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0화
내가 제작한 지도는 파리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 반 거리를 주파하는 미슐랭이 제작한 지도도 아니고, 대서양의 비취 같은 해안도시 그랑빌에 묵으면서 오가는 해안도로도 아니며, 아브랑슈의 호텔에 며칠간 머물면서 지나다니는 시골길도 아닐뿐더러, 그 어느 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나만의 독특한 여행자의 길을 가리킨다.
노르망디 공국의 시작과 끝이었던 레장들리를 지나 모네의 수련으로 유명한 지베르니를 거쳐 고딕건축의 정수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자리 잡은 루앙, 폐허마저 아름다운 쥬미에쥬를 들러 꽃 항구 옹플뢰르, 노르망디 공국을 세운 기욤(윌리엄)이 결혼식을 올린 샤토 유(Eu), 대성당이 두 개씩이나 있는 디에프, 기욤이 영국정벌을 위한 위험한 모험을 감행한 기욤군단의 출항지 울가트, 모네가 그린 「코키리 바위」가 있는 해안절벽 에트르타, 마네가 화가가 되기 전 해군에 입대하고자 들른 르아브르, 영화 「남과 여」의 무대 도빌, 내 가난한 청춘을 고스란히 간직한 트루빌,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의 꺄부르, 노르망디 공국의 수도였던 캉, 기욤(윌리엄) 공작이 태어난 활래즈, 천 년 전 시민전쟁의 중심지였던 알랑송 – 이곳엔 레이스 박물관이 있다.
랑프랑이 성직자 교육기관을 세운 베켈루앵을 지나면 세리니의 수도원이 떠오르고, 노르망디 공국의 기독교문명의 중심지였던 바이외 – 이곳엔 자수 박물관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 아호망쉬, 버터로 유명한 이지니, 백년전쟁 동안 영국과 프랑스를 이은 뱃길이 닿던 항구 쉐르부르와 바흐플뢰흐, 달콤한 식사가 기다리는 대서양가의 바흔느빌 카흐트레, 중세시대의 쓸쓸한 요새도시 생로를 지나면 고딕 건축의 중세도시 꾸탕스가 나타나고 자동차를 더 달려 이르는 교회 종(鐘)을 제작하는 신의 마을 빌디유, 이윽고 다가서는 근대 최고의 항구도시 그랑빌,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이곳을 떠돌다 마침내 파리에 정착했다.
예술이 돈이 될 수 있음을 꿈꾼 화가지망생은 패션디자이너가 되었다. 53세의 짧은 나이로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디오르가 꿈꾼 ‘아트 앤 머니(art & money)’는 21세기인 지금도 모든 예술가들을 감질나게 유혹하는 감춰진 욕망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랑빌을 지나면 오베르 주교좌성당인 아브랑슈가 나타나고 롬멜을 무찌른 패턴장군의 탱크가 시가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 어쩔 수 없이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되새겨봐야 할 때쯤 멀리 몽생미셸 언덕이 눈가에 잡힌다.
이렇듯 내가 걸어갈 길은 이미 걸어간 길이면서 또한 새롭게 걸어갈 길들이다. 직선으로 이어진 길이 아니라 여러 마을들을 거쳐서 돌아가는 에움길이다.
이 길을 어떻게 지도로 표시할 수 있겠는가? 나는 맘속으로만 길들을 새겨두었을 뿐이다. 앞으로 걸어갈 길은 아득하지만 몽생미셸은 지워도 다시 나타나는 기억 속의 음영처럼 내 기억 속에 선명히 각을 세울 뿐이다. 나는 스스로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길은 다시 되풀이하지 않을 길이면서 동시에 되풀이할 수도 없는 길일 것임은 분명하기에.
30년! 그 길고도 험한 세월 동안 나는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그 세월이 정처 없어 보일 수도 있으나 몽생미셸로 향한 걸음은 언제나 가벼웠다. 때로는 추억이 삶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한참 뒤의 일이다.
“좋은 지도는 엑스선처럼 한 고장의 역사를, 그러니까 한 고장의 영혼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상처, 아문 자리, 꿰맨 자리, 덧난 자리가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세스 노터봄이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