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투어?

몽생미셸 가는 길 3화

by 오래된 타자기


네 번째 지도를 밀쳐두고 다섯 번째 지도를 펼쳐봅니다. 이른바 ‘그랜드 투어’란 이름으로 불리는 지도입니다.


오늘날 순례는 투어로 변모했습니다. 도보순례자들은 버스나 기차 또는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여행자들로 바뀌었죠. 물론 아직도 도보순례자들은 존재합니다.


순례지 곳곳에서 순례자들과 맞닥뜨리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일반 관광객들처럼 자가용이나 버스, 기차, 항공, 배 등을 이용해서 다닙니다. 요트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죠.


이런 여행자들이자 순례자들을 위해 프랑스의 미슐랭은 아주 오래전부터 여행자들을 위한 지도를 제작해 왔는데,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하다 보니 종이지도가 내비게이션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제 여행자들은 두툼한 지도책 대신 핸드폰에 미슐랭 여행 앱을 설치하고 손으로 클릭하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네덜란드 작가 세스 노터봄은 그의 명작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자주 타자기를 언급하면서 여행지 숙소에서 타자기로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을 떠올려주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글을 쓰고 있기를 마치 수도사가 성서를 필사하듯 책처럼 제본된 노트에 펜으로 잉크를 묻혀가며 일일이 적어나갑니다. 필경사가 양피지에 필사하듯이 말이죠.


펜에 잉크를 찍어 누르듯 종이 위에 글을 써가는 것은 제 오래된 습관과도 같은 것이지만, 요즘 누가 원고지에 글을 쓸 것이며 더군다나 책처럼 제본된 백지노트에 일일이 펜으로 글을 써나가겠습니까? 21세기 디지털시대에 구태의연함을 계속하는 것은 지도가 주는 매력 때문입니다. 그것도 종이지도가 주는 매력은 마술과도 같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성지순례는 늘 동쪽 예루살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군원정도 명목은 예루살렘 고토회복이었지만, 성지순례와 같은 성격의 것이었죠. 순례는 템플기사단을 창설하리만큼 중세시대 절체절명의 목표를 띤 것이었습니다. 점차 일반 순례자들이 늘어나면서 가까운 로마로 대체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로마 가톨릭에서 거론되는 대표적인 4대 성지는 예루살렘, 로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그리고 몽생미셸입니다. 예루살렘은 그야말로 기독교의 발원지이며, 로마는 열두 제자 가운데 으뜸인 베드로가 순교한 곳이자 교황이 지금까지도 거처하고 있는 곳이며, 산티아고는 야고보 형제의 유해가 안치된 무덤이 자리한 곳입니다. 그렇다면 몽생미셸은 어떻게 세계적인 성지가 되었을까요?


이제 다섯 번째 지도는 로마 가톨릭의 성지순례를 거꾸로 보여줍니다. 그것도 ‘그랜드 투어’란 이름으로.


순례의 첫 코스는 이탈리아 동부해안에 위치한 몬테 갸르갸노에서 출발하여 로마를 거쳐 알프스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유명한 사크로 디 산 미슐레를 지나 프랑스 리용, 마침내 몽생미셸에 이르는 코스입니다.


예수의 시신을 감싼 염포가 보관되어 있는 이탈리아 북부도시 토리노에서 십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해발 962미터 피르치리아노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베네딕도 수도원은 교황들도 자주 찾았으리만큼 유서 깊은 곳입니다. 어느 겨울날 알프스 산골짜기 마을의 푸근하면서도 눈보라 속에 꼿꼿이 버티고 선 돌집처럼 올곧고 엄정한 수도사의 옷 주름과도 같이 산 정상에 자리한 수도원은 여행자에게도 비경 중 비경입니다.


영화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산 미슐레 피르치리아노, 이탈리아


순례의 둘째 코스는 성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출발하여 프랑스 중서부 중세마을인 생 장 당젤리를 거쳐 몽생미셸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 길은 아마도 대서양을 거쳐 배를 타고 스페인에 도착한 순례자들을 위한 길이었을 겁니다. 산티아고 인근의 바닷가마을 코로나를 출발하여 산티아고에 집결해 있는 순례자들과 함께 몽생미셸로 향하는 코스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뱃길로 산티아고에 닿는 항구도시는 라 꼬루냐(코로나)입니다.


세 번째 순례길은 독일의 쾰른에서 브뤼셀을 거쳐 프랑스 북서부 도시 루앙을 지나 몽생미셸에 이르는 길입니다.


독일의 쾰른은 로마제국시절 식민지(colonia)라 불리던 로마제국의 변방이었던 곳으로 일찍부터 로마 가톨릭이 전래된 지역이며, 중세 때 프랑스에서 시작된 고딕 건축양식이 스며들어 라인 강가에 고딕성당이 자리할 정도로 로마 가톨릭이 굳건했던 지역, 아울러 벨기에의 브뤼셀도 로마 가톨릭 성당이 지배적인 곳이며, 백년전쟁의 영웅 잔 다르크가 화형 당한 프랑스의 루앙은 12세기 고딕 양식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자리 잡은 곳, 세 번째 순례코스는 그야말로 고딕 성당의 순례길이나 다름없습니다.


2019년 6월 6일 이 글을 쓰던 날 몽생미셸과 가까운 칼바도스 지방에 위치한 바닷가마을 꼬유빌 쉬흐 메흐(Colleville Sur Mer)에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 행사가 온종일 내내 펼쳐졌습니다. 오마하비치란 상륙작전명으로 미군의 주도하에 상륙작전이 이루어진 해안 꼬유빌 쉬흐 메흐 바닷가에서 연합군이었던 미국 프랑스 영국 정상들이 모여 성대한 기념식을 거행한 것이죠.


전 날인 6월 5일 영국의 남부 해안도시인 포츠머스(Porthmouth)에서는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당시 열아홉 살이던 자신은 항구와 해안을 떠나 돌아오지 못한 많은 이들의 용기와 희생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며 추모사를 읽어 내려가기도 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포츠머스, 이곳은 다섯 번째 지도 마지막 순례길이 시작되는 항구도시입니다. 지금은 영국 성공회가 지배적이지만, 로마제국시대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지금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를 정복하고 그곳을 국경 삼아 장벽을 쌓은 이래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로는 로마 가톨릭 문명이 이곳까지 침투했을 정도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지역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잔존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따라서 영국 각지에서 출발하여 몽생미셸 순례길에 오른 이들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연합군의 중요한 전초기지 구실을 했던 포츠머스에서 뱃길을 이용하여 몽생미셸에 닿습니다. 물론 프랑스 셰르부르(Cherbourg)에서부터는 도보길을 택하긴 하지만.


한편 아일랜드에서 떠난 순례자들은 영국 남서부 끝단의 아주 조그만 세인트 미카엘스 마운트를 들렸다가 다시 뱃길로 셰르부르를 거쳐 몽생미셸에 닿습니다.


이 영국의 자그마한 섬 세인트 미카엘스 마운트는 프랑스어로 몽생미셀(성 미카엘 언덕)에 해당합니다. 프랑스의 몽생미셸 바위섬처럼 대서양가의 돌산 위에 베네딕도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작은 섬은 순례자들이 그리 많이 찾는 곳은 아닙니다.


세인트 미카엘스 마운트 섬은 한적하고도 조용한 영국의 해안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관계로 프랑스의 몽생미셸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언젠가는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영국인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찾는 한적한 해안가일 따름입니다. 베네딕도 수도원의 문도 굳게 닫혀있습니다.


세인트 미카엘스 마운트 섬,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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