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성당

몽생미셸 가는 길 6화

by 오래된 타자기


파리 생 쉴피스 성당의 불이 꺼졌다. 나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여름 42°의 폭염에 파리 전체가 녹아내리던 분위기와는 달리 새벽부터 비가 흩뿌린다. 42°에서 17°로 내려앉다니 지구가 병든 것이 틀림없다.


여름의 끝, 일주일 내내 건조했던 관계로 플라타너스 잎이 가치를 잃은 화폐처럼 길 위에 무수히 흩어진다. 텔레비전 뉴스는 연일 폭염에 따른 피해상황을 전해주기에 바쁘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화재가 발생하여 첨탑과 지붕이 날라 갔고 생 쉴피스 성당에서 대신 미사가 집전되고 있다. 파리 주교가 미사를 집전하면서 신자들은 노트르담 대신 생 쉴피스로 모여든다.


며칠간을 동쪽의 광채를 사진에 담으려고 설레었다. 벌써 5년 넘게 이사해서 새로 살게 된 아파트건만 일출을 제대로 마주한건 올해 들어 처음이다. 이 고층 아파트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방향이 북동쪽이고 남서향보다는 덜 더울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한 권의 책을 번역하는 동안 매일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했다. 나는 아파트를 호텔과 다름없어했다. 왜냐면 호텔처럼 긴 복도에 베란다도 없는 특이한 구조 때문이기도 했다. 아파트 관리인은 호텔 안내데스크 직원처럼 점잖았고 인물도 괜찮았다. 여느 아파트 관리인과는 다른 그는 보기 드물게 프랑스 인이었다.


파리 몽파르나스지역 아파트 관리인들은 원래 브르타뉴 사람들이었다가 포르투갈 사람들로 바뀌었고 다시 동유럽 인들이 차지했다가 이제는 발칸 사람들로 바뀌는 추세를 보인다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여전히 프랑스 인들이 관리를 맡았다.


나는 그들의 친절함이 맘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상냥함에 이끌렸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건 위험하기까지 했다. 소음을 낼 때마다 입막음으로, 또한 저 멀리 고국에서 전해오는 우편물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관리인에게 줄 선물이 필요했다. 나는 그때마다 잊지 않고 관리인에게 선물했다. 물론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