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9화
“몽생미셀이 오랫동안 문명의 빛을 조명받은 데는 영적인 성소이자 예술의 진원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로마제국 시대의 로마인들은 골루아 족의 땅이었던 이곳을 점령하고 변화시킨 장본인들이라 할 수 있지만, 몽생미셸만큼은 그 어느 곳에서도 로마인들의 자취를 찾아볼 수가 없다.
로마인들이 자부했던 로마가도 역시 몽생미셸에는 미치지 못했다. 로마인들이 생각한 로마제국의 경제는 로마가도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한적한 바위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이교도들의 신전, 이른바 태양을 숭배하던 이들이 세운 신전이 있던 자리에 기독교 문명을 정착시킨 이들은 기독교도들이었다.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10세기에 바이킹들이 이 지역에 들어와 기독교 문명을 파괴하기까지는 말이다.
바닷가 바위섬인 몽생미셸 언덕은 언덕묘지(le mont tombe)라 불렸다. ‘거양’, ‘상승’의 의미를 지닌 이 용어는 켈트어로 ‘툰(Tun)’이라 불렸고, 이후에 라틴어로 무덤을 가리키는 ‘툼바(Tomba)’라 불렸다. 독실한 신앙심을 지닌 기독교인들은 이곳을 영성에 입각한 최고의 성지라 여겼다. 하여 많은 이들이 재산을 버리고 가족과 친구들 심지어는 그들이 살던 곳을 떠나 이곳으로 밀려들어왔다.
기독교도들에게는 이곳이야말로 절대 고독과 가난을 삶 속에 실천할 수 있음은 물론, 궁극적으로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를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영적인 장소라 여겼다. 언덕은 세속적인 삶을 떠나 영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수많은 은수자들이 목말라하던 장소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언덕에 최초로 수도원을 건설하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에티엔느 성인에게 바쳐진 곳이고, 다른 하나는 생포리앙에게 바쳐졌다.
몽생미셸로 향하는 길에 서서 기도를 올리는 순례자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이러한 순례자들은 모두 몽생미셸에서 주관하는 종교제의에 참가하기 위한 행렬이었다.
그들의 숫자는 966년 수도원이 창건되면서 급격히 불어났다. 911년에 바이킹의 수장이었던 롤로와 프랑스 왕 샤를 단순왕과의 생 클레흐 쉬흐 엪트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바이킹들은 그들이 파괴했던 수도원과 교회를 재건하기에 앞장섰다.
리샤르 2세 때에 이탈리아 수도사였던 기욤 드 볼피아노가 “영성은 대 건축물에 있다”라고 설파한 이래 노르망디 공국 여기저기에 대 건축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러한 영향 하에 놓여있던 몽생미셸은 십자군원정으로 촉발된 성지 예루살렘 고토회복을 위한 성당(템플) 기사단의 성지순례와 맞물리게 되었다. 당시부터 몽생미셸은 노르망디 최고의 성지였으며 동시에 브르타뉴 사람들에게도 최고의 성지로 자리하고 있었다.
더불어 유럽각지에서 밀려드는 순례자들이 줄을 이었다. 백년전쟁을 겪으면서 몽생미셸이 영국령에 속해있었기는 하나 몽생미셸에서 거행되는 성 미카엘 천사장에 대한 의식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었으며, 은총에 따른 소생에 대한 믿음 또한 프랑스 전역에 널리 퍼져나갔다.
순례자들은 기도하기 위해, 선행을 베푼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기 위해,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 수도원으로 몰려들었다. 순례자는 또한 하느님께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빌었다.
순례는 신의 심판에 따른 정해진 형벌이었다. 병을 치유할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도 있었지만, 수사들이 손으로 직접 제작한 필사본들은 순례자들에게 원대한 희망을 잃지 않게 해 준 제일의 원동력이었다.
순례자는 손잡이가 사과모양의 지팡이를 쥐고 있거나 중간에 매듭이 진 막대기 지팡이 또는 끝이 뾰족한 지팡이에 가죽으로 된 바랑을 매고 있었다. 옷차림은 점잖았고 소매 없는 망토나 모자가 달린 짧은 망토를 걸친 여행자 차림이었다.
순례자가 오르막길을 걸어가거나 천국의 길을 택하거나 간에 몽생미셸에 닿는 주요한 길은 다섯 코스에 달했다. 그러나 위험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산적이나 전염병 혹은 전쟁이 그런 유형의 것들이었다. 길들에는 역참이나 피난처 또는 환자들을 위한 치료소 같이 주요한 곳에 대한 표지가 설치되어 있었다.
순례자들은 물이 빠졌을 때 모래톱을 가로질러 건너갔는데, 썰물이 진 때의 모래진흙은 아주 위험한 상태였다. 몽생미셸에 종교제의가 있는 날이면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그 많은 기독교도들은 기적과도 같은 경이로움에 목마른 자들이었다. 순례자들이 특이 숭배하던 것 가운데 하나가 성 유골함이었다. 여기에 손을 대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순례자들은 몽생미셸에 봉헌을 하고 떠나기 전 항상 몇 가지 기념품을 샀다. 조가비나 순례자의 깃발 또는 옷에 붙이는 납이나 주석으로 제작한 천사장 성 미카엘 상이 조각된 기념배지가 그러한 것들이었다.”[1]
[1] 뤼시엥 베리(Luicien BÉRY), 『몽생미셸(Le Mont Saint-Michel)』, Éditions Ouest-Fr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