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과 사실

몽생미셸 가는 길 8화

by 오래된 타자기


오늘도 하루가 다했다. 지금은 새벽 4시. 하루 종일 기차가 오가던 몽파르나스 역도 이제는 조용하다. 오늘은 일요일 그 어느 때보다도 거리가 한산하다.


긴 여름휴가를 끝내고 내일이면 각자의 직장으로 출근하는 맨느 가(街)의 사람들, 그들 중에는 카페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는 부르주아의 초상을 그리던 이탈리아의 잘생긴 화가가 있었다. 아내 잔느에게 더없이 소중했던 남자 모딜리아니는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히지도 못하고 저 언덕 멀리 페르라쉐즈 묘지에 안장되었다.


성당의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 문학과 예술의 성지였던 몽파르나스는 더 이상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 아니다. 단순 관광객들만이 몽파르나스 타워 59층 전망대를 찾을 뿐이다.


그러나 이 거리 어디쯤인가에서 샤갈은 고향마을을 화폭에 담았고, 아폴리네르는 저 유명한 초현실주의 시를 써 내려갔다. 망명생활에 지친 레닌은 라 호똥드(La Rotonde) 카페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볼셰비키혁명을 꿈꿨을 것이다. 우리의 랭보는 베를렌과 함께 비가 질척이는 하스파이 길을 걸어갔을지도 모른다.


쿠폴에서의 사르트르의 한담(閑談), 실존주의는 프랑스 사회전반을 뒤엎어버렸다. 노벨상마저 거부한 이 실존주의자는 겸손하게도 『존재와 무』를 완성했다. 자코메티의 메마르고 불안한 걸음걸이, 팡데옹 근처에서는 앙드레 브르통과 필립 수포가 ‘자동기술’을 발명하고 있었으리라.


나는 이 불길하고도 성난 거리에서 그 어떤 피난처를 찾아 헤매지 않는다. 알제리를 떠나온 알베르 카뮈가 『이방인』의 서사를 집필하던 20세기는 이젠 종막을 고한 지 오래다. 인공지능의 21세기를 살면서 19세기를 되돌아보자는 것도 아니다. 아! 나는 이 거리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고 싶은 것이다. 내가 떠나려 하는 곳은 중세(中世)이고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의 일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나는 거꾸로 가고 싶은 것이다. 물론 나는 프랑스 인이 아니다. 유러피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세인이 돼보고 싶은 것이다.


천 년 전에 나는 어떤 여행자였을까? 어느 곳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을까? 그건 무엇 때문일까? 내 앞에는 지도 한 장이 놓여있다. 내가 제작한 지도! 어느 순간에는 지도가 책 보다 더 많은 사실을 일깨워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중세는 영성의 시대였다. 기독교가 공인된 지도 7백 년이 흐르고 있었다. 유럽은 베네딕투스가 창설한 베네딕토 수도회가 성스러운 그리스도의 말씀을 끊임없이 전파하고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삼위일체설을 받아들여 자신의 이름을 딴 콘스탄티노플에 기독교도들의 수도를 세우고 [1] 성소피아 성당을 지은 이래로 유럽전역에서는 수많은 공동체가 탄생했다.


로마제국의 핍박과 압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면서 이 새로운 종교만이 그들을 구원할 거라 믿었다.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이 기록한 예수생전의 ‘말씀’이외에도 로마제국의 전사였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바울의 설교는 그리스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기독교의 성지이자 발원지였던 예루살렘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에 더해 고린도전서와 후서는 코린트 지역을 넘어서 유럽전역에 퍼져나갔다.


그러나 기독교는 5백 년도 안 되어 부패와 타락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성스러운 말씀은 합리화의 논리로 뒤바뀌었고 교회의 타락과 부패상은 극도에 달했다.


이때 누르시아 태생의 이탈리아인 수도사 베네딕투스가 몬테카시노에 창건한 베네딕트 수도회가 ‘평화’와 ‘기도하면서 일하는’ 공동체 설립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나섰다. 이후로 모든 유럽지역에서 베네딕도 수도회가 정한 강령이 채택되면서 기독교도들에 대한 절대적인 규칙으로 작용했다.


몽생미셸 역시 이런 영향 하에 놓여있었다. 초기에는 아브랑슈 주교좌만이 유일하게 존속하고 있었다. 몽생미셸은 오랜 세월 동안 바닷물의 침식에 의한 영향으로 바닷가에 덩그러니 돌산으로만 자리하고 있었다.


이 보잘것없는 돌산에 교회를 세운 것은 10세기 초였고 당시 아브랑슈 주교였던 오베르 신부가 적극 개입했다. 그는 성 미카엘 천사장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인물로 알려졌다.


전해오는 전설에 따르면, 성 미카엘 천사장은 아무 보잘것없는 돌산에 교회를 세우라 명한 것이다. 오베르 주교는 어느 날 밤 불현듯 잠에서 깨어났다. 자신의 이마를 만져보니 꿈속에서 성 미카엘 천사장이 손가락으로 찌른 이마 위의 구멍이 느껴졌다.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이마에 구멍이 뚫렸다는 공포심을 느낀 오베르 주교는 잠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성 미카엘 천사장이시어! 계시한 바대로 이행하겠사옵나이다.” 기도를 올렸다.


성 미카엘 천사장이 오베르에게 이르기를 돌산에 교회를 세우라고 전하였건만 의심 많은 오베르 주교가 이를 이행하지 않자 결국 꿈속에 다시 나타나 오베르 주교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구멍을 낸 것이다. [2] 이에 놀라 가능치 않은 일이 벌어졌는데 황막한 바닷가 돌산 위에 교회가 들어서게 되었는데 이게 바로 한적한 바닷가 돌산에 몽생미셸 수도원이 들어서게 된 연유다.


성미카엘은 구약이 전하는 다니엘과 가브리엘과 함께 3대 천사장이다. 타락한 천사였던 사탄이 하느님께 대적하려 하자 미카엘이 “누가 하느님 흉내를 내려하는가?” 말하였다. 이 말의 발음이 미~카~엘(Mikael)이다. 이후로 미카엘은 천사 중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3]


몽생미셸 수도원 성당 첨탑 꼭대기에 자리한 천사장 미카엘


바다 쪽에서 바라본 몽생미셸 수도원 모습


미카엘 천사장을 기리는 교회가 바로 로마 바티칸 한복판에 세워진 성 안탄젤로 성이다. 아드리아 해 바닷가 툭 튀어나온 암산절벽에 세워진 몬테 갸르갸노 역시 성 미카엘께 봉헌된 교회다.






[1] 종교개혁시대에 프랑스 태생의 칼뱅(영어로 캘빈이라 부르기도 한다)이 오늘날 스위스의 제네바를 개신교도들의 수도로 정한 것은 콘스탄티누스 로마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콘스탄티노플을 기독교도들의 수도로 세운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2] 전설이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오베르 주교 것이라 추정되는 구멍 뚫린 해골은 중세 때 몽생미셸 수도원에 보관되었다가 현재 아브랑슈 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Reliaue de Saint Auvers.jpg 몽생미셸 수도원 성당에 전시되고 있는 오베르 주교의 구멍뚫린 두개골. © 오래된 타자기


[3] 천사들은 계급에 따라 모두 9품으로 구분되는데, 1품 치품천사(Seraphim)로부터 시작하여 지품천사(Cherubim), 좌품천사(Thrones), 주품천사(Domination), 역품천사(Virtues), 능품천사(Powers), 권품천사(Princedoms), 대천사(Anchangels), 그리고 9품 천사(Angels)로 내려간다. 미카엘은 대천사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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