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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Sep 07. 2020

벨베데레 궁전 2

에곤 실레

황금시대를 지나 말년이 된 클림트는 빈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예술인이 되었다. 이때 한 전시실에서 젊은 에곤 실레를 만난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매독에 걸려 죽는 것을 보면서 평생 성과 죽음에 집착한 실레는 평소 성과 죽음을 그리던 클림트를 존경하였다. 클림트 역시 에곤 실레의 작품 속에 서 그의 고독한 정신세계와 천재성을 한 번에 알아본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면서 깊은 관계를 가져간다. 처음에는 실레가 클림트의 영향을 받지만 점차 실레는 클림트를 벗어나 자신의 세계로 나아간다.


벨베데레 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작품 <포옹>과 <가족>에서 에곤 실레의 세계를 만나 볼 수 있다.


먼저 그의 작품 <포옹>에서 근육질의 남자와 여자가 에곤 실레 특유의 비틀린 포즈로 안으며 화면 앞으로 클로즈업되어 있다. 덕분에 작품 속 남녀는 생동감을 주면서 꽉 찬 구도로 감상자를 화면 안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노란 담요 위, 구겨진 흰 시트에는 한 쌍의 연인이 팔을 감은 채 엉켜있다. 여자의 머리카락은 산발한 채 베개 너머로 흩어져 있으며 자신의 얼굴은 남자를 바라보지 않고 밑으로 숙이고 있다.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여자의 손가락은 클림트의 <키스>를 연상시키지만 떨림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힘을 주고 있어서 검지와 엄지가 벌어져 있다.


전라의 남녀가 서로 안고 있으나 고개를 돌리고 있으며 상반신만 밀착된 채 다리만 살짝 닿아있다. 하지만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단단히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 안고 있다는 것만으로 서로의 사랑과 믿음을 확인하는 이 작품은 결혼 생활에 대한 실레의 만족감을 보여주고 있다.    


1915년 에곤 실레는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한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성병인 매독에 걸려 죽은 이후로 성과 죽음 그리고 여자와 대해 극도의 혐오로 기나 긴 방황을 하였으며 그 끝에 찾아온 결혼이었다.


당시 그는 각종 전시회에서 성공을 거두며 승승장구하였지만 그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아내의 임신소식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인생의 기쁨을 느끼면서,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며 이 작품을 그린다.



작품 속에서 그의 얼굴은 가족의 일원으로 편안하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하지만 유럽을 휩쓴 스페인 독감으로 임신 6개월 된 아내 에디트가 사망하자 비탄에 잠긴 실레는 3일 후에 숨을 거둔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실레의 삶과 작품을 더 많이 감상하고 싶다면 빈의 레오폴드 미술관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 있는 그의 자화상을 보면 그가 살았던 치열한 삶이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잘생긴 외모에 성병으로 죽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광적으로 누드화에 집착했지만 그의 누드화는 에로틱하다기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거칠고 자괴감에 차 있다.



커다란 눈은 도발적으로 감정의 응축되어 있으며 비틀거리듯 구불구불한 그의 나신은 극심한 불안감과 연민을 자아낸다. 그는 명확한 윤곽선과 비자연적인 거친 색으로 몸이 표현하는 모든 가능성을 철저히 실험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내가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깨끗해지고 있다. 예술가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예술가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것은 싹이 트는 생명을 죽이는 살인행위이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죽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한다.


에곤 실레와 클림트는 같은 해에 죽었다. 클림트는 말년에 실레를 보면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한 에곤 실레의 색과 구도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억압과 슬픔을 보면서 클림트는 자신을 넘어서는 천재성을 그에게서 발견했다.


반면 실레에게 클림트는 유일하게 자신의 세계를 인정해주는 어른이었다. 그가 본 클림트는 자신처럼 세상의 이목에 신경 쓰지 않고 성적인 문제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 중 하나라고 주장하는 선배이자 유일한 동지였다.


1918년 55세의 나이로 클림트는 유명을 달리한다. 당시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죽는다. 그로부터 8개월 후 28세의 나이로 에곤 실레 역시 같은 병으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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