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65화
[대문 사진] 지베르니 모네 기념관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골길을 십여 분 달린 끝에 마침내 지베르니 마을에 도착했다. 아무도 마중하는 이 없고 어느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미루나무 숲 그늘아래 차를 주차시킬까 생각하다가 이왕이면 좀 더 가까이에 세워두는 것이 낫겠다 싶어 벚나무 그늘아래 차를 주차시키고는 맞은편에 위치한 건물의 독특한 외관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멋진 외양을 자랑하던 건물은 여행안내사무소였다. 봄부터 가을까지만 개관하는 모네 기념관과 수련정원에 대한 관심은 이제 전 지구적인 관심사항이 되었다. 비좁은 여행안내사무소는 무언가를 문의하고자 길게 늘어선 인파로 좁은 공간이 터져나갈 듯 북적거렸다.
아니 마을 전체가 여행객들로 술렁거렸다. 모네가 처음 지베르니로 이사 오던 때는 인구가 겨우 350여 명 남짓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지만, 한 세기가 지나자마자 마을은 엄연히 세계적인 명소로 이름난 예술가 마을이 되었다.
모네가 루이 조셉 생제오에게 세 들어 산 농가는 모네 생전에 구입하여 확장을 거듭하다가 사후에는 자식들에 의해 완벽하게 보존되어 이후에 클로드 모네 재단이 설립되면서부터 명실상부한 예술가의 성지로 거듭날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모네 기념관이나 수련이 있는 정원이나 지베르니 마을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중앙로나 할 것 없이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때늦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들어간 농가를 개조한 식당도 사람들로 꽉 차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주문한 음식은 메뉴가 간단해서인지 아니면 문 닫을 시각 이어서인지 10분 만에 나왔고, 시장이 반찬이라고 허겁지겁 속을 채워 가는데 관광지에서 매번 이렇게 급하게 식사를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스스로 따져 물어보았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무엇에 쫓기듯 서둘러 식사를 마쳐야 하는 조급함이 여행 내내 자리했다. 식사 때만이라도 단체관광객 수준을 벗어나고자 몇 번이고 다짐했건만, 자유여행이든 요즘 유행하는 라르고 여행이든 허겁지겁 빈속을 채우는 습성은 여전했다.
여행지에서의 식사는 그래서 언젠가부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이루어졌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거품마저 사라진 미지근한 생맥주로 목을 축이며 어느 봄날 모네의 수련이 있는 정원을 둘러본 뒤의 소감을 적은 노트를 다시 펼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