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란 말의 유래를 생각하다

몽생미셸 가는 길 4화

by 오래된 타자기


아주 재밌는 지도가 하나 있습니다. 여섯 번째 지도가 그러합니다. 지도는 파리에서 출발하여 몽생미셸에 이르는 자전거 애호가들을 위한 것입니다. 실제 자전거동호회 모임이 제작한 순례코스에 해당합니다.


순례란 라틴어에서 비롯한 말로 종교적 의무 또는 신앙 고취의 목적으로 하는 여행을 가리킵니다. 프랑스어로 순례에 해당하는 페를히나쥬(Pèlerinage)란 말은 페를행(Pèlerin)이란 말에서 유래했고, 페를행이란 말의 뜻은 ‘낯선 곳을 여행하는 여행자’를 가리키는데, 종교적으론 순례자들을 뜻합니다.


이른바 로마 가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최초의 순례자들은 사도들이나 성인들 그리고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었을 것입니다. 로마시대에 황족 가운데 순례 붐을 일으킨 자는 당연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입니다. 사후에 성녀로 추앙받은 헬레나가 떠난 십자가의 길이 로마 가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일반대중의 가장 일반화된 성지순례 코스였습니다.


고백건대 제가 가톨릭 신자가 된 것은 스물다섯 살 무렵입니다. 그로부터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제게는 그때의 종교적 열정이나 신앙심이 내재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직도 온갖 종교의 아우라에 취해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종교적 혼돈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종교적 유사성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만큼 제 종교관은 오히려 외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때 가톨릭 신자였다는 이유로 가톨릭 제의나 상징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점, 그 젊은 시절에 프랑스로 건너와서 찾아다닌 교회들은 아직도 제 기억 속에 선연히 자리하고 있다는 점, 어린 시절에 불자가 되어보겠다고 절들을 찾아다녔지만 끝내 진정한 불자이기를 포기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제가 찾아다닌 교회들에 비하면 제 어린 시절에 찾아다닌 사찰들은 그 수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더불어 제가 프랑스에서 산 햇수가 한국에서 산 햇수를 훨씬 넘어섰기에 한국의 그 어떤 종교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고 프랑스의 종교에 관해서 또한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됩니다. 그렇기에 저는 단지 로마 가톨릭의 제의와 상징에 대해서만 경험상 이야기할 뿐입니다.


자전거코스는 그러나 순례지만 적시하지는 않습니다. 파리를 출발하여 근교 방브에서 재차 집결하여 마씨 팔레조로 남하하다 서쪽 베르사유로 향합니다.


순례길은 파리 노트르담 성당 그림으로 시작합니다. 베르사유에 이르면 루이 14세 때 지은 궁전이 나오고 항부이에의 고성이 등장하면서 파리로부터 80킬로 지점에 이르면 샤르트르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다시 등장합니다.


샤르트르 성모 마리아(노트르담) 대성당


그리고는 작은 마을들의 매혹적인 풍경들을 품고 달리다가 오흔느의 주도 알랑송을 거쳐 다시 조그만 마을들의 숲을 관통합니다. 마침내 자전거를 달려 몽생미셸에 이르는 이 길은 400킬로미터에 달하는 대장정이자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출발하여 일 드 프랑스를 거쳐 노르망디에 이르는 프랑스 북서부의 그림 같은 풍경과 기품을 지방도로에서 확인하는 순례코스이기도 합니다.


길은 실핏줄처럼 세느 강과 동떨어진 상태에서 아래로 처져 이어지면서 이름도 생소한 마을들을 비춰주죠. 어둔 밤바다를 항해하는 선박들이 해안에 불 밝힌 등대를 따라 이동하듯 자전거들도 비좁고 굴곡 심한 지방도로를 넘나들면서 등대처럼 밝은 마을들에게서 고갈된 체력이긴 하나 시원하게 불어오는 미풍으로 말미암아 피곤하고도 지친 몸에 눌어붙으려 하는 눈꺼풀을 일으키는 마지막 에너지를 보충받는 길이기도 합니다.


자전거를 타는 일은 재밌지만, 자전거를 타고 순례길을 질주한다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닙니다. 고통과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고 싶다면 프랑스 세계 최고의 자전거 경주대회인 ‘르 뚜흐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대신 이 코스를 답사해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듯싶습니다. 코스에는 눈에 띄는 관광지가 있긴 하지만, 고독한 질주에 가깝게 코스는 난해하고도 길은 어렴풋하기만 합니다.


이와 비견되는 순례코스가 일곱 번째 지도에 나와 있습니다.



이전 03화순례? 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