고 바닥에 뒹구는 악기들이 이들의 속된 유희를 드러낸다.



다음으로 성경과 묵주를 들고 교회에 가려고 잘 차려입은 여인이 깊은 잠에 든 남자를 깨워서 교회로 인도하려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게으름이 보인다. 그리고 이어서 어린아이가 보채고 있음에도 뚱뚱한 남자가 고기를 뜯으며 자신의 배 채우기에 여념이 없는 탐욕의 장면이 보인다. 성경에서 탐욕은 죄악 중 가장 으뜸으로 여겼다.


이어서 나타나는 장면이 인색이다. 어떤 부자가 재판관을 매수하여 가난한 이에게 돈을 지불하도록 명하는 모습이다. 그 뒤편으로 배심원들이 무관심 속에서 이를 묵인하는 있다. 마지막으로 질투가 보인다. 각각의 인물들이 언쟁을 벌이고 있으며, 뼈다귀를 보면서 이를 드러낸 채 짖어대는 두 마리의 개가 보인다. 이는 한 개의 뼈다귀는 두 마리 개가 나눌 수 없다는 네덜란드 속담에 근거하고 있다.


사각형 패널 위에 그려진 작품의 한가운데에는 큰 눈이 있다. 이는 하느님의 눈으로 중앙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 겪은 수난의 표징으로 자신의 상처를 보이고 있다. 그 아래에 Cave Cave Deus Videt’ 곧 <주의하라, 주의하라, 하느님께서 보고 계신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제 다음 작가의 작품으로 넘어가자. 그리스 크레타 섬 출신이어서 그리스 녀석이라는 뜻의 엘 그레코의 작품이 우리가 감상할 다음 작품이다.


엘 그레코는 일찍이 베네치아로 건너가 티치아노에게 회화를 배웠으며 이후 로마에서 몇 년 머문 후 궁정화가가 되기 위해 톨레도로 이주해 왔다. 비록 그는 궁중화가는 되지 못했지만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며 죽을 때까지 톨레도에서 살았다.


그는 뛰어난 소묘 실력과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은 인체 표현력 그리고 티치아노에게서 배운 색채 표현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삼위일체


이 작품은 엘 그레코가 톨레도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린 작품으로 톨레도 외곽에 있는 성당의 제단화 중 하나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 사람들이 보던 그림 속 예수는 거의 40일을 거의 굶은 채로 잡혀 채찍질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뼈가 앙상하고 피가 낭자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의 예수는 피가 아주 살짝 맺혀 있으며 건장하고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의 충격은 하나님이 쓴 관이 가톨릭이 아닌 그리스 정교회의 사제들이 쓰고 있는 관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당시 이 그림을 주문했던 추기경이 모자 부분을 수정해 달라고 했지만 엘 그레코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와 같이 앨 그레코는 그림에 관한 한 신념이 확고해 주문자로부터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심지어 소송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양치기들의 경배


이 작품은 엘 그레코가 자신의 무덤이 들어갈 톨레도의 산토 도밍고 성당의 가족 예배당에 걸어 두기 위해 그린 작품이다. 인간의 육체를 극단적으로 일그러뜨려 표현하는 전형적인 엘 그레코의 스타일의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작품 되었다.


작품에서 어두운 배경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러 온 목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 위로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라고 써진 띠를 들고 있는 천사들이 있다. 중심에 아기 예수가 있지만 등장인물 모두가 선명한 색채의 빛을 받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같은 주제로 그린 이전의 그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균형 잡힌 인체 비례와 조화로운 색채 그리고 합리적인 공간 표현은 발견되지 않는다. 인물들의 육체는 무게나 질감을 갖고 있지 듯 화면 위로 떠 있다.


엘 그레코는 무게를 가진 고체가 움직이는 느낌이 아니라 흔들리며 타오르는 불꽃처럼 위로 상승하는 느낌의 영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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