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을 향해 열린 미술관
세상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인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너면 런던의 현대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이 나온다. 99m 높이의 굴뚝이 솟아 있는 옛 화력 발전소 건물의 외관을 그대로 사용하는 테이트 모던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현대미술관이다.
매년 500여만 명이 이곳을 찾는데 그중에는 현대 미술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 관광객들도 많다. 그 이유는 미술관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전망대 때문이다. 이 곳에 가면 세인트 폴 사원을 비롯하여 타워 브리지와 런던 아이 그리고 런던탑 등 런던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또한 가장 아름다운 런던의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내 중심지에 위치하는 대영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를 제치고 이 곳이 셋 중 방문자수가 최고인 이유는 따로 있다. 현대미술은 이해하기 힘들며 지식이 필요하다는 선입견에 반대하며 가능한 많은 사람이 쉽게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열린 미술관을 데이트 모던이 지금까지 지향해 왔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로 템즈강으로 이어지는 미술관 정문과 후문을 개방해 시민들이 둘러가지 않고 미술관을 가로질러 템즈강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이것은 미술관 방문이 아니라 템즈강을 가기 위한 사람들에게 데이트 모던의 로비이자 가장 중요한 전시 공간인 터빈 홀을 잠깐이라도 감상하게 만들었다.
미술관의 터빈 홀은 화력발전소 당시 터빈을 돌리는 곳으로 미술관에서 가장 큰 공간이다. 바닥부터 10층 높이의 천정까지 트여 있는 이곳에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단 한 명의 현대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이 곳에 전시된 작품으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올라퍼 엘리아슨의 <날씨 프로젝트>로 백열전구 300개로 이루어진 태양을 만들어 이 곳에 전시했다.
거대한 일몰을 바라보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태양은 황금빛으로 터빈 홀을 물들였다. 그리고 기계식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로운 안개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벽에 기대어 노을을 감상하기도 하고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기도 한다. 또한 천장에 달린 대형 거울을 통해 작품을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도 한다.
관객들의 참여와 경험으로 이루어지는 이 작품은 기존의 액자 속에 고정된 작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우리를 미지의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외 터빈 홀에 전시된 작품으로 콜롬비아의 여성 작가 도리스 살세도가 자연적 재난을 상징하는 대지진의 흔적을 전시했는가 하면 중국인 반체제 작가 아이 웨이웨이가 1억 개가 넘는 해바라기씨를 바닥에 전시해 개인이 전체의 이념을 위해 희생되는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터빈 홀을 지나 데이트 모던의 3층 상설 전시장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피카소 작품이다. 입체파 화가로 알려진 피카소의 입체주의 기법은 서양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세잔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세잔은 그의 정물화에서 물병을 그리면서 정면에서 보는 물병과 위에서 내려다보는 물병의 이미지를 하나로 합쳐 표현하고 있다. 또한 상단의 그릇에 담긴 과일들은 위에서 바라보는 시점을 가지고 있지만 오렌지는 정면에서 바라보는 시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영감을 받은 피카소는 사물의 바라보는 총체적을 바라보기 위해 한 시점이 아닌 여러 가지 시점으로 바라보는 입체적 기법을 발견했다. 그는 컵을 그린다면 위에서 본 컵과 옆에서 본 컵 그리고 아래에서 본 법을 한 화면에 동시에 담아냈다.
데이트 모던에 있는 그의 작품 <울고 있는 여인>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파리에서 활동했던 피카소에게 자신의 조국 스페인에서 들려오는 내전의 소식은 연일 공포와 죽음에 관련된 것이었다. 당시 피카소는 자신의 조국과 국민을 떠 올리면서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 울고 있는 여인의 얼굴을 분해한 뒤 재조립하는 피카소 특유의 입체적 기법으로 그려진 이 작품은 사실적으로 그렸을 때 보다 훨씬 더 전쟁의 참혹함을 잘 보여준다.
작품에서 검은색 테두리 선으로 인하여 얼굴과 손이 선명하게 강조되고 있다. 또한 우는 여인의 눈물 역시 그린 것 사실적인 것을 피하고 추상적으로 표현하며 흐르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오는 듯이 그렸다. 동화같이 소박하고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피카소의 걸작 중의 하나이다.
다음은 테이트 모던에서 가장 유명한 피카소 작품인 <세명의 댄스>를 감상하자.
2미터가 넘는 이 작품 앞에 서면 압도당하게 된다. <세 명의 댄서>가 관람객에게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작품의 크기뿐만 아니라 그림 안에 담긴 세 인물의 복합적인 감정 때문이다..
피카소는 사랑 때문에 자살한 친구를 회상하면서 이 작품을 그렸다. 당시 피카소는 1900년 20세기를 맞이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동료 화가인 카를로스 카사헤마스와 함께 파리로 간다. 어느 날 밤 두 사람은 순간의 쾌락을 위하여 매춘부들과 어울렸다. 그때 카사헤마스는 제르맨이라는 매춘부에게 깊이 빠지고 말았지만 제르맨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카사헤마스는 좌절과 근심에 빠졌다. 피카소는 상사병이 난 친구의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 그를 말라가로 데려갔지만 카사헤마스는 파리로 돌아갔다.
1901년 파리로 돌아간 카사헤마스는 제르맨을 비롯한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러 나갔다.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권총을 꺼내서 제르맨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빗나갔다. 새로 타깃을 바꾼 그는 이번에는 정확히 자기 머리에 대고 총을 쏘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즉사했다. 더욱 끔찍한 일은 얼마 후 그의 또 다른 친구인 피초트와 제르맨의 결혼이었다. 피카소는 당시 피초트의 결정에 몹시 마음이 상했다.
그로부터 세월이 25년 흐른 후 피초트가 세상을 떠나면서 피카소의 마음속에 지난날의 끔찍한 사건이 되살아났다. 피카소의 기억을 바탕으로 그린 이 작품은 파국으로 끝난 삼각관계를 보여준다.
오른쪽에서 춤추는 흰색과 고동색으로 칠한 인물은 피초트이다. 왼쪽에 선 인물은 제르맨으로 갈라지고 뒤틀어진 모양이다. 자신의 몸뚱이를 부서지도록 굴리고 혹사시킨 나머지 역겹게 변해버린 모습을 하고 있다. 중간에 카사헤마스가 서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는 무자비한 태양열 아래에서 죽어가는 중이다. 선홍 빛 몸은 피가 말라감에 따라 새하얗게 질려가고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의 얼굴은 아프리카 조각과도 같은 원초적인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고, 그들이 추는 춤 위로 사랑과 죽음 그리고 질투가 어른거리며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다음은 로스코의 작품인 <빨강 위의 황토색과 빨강>을 감상하기 전에 현대회화의 아버지인 세잔과 마티스 그리고 로스코의 관계를 잠시 알아보자.
세잔의 이 작품에서 여인의 옷에서 나오는 차가운 색채가 여인의 얼굴과 문에서 나오는 따뜻한 색과 대비되면서 원근법이 아닌 색에 의한 입체감을 보여준다. 여인의 얼굴이나 문을 보면 다양한 색채들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여인의 얼굴은 한 가지 색이 아니라 진홍색과 노란색 그리고 황록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에 영감을 얻은 마티스는 색을 대상과 분리하여 색 자체로 사물의 느낌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갔으며 그를 따르는 마크 로스코는 더 나아가 오직 색으로만 자신의 감정과 영혼을 표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데이트 모던에 있는 이 작품이 바로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거리가 45센티미터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는 그 거리에서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작품 속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인간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1949년 무렵부터 로스코의 그림에서는 모든 형태가 사라졌다. 그가 그림에 담고 싶은 것은 인간사의 유한함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숭고함과 영원한 무한함이었다. 무한을 담아내기 위해 유한한 형태는 사라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가했다. 그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커다란 캔버스 위에 두세 개의 사각형이 보이지만 그는 사각형을 그린 것이 아니다. 사각의 캔버스 위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무형의 형태를 찾은 것이다. 그래서 사각형이 <형태>로 인식되지 않도록 테두리 부분들을 스펀지로 부드럽게 뭉개 버렸다.
또한 그는 평소 비극을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으로 이해했다. 니체처럼 비극적 상황을 직시하고 그 혹독한 비극을 버티며 감내하는 인간의 숭고한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로스코에게 인간이 숭고한 정신을 보여주는 가장 심오한 색은 빨강이었다. 피와 뜨거운 불 그리고 태양을 연상시키는 빨강은 성스러움부터 환희와 절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풍부함을 지니고 있었다. 노랑부터 검정 등 다양한 색과의 결합 속에서 그 생명력이 살아난다고 보았다. 그것은 고난의 아픔 속에서 처절하게 버티는 가장 비극적이며 숭고한 색이었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내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내가 그 작품을 그리면서 느꼈던 종교적인 경험과 동일한 체험을 경험한 것이다.
로스코의 작품과 같이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하던 시대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몸부림에서 시작한 것이 팝아트였다. 팝 아트의 대표적인 젊은 선구자 중 한 명이 앤디 워홀로 그는 고급 예술과 대중예술의 간극을 없애려고 노력하였다. 그 시도로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흔한 캠벨 수프 깡통과 마를린 먼로의 모습을 복사하면서 대중매체와 소비사회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작품에서 오렌지 바탕에 노랑머리의 마를린 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흑백의 사라져 가는 듯한 마를린 먼로는 소비사회에서 주체성을 잃은 우울하고 비극적인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데이트 모던의 야외에 설치된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마망>을 감상하자.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요소가 만나 벌어지는 이상한 현상을 그린 초현실주의 화가 루이스 부르주아는 10미터의 높이의 초대형 거미 <마망>을 세상에 선보였다. 프랑스어로 엄마라는 뜻을 가진 <마망>은 모성애가 강한 거미를 표현한 작품으로 안에서 보면 엄마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지만 거리를 두고 밖에서 보면 알을 지키기 위한 엄마의 강인한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비롯하여 미국 캐나다 일본에서도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신세계 백화점 옥상정원과 리움 미술관에 있다.
오늘날 현대 미술관은 현대미술의 치열한 시대정신과 엔터테인먼트가 적절하게 조화되어야 한다. 현대 미술관이 본연의 의무인 정신적인 것에만 몰두하면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어 일반 관람객들로 외면받고 오락적인 요소에만 치중하면 그 본질을 잃어버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본질적인 가치와 오락적인 재미의 조화는 현대미술관의 필수적인 요소이자 생존요건이다.
이 둘의 조화를 위해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모던은 최근 중앙 홀에서 <디스코 나이트> 댄스파티를 개최해 젊은이들을 끌어모으고 있으며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먼저 15만 원의 회비를 내면 <테이트의 친구들>이란 회원권을 구입할 수 있다. 회원이 되면 2만 원 상당의 특별전을 1년 내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미술관에 전망 좋은 고급 레스토랑을 유치해 운영비를 벌어들이고 있다. 유료 회원제와 식당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만 1년에 100억에 이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