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파리

몽생미셸 가는 길 7화

by 오래된 타자기


어둠 속의 파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낮의 찬란한 외양은 침몰했다. 매시간 5분씩 황금빛 조명에 더해 다이아몬드 조명쇼를 펼치던 에펠탑 조명마저 꺼져버렸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화재가 난 뒤로 아예 불을 켜지 않는다. 멀리 팡데옹의 불빛도, 가까이의 생 쉴피스 성당의 조명도 꺼졌다. 희미한 건물은 형체만 남았고 파리는 깊이 잠들었다. 마치 술 취한 남자처럼 코 고는 소리만 가득한 밤, 아르튀르 랭보는 150년 전 생 쉴피스 성당 근처의 훼루 가(Rue Férou)에서 「취한 배(Le bateau ivre)」를 쓰고 있었으리라.


내가 유럽의 물을 갈구한다면 그것은 바로

검고 차가운 웅덩이, 거기엔 향긋한 황혼을 향해

슬픔에 겨워 쇠잔한 한 아이 쪼그리고

가벼운 배 한 척 5월의 나비처럼 떠있는 곳.

Si je désire une eau d’Europe, c’est la flache

Noire et froide où vers le crépuscule embaumé

Un enfant accroupi plein de tristesses, lâche

Un bateau frêle comme un papillon de mai.


샤를르빌 메지에르에서 아덴까지 : 프랑스 시인이 걸어간 길이다. 「취한 배」, 「모음들」, 「나쁜 혈통」, 「지옥에서의 한 철」, 「영원」 등 전대미문의 시들을 젊은 나이에 완성한 랭보는 파리 북동쪽 벨기에와 국경을 이룬 샤를르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군인이었지만 육질의 체질과는 달리 탁월한 문학적 감성의 소유자였던 랭보는 어린 시절에 쓴 시 한 편으로 당시 프랑스 최고의 서정 시인이었던 폴 베를렌을 눈멀게 한다.



베를렌은 랭보를 처음 본 순간 그 재능과 잘생긴 외모에 온 감각이 얼어붙었다. 그러나 문학은 랭보에게 있어서 새로운 삶의 시작을 예고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가난과 고독으로부터의 구원도 아니었으며, 지긋지긋한 샤를르빌에서의 생활을 청산하도록 도움 준 것도 아니었다.


베를렌과 함께 파리와 런던, 브뤼셀을 오가던 랭보는 문학이야말로 하시시 같은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연유로 그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정처 없이 떠돌았다.


랭보는 마침내 아프리카로 떠났다. 사막을 누비며 무기를 팔고 다녔다. 열대의 사막에서 랭보는 오직 돈만을 계산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많은 돈을 벌지도 못했다. 낙타와 함께 사막을 횡단하고만 있었다. 그곳에서 랭보는 문학의 미음(ㅁ) 자도 떠올리지 않았다. 그는 철저히 무기상이었고 중개인이었다.


전쟁을 벌이고 있는 사막의 토호들에게 프랑스식 재래무기를 팔러 다니는 인생은 결코 행복할 수 없었다. 더해서 일 년 내내 질척 질척 눈비가 번갈아 내리는 샤를르빌만큼이나 열사의 건조한 열기 또한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주로 떠돌던 곳은 오늘날 예멘에서 소말리아에 이르는 21세기에조차도 가장 빈곤한 지역이 대부분이다. 그에게는 여자조차 없었다. 단지 아덴에서 알게 된 흑인여성이 전부다. 결국 다리가 썩어 들어가는 질병으로 겨우 아프리카를 탈출하여 남부 프랑스에 위치한 막세이병원에 입원했지만, 한쪽 다리를 절단한 채 병실에 누워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병이 악화하여 세상을 뜨고 말았다.


세기의 시인이 죽은 것이다. 견자(見者)이기를 자처했으며, 스스로 계관시인이기도 했던 랭보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생전에 알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철저히 무산자나 무정부주의자쯤으로 생각했다. 그는 문학을 철딱서니 없던 시절의 한때의 치기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랭보는 모음의 색깔들을 발명했다. “A는 검고, E는 하얗고, I는 붉고, O는 푸르고, U는 초록이다.” 그는 프랑스 시에 새로운 리듬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 기름진 토양에서 말레르메와 발레리, 클로델이 태어났다.


그는 살아생전 고향 샤를르빌에 돌아갈 수 없었지만, 그의 시신만큼은 마을 공동묘지에 묻혔다. 사이프러스나무에 둘러싸인 묘비에는 시 「영원」이 새겨져 있다. 그만큼 랭보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부르주아 문명을 비아냥대고 프랑스 문학조차 조롱을 일삼은 시인은 거대한 상징의 탑 자체였다. 이후의 현대 시인들은 모두 그의 문하생들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샤를르빌은 시인을 추모하는 수많은 이들을 위하여 친절하게도 시인의 생가를 복원하고 뫼즈 강(江)의 물레방앗간을 수리하여 기념관으로 꾸며놓았다. 이 두 장소는 아르튀르 랭보의 생애와 문학을 회고하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정작 시인은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까지도 여행을 하고 있었다. 세상을 정처 없이 떠돌고만 있었다. 그런 시인을 기념관에 가둬놓다니!


샤를르빌 메지에르의 랭보 기념관


랭보의 시집은 프랑스가 아닌 벨기에 브뤼셀에서 간행되었다. 이 초라한 한 권의 팸플릿 같은 시집이 문학적 상상력으로 세계문학에 불을 지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옥에서의 한 철’, 샤를르빌 마을은 과연 랭보에게 지옥에 불과했던가? 사실 그렇다. 독일과 인접한 프랑스 접경지역으로써 전쟁이 끊이지 않고 산업시설마저 들어서질 않아 프랑스에서조차도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알려진 샤를르빌 메지에르는 랭보를 낳았고 그를 키웠다.


지금도 한적하기만 한 마을에서 그는 무엇을 꿈꾸었던가? 문학이란 거대한 대서양을 향해 나아가던 뫼즈 강의 한 척의 배는 진정 ‘취한 배’였던가? 그렇다. 그의 항해는 문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고 모험이었으며, 지형을 바꿀 만큼 강력한 도전이었다. 아니 생애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잊으려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듯이 랭보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강력한 문학적 에너지를 지닌 시인일 것이다. 그의 시어가 폭발하는 시집을 펼칠 때마다 나는 전율한다.


이 인간적인 동의로부터

이 공동의 정열로부터

그대는 해방되어

그리고 비상한다.

Des humains suffrages,

Des communs élans

Là tu te dégages

Et voles selon.

- 시 「영원(L’Éternit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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