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 유 기마상

몽생미셸 가는 길 60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불운한 왕자 페르디낭 필립 청동 기마상


성을 막 돌아 나오려는 찰나 처음 성에 도착해서 바라보던 순간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던 청동 기마상의 주인공이 누군지가 궁금하여 다시 기마상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살펴본다. 기마상 하단에는 오를레앙의 공작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왕세자 페르디낭 필립이다. 루이 필립의 아들로 태어나 짧은 생을 살다 간 불운한 왕자다.


성의 마지막 주인이 루이 필립의 후손이자 페르디낭 필립의 후손이기도 한 탓에 성 입구에 기마상이 세워져 있는 것은 당연하고 그러나 루이 필립이 성을 오늘날과 같이 복원한 인물이다 보니 시당국조차 성문 입구에 세워진 기마상을 타당하게 여겼을 수도 있다.


기마상은 성의 역사와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만 왕세자의 행적이나 그의 부친이었던 루이 필립은 역사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었기에 내 특별한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다만 그 기마상을 제작한 조각가가 궁금해졌다.


조각가 카를로 마로체티(Carlo Marochetti)는 1805년 1월 14일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토리노에서 태어나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하고(조각가는 나폴레옹에 관한 역사화를 주로 그린 장 그로(Jean Gros)의 제자다) 잠깐 로마에서 활동한 것을 제외하고는 프랑스와 영국 런던에서 활동했던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루이 필립이 후원자였는데 7월 혁명으로 루이 필립이 영국으로 도망칠 때 함께 영국으로 달아난 경력이 이채로운 조각가는 샹젤리제 에투알 광장에 있는 개선문의 장식을 맡기도 했고 파리 소재 마들렌느(막달라 마리아) 성당의 제단 조각상을 제작하기도 했던 화려한 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 조각가에게 주목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1860년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 앞에 세워진 사자왕 리처드(리샤르) 기마상을 조각가가 망명지에서 제작했다는 점이다.


그의 후원자였던 프랑스의 루이 필립이 주선했든, 영국 측이 호의로 베푼 것이었든 간에 런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궁전 앞마당에 노르망디 공국이자 영국 왕이었던 사자왕이라 불린 리샤르의 기마상이 세워지게 된 동기가 궁금했기에 자연 이를 제작한 조각가에게도 관심이 쏠리게 된 것이다.


추측해 보건대, 프랑스 인 조각가에게 영국의 심장 런던에 세워질 기마상 제작을 의뢰한 속내는 노르망디 인이면서 영국 왕이었던 역사와 전설을 오간 중세 영웅이자 기사였던 사자왕 리샤르를 제작할 적당한 인물로 당시 망명 중인 프랑스 조각가가 합당하다고 여긴 듯하다. 어찌 되었든 사자왕 리샤르를 통하여 조각가의 내력까지 알게 된 것은 덤으로 주어진 선물이었다.


오를레앙 공작의 기마상을 뒤로하고 아쉬워 마로니에들을 카메라에 담은 뒤, 다시 돌아서자 저녁 햇살의 잔광에 황금빛으로 불타오르는 참사회 성당이 가까이 다가왔다.


문은 굳게 닫혀 있을 테지만 오늘만큼은 방문객을 위하여 문이 스르르 열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타오르는 황금빛 색조에 나도 모르게 넋을 잃은 채로 십 여분을 서 있다가 다시 주차장 쪽으로 발걸음을 뗐다. 오늘만큼은 그렇듯 주홍빛 저녁노을에 취한 바닷가에서 밤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문이 굳게 닫혀있는 참사회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