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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Jun 18. 2024

망산

살아남은 자의 슬픔

대학교에서 만난 동기 3명과 함께  통영으로 여행을 갔다.


처음 입학해서 남자 동기들 15명이 욕지도를 간 이래 지난30년간 남해와 제주 그리고 대마도와 유럽을 다녀왔다. 그 사이 점점 그 수가 줄어들어 이제 3명이 남았다.


바빠서 안 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도 있고 많이 아파서 못 오는 친구들도 있다.


미리 예약한 숙소는 바다가 보이는 넓고 깨끗한 곳이었다.  


저녁시간이라 숙소에 짐을 풀고 통영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다찌집으로 갔다. 1인분 4만 원 하는 다찌는 통영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는 동기와 더불어 4명이 먹기에 음식이 차고 넘쳤다.


싱싱한 회와 멍게 그리고 해삼 등 해산물은 물론이고 삶은 대게와 곱창등이 자리를 즐겁고 풍요롭게 했다. 처음으로 먹어보는 청각 냉국은 새콤함과 달콤함이 조화를 이루어 상상 이상의 맛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서 내장국밥을 먹었다.


내장국밥은 저렴한 가격은 물론 시원하고  깨끗한 국물맛과 부드러운 내장이 어우러져 해장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거제로 가서 망산을 올랐다.


오르는데 1시간이라 만만히 보고 거침없이 올랐는데 계속해서 나오는 오르막이 나를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동행한 동기들에게 먼저 가라고 이야기 하고 숨을 몰아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비 오는 듯한 땀을 흘리며 숨을 고르는데 그제야 울창한 숲과 먼바다가 보였다. 잠시후 새소리에 맞추어 시원힌 바람이 부는데 평생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인생의 달콤함이 밀려왔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산 정상을 못올라도 불안하지 않고 충만한 감정이 온몸을 감쌌다. 늘 산정상을 향한 삶을 살았던 나를 바라보며 지긋이 비웃었다.



같이 숨을 몰아쉬는 동기들에게 대한 미안함으로 힘을 내어 산 정상에 오르자 아름다운 한려 수도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지금껏 본 바다공원 중 가장 아름다운 전망이었다.


아득하고 꿈결 같은 전망 때문에 산의 이름이 망산이라고 한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한적한 도로에 있는 밥집에 들렀다. 테라스에 앉아서 오랫동안 밥과 술을 먹으며 음악을 들었다.


오후 햇살아래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는 이하이의 <한숨>과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새>가 우리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진다.


편하고 감미로운 시간들이 손아귀에서 스르르 빠져나가고 밤이 다가오자 우리는 말없이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점차 붉게 물들며 밀려드는 저녁노을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어느새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바닷속으로 빠진 반은 푸르고 반은 붉은 하늘은 여지껏 살아남은 우리에게 축복을 내리고 있었다. 그 황홀한 노을 속에서 우리는 킥킥거리며 삶의 노을을 만끽했다.


아픈 과거나 불안한 미래는 더 이상 우리를 가두지 못했다.우연과 필연이 서로 뒤섞여 쏜살같이 달리는 현재만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재의 아름다움에 물들어 가는 우리 자신을 서로 지켜보며 우리는 계속 키득거렸다.


다음날 박경리 기념관을 들렀다가 부산으로 왔다.



기념관 곳곳에 보이는 그분의 말씀이 우리의 여행을 마무리한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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