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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Sep 04. 2020

쉔부른 궁전 1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

유럽에서 가장 호화로운 궁전 중 하나인 쉔부른 궁전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으로 베르사유에 비길 만큼 화려한 규모를 자랑한다.


<아름다운 샘>을 뜻하는 쉔부른 궁전의 정원은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웅장한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져 있으며 1.7km에 달하는 면적에 분수와 대리석상 그리고 가로스 등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원을 지나 언덕에는 그리스 양식의 <글로리에테>라는  전승비가 있다. 18세기 중엽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이 건물은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했을 때 사령부로 사용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패전 후 막을 내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카를 1세가 제국의 종말을 선언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린 모차르트가 연주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여기서 여름에 진행하는 모차르트 콘서트를 볼 수도 있다.



쉔부른 궁전에는 극장과 예배당을 비롯해 무려 1,441개의 방이 있으며, 이 가운데 45개를 공개하고 있다. 궁전의 각 방은 우아하고 호화로운 로코코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18세기 후반 마리아 테레지아가 수집한 자기와 칠기 그리고 가구와 회화들로 채워져 있다.


궁전에서 가장 볼만한 곳은 그녀가 사용한 거실과 연회장인 대회랑 그리고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 정복 당시 사용한 방 등이다.


궁전을 입장하여 2층에 올라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친위대 방이 나온다.


1번 방인 친위대 방은 프란츠 요셉 황제의 친위병들이 황제의 거처로 가는 입구를 지키는 곳으로 오른쪽에 세라믹 난로로 난방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궁전 관리인들은 황제 가족이 방해받지 않도록, 그리고 방에 일체의 그을음이 묻지 않도록 궁전 내의 모든 난로들을 방 뒤쪽에 연결되어 있는 난방 복도에서 장작으로 불을 지펴 사용했다. 그리고 19 세기부터는 열풍 난방장치를  장착하였다가 1992년부터는 사용하지 않았다.


다음 2번 방 방인 당구 방은 프란츠 요셉 황제를 알현하려는 손님들의 대기실로 쓰였다. 황제는 일주일에 두 번씩 사람들을 접견하였다. 중앙에 있는 당구대는 군인들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사용했으며 벽에는 큰 그림 3 개가 있다.


그중 중간 그림은 1758년에 마리아 테레지아 훈장이 처음으로 수여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창설한 이 훈장은 황정의 첫 공훈 훈장이며 황실에서 수여하는 최고 훈장 중 하나로 꼽힌다. 좌우의 그림들은 훈장 창설 100 주년을 기념하는 것이다.


 

다음 3번 호두나무 방은 이 방의 벽을 장식하고 있는 값비싼 호두나무에서 따온 것이다. 이 방에서 프란츠 요셉 황제는 사람들을 접견했다. 프란츠 요셉 황제는 하루에 청원 또는 인사를 하기 위해 온 100명의 사람들을 접견하였다. 그는 한번 본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을 절대 잊어버리는 적이 없었으며 황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끝내는 접견은 보통 2,3 분 정도 걸렸다.


다음 방은 4번, 프란츠 요셉의 서재로 18세에 황제가 된 그는 이곳에서 엄청난 일과를 수행했다. 그는 새벽 5시부터 오른쪽에 보이는 자신의 책상에서 서류를 검토하였으며 식사도 책상에서 해결하며 하루 온종일의 시간을 서재에서 보냈다.


또한 황제는 소탈하여 화려한 방에서의 생활보다는 서재에서 가족의 그림이나 사진 그리고 아이들과 손자들의 선물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서재의 벽에 보이는 두 개의 큰 초상화 중 하나는 황제가 33 세 때의 모습이며, 다른 하나는 <시시>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신화적인 인물로 된 그의 아내가 된 엘리자벳 황후이다.



다음 5번 방은 프란츠 요셉의 침실로 황제의 일과는 이 침실에서 시작하였다.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였고 침대 왼쪽에 있는 기도대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답게 아침 기도를 올렸다. 철 침대는 이 오스트리아 황제의 검소하고 스파르타식이었던 생활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침대에서 황제는 1차 대전이 한창 치열하던 1916년에 68년간의 제국 통치를 끝으로 86 세의 생을 마감했다.



이어지는 세 개의 작은 방들은 엘리자벳 황비가 사용하던 방들이다. 서재로 사용했던 계단 위 복도의 별실에서 황비는 많은 편지들과 일기 그리고 시를 썼다.


특히 8번 방인 화장 방은 황비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던 곳이다. 엘리자벳은 그 시대 최고의 미인 중 한 명으로 자신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가꾸고 운동하는 것이 황비의 하루 일과였다. 그녀는 바닥까지 내려오는 길고 화려한 머리카락을 손질하느라 하루에 몇 시간씩 보냈다.


1837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엘리자벳은 엄격한 궁과는 거리가 먼 자유분방하고 명랑한 소녀로 성장했다. 그녀가 15세 되던 해 그녀의 언니와 결혼을 하기로 하고 방문한 오스트리아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 1세와 마주치게 된다.


첫눈에 반한 황제는 그녀에게 청혼을 하여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황후의 길을 걷게 된다. 17세에 황후가 된 그녀는 자유분방하게 자란 탓에 엄격한 궁정생활을 적응하지 못하였으며 잔소리가 심한 시어머니와의 잦은 불화가 있었다. 또한 황제로서의 일에만 몰두했던 무관심한 남편 때문에 그녀는 늘 외로웠다. 그래서 그녀는 여행을 자주 다녔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보고 자신의 외모를 꾸미는 데에 사용하였다.  


하지만 1857년 딸 소피를 병으로 떠나보내고, 1889년 아들 루돌프가 자살을 선택하면서 그녀는 점점 더 슬픔과 외로움 속으로 걸어갔다. 이후 그녀는 검은색 옷만 입고 다녔으며 이곳저곳을 떠돌며 병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1898년 9월 10일 제네바에서 산책을 하던 도중 이탈리아의 24세 무정부주의자 루체니가 휘두른 칼에 죽음을 맞이했다.  



다음 11번 방은 마리 앙뜨와네뜨의 방으로 그녀가 루이 16세와 결혼하여 파리로 간 후 이 방은 가족 식당으로 사용되었다. 가족 디너는 엄격한 궁정 의식에 맞게 이루어졌다. 식탁은 언제나 화려하게 꾸며졌고 중앙에는 꽃과 과일을 가득 채운 황금색 테이블 장식대가 세워졌다.


공식 디너 때는 프랑스 요리가 서빙되었고, 가족끼리 식사할 때는 프란츠 요셉 황제의 경우 비너 쉬니첼, 린츠 굴라쉬, 타펠쉬피츠나 저 유명한 카이저 쉬 마른 같은 비인 요리를 선호했다. 황제는 식탁 중앙에 자리 잡았고, 황비도 참석할 경우에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하지만 엘리자벳은 자신의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자주 식사를 걸렀으므로 황제와 같이 식사하는 일이 아주 드물었다. 가족 디너는 대개 저녁 6시에 시작하였고 3단에서 6단까지의 메뉴로 구성되었다. 원형 그대로 차려진 식탁에서 황실에서 사용하던 식기 세트들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14번 방인 황색 살롱부터 이 방부터 창으로 정원 쪽의 정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이 방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제네바 화가 리오 타르트의 파스텔화들로서 아주 사실적으로 서민층 아이들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들과 강한 대비를 이루는 것은 마리아 테레지아 아이들을 그린 전형적인 궁정식 초상화들인데 바로 다음 방에서 볼 수 있다. 다음 방에는 또한 궁정화가 마틴 판 마이텐스가 그린 헝가리 여왕으로서의 마리아 테레지아 초상화도 있다.



다음으로 16번 방으로 이동하면 거울의 방이 나온다.

거울의 방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가족을 위하여 소규모 연주회 등을 열 때 사용되었다. 1762 년에 바로 이 방에서 이제 겨우 6 살의 모차르트가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첫 연주를 하였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그때 알을 자랑스럽게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연주를 마치자
모차르트는 폐하의 무릎에 뛰어올라
목을 끌어안고
마구 키스를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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