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59화
[대문 사진] 정원에서 바라본 샤토 유
기욤이 결혼식을 올린 샤토 유(Eu)에 도착한 때는 중천에 떠있던 해가 서쪽바다로 기울어지던 때였다. 뜨겁게 불타오르던 가을햇살마저 마지막 잔광을 장렬하게 발하던 시각, 드디어 꿈에 그리던 샤토 유 마을에 도착했다.
길은 시원하게 뚫려있었고 가을도 다했는지 마을은 한적하기만 했다. 날씨가 유난히 화창했던 그날 오후 햇살은 부드러운 저녁햇살로 바뀌면서 지상에 건물의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엄청난 깊이로 난 해자를 발치에 둔 성채는 마을의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는 차문밖으로 나와 햇빛을 등진 성을 바라볼 때만 해도 먼 길을 달려온 감동만큼의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건물을 돌아 정원 쪽으로 난 길로 들어서자 햇살을 받아 성이 붉게 타오르는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아 바로 저곳이구나 하는 탄성이 나도 모르게 입술을 타고 흘러내렸다. 역사서에서 보았던 성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곁에서 아내 역시 감동 어린 시선으로 성을 바라보았다. 석회암과 벽돌 그리고 돌기와를 얹어 지은 성은 기욤의 시대와는 다른 후세의 인물이 새로이 지은 건물임이 분명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저곳 저 자리는 분명 기욤이 마틸드와 결혼식을 올린 장소만큼은 확실하기에 전혀 다른 풍경에도 상상의 장면을 병치시키면 그만이었다.
건물이 반드시 역사의 현장일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이 길을 달려오면서 기욤의 시대를 상상해 본 것일 뿐이고, 기욤이 어떠한 인물이며, 그가 역사에 어떠한 행적을 남겼는지를 되짚어본 것이기에, 그가 온갖 어려움 속에 치른 결혼식 장소였던 유(Eu)라는 마을을 궁금해했을 따름이다.
그래서 온갖 기록물들이 현재의 성에 대한 부연설명으로 기욤 시대의 어떠한 실상과도 동떨어진 것일 뿐이라는 참견조차도 그저 무덤덤하게 넘길 수 있었다.
솔직히 처음 이곳을 향할 때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기욤의 시대는 이미 천 년 전의 일이다. 일찍이 노르망디를 찾아다니면서 느낀 것이지만, 그 원대한(정말로 이런 수식어가 온당한) 기욤 시대의 흔적은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은 회자되는 법이다. 역사적 인간이 개입한 역사적 사건은 건축물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기욤과 마틸드의 결혼식은 결혼식장이었던 유 성채 이상의 의미를 띤다.
그들의 결혼은 도저히 불가능한 역사적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어찌 보면 불확실성의 확신에 찬 도전과도 같았다. 그 결과 그들의 결혼은 공국을 더 튼튼하게 만들었으며,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 의해 거대한 왕국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중세 기독교 문명 또한 노르망디에 발전을 가져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온갖 음모 속에서도 서로 한 마음이 되어갔다. 나중에 공국의 수도가 되는 캉의 수도원과 수녀원에 나란히 묻힐 정도로 두 사람은 한 세월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잠들어 있는 두 수도원 교회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문화유산이자 역사적 종교 건축물 가운데에서도 명소이며 신앙인들이 즐겨 찾는 성지가 되기까지 했다.
그들이 낳은 9남매의 자식들 가운데 4명의 아들들은 아버지 기욤의 유언에 따라 노르망디 공국과 영국을 이끌어 갔고 딸인 세실은 어머니 마틸드가 세운 아베이 오 담므(Abbaye aux Dammes)의 수녀원장으로 살다가 그곳에서 순결한 생을 마감하였다.
성인들과는 다르게 세속적인 삶을 살다 간 두 사람의 결합은 천국의 재현과는 다른 지상에서의 가장 화려하고도 세속적인 삶을 꿈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순 있지만, 역사는 두 사람의 생이 범상치 않았음을 증거 해주기라도 하듯 기욤과 마틸드를 미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유 성채는 시당국이 건물을 사들이면서 시청이 성 안에 자리 잡았고 다른 한쪽에는 루이 필립 박물관이 들어섰다. 건물은 외관만큼이나 내부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성의 마지막 소유자는 루이 필립의 후손으로 자신의 조상이기도 한 루이 필립을 애틋하게 여겨 그와 같이 건물과 함께 소장하고 있던 애장품들을 시당국에 기증한 결과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2천 7백 9십만 평(9,300헥타르)에 달하는 울창한 숲은 대부분 국가가 사들여 국유림으로 바뀌었다. 건물 앞의 정원은 첫 번째 주인이었던 루이 14세의 사촌이자 그랑드 마드무아젤로 불리던 안 마리 루이즈 도흘레앙의 취향을 반영하여 베르사유 정원에서 보듯 프랑스식 정원으로 꾸몄다.
저녁 햇살에 타오르는 붉은빛을 발하는 벽돌건물의 우아함에 거대한 숲을 향해 나있는 정원은 화려함을 극도로 자제한 듯한 단아함으로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내와 떨어져 정원을 산책하며 장미꽃에게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향기를 상상하면서 나는 내 젊은 청춘의 결혼에 대한 생각을 이어갔다. 1995년 가을 파리 16구에 위치한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마친 나는 한복을 입은 채로 아내의 손을 잡고 샹젤리제 대로를 건너뛰고 있었다. 그곳에는 가족대신 결혼식에 참석한 수많은 하객들이 피로연회장에서 우리 두 사람 신혼부부를 애타게 기다리던 중이었다. 샹젤리제 공원의 마로니에들은 샤토 위의 마로니에들처럼 가을햇살에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정원을 거닐고 있는 아내를 카메라에 담자 그녀가 환히 미소 지었다. 순간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손을 내미는 의미는 무엇일까 또한 그 크기는 얼마나 될까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정원을 되돌아 나올 때까지 그 의미나 크기를 짐작할 순 없었다. 되돌아 나온 정원 입구에서 나는 아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