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66화
[대문 사진] 모네의 해 뜨는 인상, 마르모땅 미술관
화가는 파리 생 라자르 역에서 기차를 타고 루앙으로 향한다. 루앙에서 다시 열차를 갈아타면 항구도시 르 아브르에 이를 것이다. 르 아브르는 화가가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대서양 연안의 도시다.
화가는 서둘러 튜브물감과 오일, 팔레트, 캔버스와 붓이 들어있는 화구뭉치와 이젤을 등에 짊어진 채 막 기차에 올라탄 참이다. 기차는 생 라자르 역을 벗어나 파리 근교를 통과하여 어느새 세느 강변 아르장퇴유를 지난다. 아르장퇴유는 화가가 신혼살림을 처음으로 꾸린 곳이다.
그곳은 또한 아내 까미유가 저 세상으로 떠난 곳이기도 하다. 살아생전에 가난에 찌들어 병약했던 그녀의 얼굴이 차창을 통해 어른거린다. 화가는 눈을 질끈 감는다. 오늘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그저 물끄러미 창밖만을 내다본다.
생 라자르 역에 들어섰을 때 잠깐 희 부연한 증기를 뿜어내고 있는 기관차와 증기로 가득 찬 플랫폼이 강렬하게 시선을 끌기는 하였으나 기차는 이내 출발하고 말았다.
세느 강변에 열차가 이르자 강둑에 줄지어 선 미루나무들이 시선에 잠시 고정되었다. 아르장퇴유를 지나치면서부터 자꾸만 병마에 시달리다 죽어간 아내의 얼굴이 다시 어른거렸다.
그것도 잠시 기차는 세느 강을 따라 굽이굽이 나있는 길로 들어서서 멈추지 않고 달렸다. 강변을 따라 시원한 구릉이 펼쳐졌고 화가의 눈에는 구릉과 강변의 풍경이 서로 엇비슷하게 교차해 갔다.
이제 마흔넷, 그러나 아직도 화가는 미혹에 시달렸다. 그의 표정에는 ‘빛의 화가’란 영광스러운 칭호에 부합할 만한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초조감이 짙게 배어있었다.
화가는 굳은 표정으로 강변에 줄지어선 미루나무들을 바라보았다. 한때 치기로 그리던 나무들이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나간 줄기를 그릴적마다 스스로 벅찬 감정을 들끓게 하던 나무들이기도 했다.
잠시 공허한 들판에 몇몇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르누아르, 시슬레, 종킨트, 그리고 전쟁을 피해 잠시 런던에 체류할 때 알게 된 미국출신 화가 휘슬러의 얼굴이 나무사이로 겹쳐졌다 사라졌다.
처음 「해 뜨는 인상」이 나다르의 아틀리에에서 전시되던 날, 기자였던 르루아가 그림에 붙인 제목 ‘인상’이란 말을 갖고 조롱 섞인 어조로 자신을 포함하여 전시회에 참가한 동지들을 한데 싸잡아 비아냥대던 일이 떠올랐다. 화가는 순간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이제 사랑하는 아내 까미유도 저 세상으로 떠났고 새 여인 알리스가 새로운 평온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차창을 통해 빛의 소멸과 생성 그리고 그를 포함한 일군의 화가가 시도한 인상주의의 노을을 그려볼 따름이었다.
기차가 어느새 세느 강 협곡에 분지처럼 들어앉은 베르농에 도착했다. 화가는 주섬주섬 화구 꾸러미를 들고 허둥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플랫폼에 내린 그는 한참을 멍하니 허공만을 응시했다.
“그래 바로 저곳이었지. 내 삶을 새로 시작하려 했던 곳이.” 그가 두 번째 아내가 된 엘리스와 새 삶을 차린 곳은 강물이 산 언덕에 막혀 에둘러 둥글게 휘돌아가는 베르농과 가까운 지베르니였다. 앞으로 화가가 살아온 만큼의 긴 세월을 살아갈 곳이었다.
‘빛의 화가’, ‘인상주의의 완성자’로 불리는 클로드 모네가 지베르니로 이사한 것은 1883년의 일로 그의 나이 43세 때였다. 처음 농가 한 채를 세 들어 살다가 집을 구입하고 정원을 꾸민 것은 1890년, 마침내 「루앙 대성당 연작」이 대성공을 거두자 길 건너편 땅까지 매입하여 연못을 파고 세느 강의 지류인 엪트 강물을 끌어들여 수련을 키우기 시작한 모네는 그의 전 생애의 딱 절반인 43년간을 이곳 지베르니에서 보낸다.
당시 농가 수십 채에 불과하던 시골마을에, 그것도 주민들 상당수가 농사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시골 구석에 느닷없이 나타난 빛의 화가는 농업용수로 쓰기에도 부족한 엪트 강물을 끌어들여 고작 수련 따위나 키운다고 난리법석을 피웠다.
농부들에게는 실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분노한 동네주민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협조를 구하고 강물을 끌어들이는 데에 따른 적절한 보상까지 제시한 모네는 루앙에서 데리고 온 정원사들을 시켜 연못을 파고 강물을 끌어들인 뒤 마침내 수련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고 난 뒤, 모네가 몰두한 것은 지상 최대의 화가 전용 야외 아틀리에라 할 수 있는 정원을 꾸미는 일이었다. 나아가 일본 목판화의 영향을 받은 모네는 히로시게가 작품에 묘사한 일본식 다리를 정원 한쪽에 설치하고 다리 위에서 조망하기 좋은 연못 한가운데 수련을 심었다. 수련은 점차적으로 빛의 변화에 따라 당시 최대 크기의 캔버스에 그 자태를 드러낼 참이었다.
세월은 흘러 그 역시 차츰 명성을 얻어갔다. 행운도 뒤따랐다. 「미루나무 연작」에 이어 「루앙대성당 연작」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빛의 강도와 그 양으로 말미암아 서로 달리 보이는 사물의 미묘한 차이를 화폭에 담은 작품이다.
이 그림들을 통해 모네는 인상주의의 이론을 확고히 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명성까지도 함께 얻었다. 이제 회화는 문학적 서사나 신화와 성서의 주제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화가 눈에 비친 사물만이 오롯이 화폭에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
바라보는 관객 역시 회화에 대한 어떠한 이해나 지식 없이 화가가 표현한 대상을 편안하게 바라만 보면 되었다. 의미가 제거된 그림, 표현만이 남은 그림, 이제 아무런 제약 없이 그림 자체를 즐기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는 광학의 발전이 가져다준 쾌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네는 이에 머물지 않고 연못에 수련을 키우며 때마다 수련을 화폭에 담아 갔다. 「수련 연작」은 빛의 화가가 이제까지와는 달리 사물을 관조하는 데로 나아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수련은 빛이 사라지면 물속으로 사라졌다가 햇빛이 강할 때야 만이 다시 수면 위로 나와 꽃을 피우는 특이한 식물이 아니던가?
수련을 키우면서 관찰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던 모네는 자신이 키운, 자신이 관찰한 끝에 얻은 ‘빛의 세계’를 화폭 위에 정치하게 담아갔다. 이로써 “사물은 바라보는 이의 시각과 빛의 변화에 따라 달리 보인다.”라는 저 유명한 정의를 뒷받침할 수 있게 되었다.
모네는 수련을 대형화폭에 담기도 했다. 기존의 아틀리에로는 부족해 대형 화실을 새로 짓고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수련」 제작에 몰두했다. 친구인 대통령 클레망스가 정부예산으로 그가 그린 연작을 사겠다고 제의했지만, 그는 결국 단 한 푼의 돈도 받질 않고 국가에 이를 기증했다. 그럼으로써 이 여덟 폭의 대형화는 단 한 점도 빠짐없이 파리에 소재한 <오랑쥬리 미술관>에서 행복하게도 관객들 앞에 전시되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오랑쥬리 미술관 측은 층과 층 사이 계단 한쪽 구석진 벽에 전시되던 대형 수련 연작을 온전히 전용면적에 전시할 목적으로 미술관 건물 전체를 개조했다. 그림의 크기 때문에 미술관을 새로 짓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로써 벽면에 걸려있는 대형 수련 연작과 이를 바라보는 관람객이 한데 어울려 마치 연꽃과 그 한가운데 위치한 섬이 되는 독특하고도 기상천외한 풍경이 연출되기에 이르렀다.
이 매혹적인 미술관 내부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고자 전세계에서 수많은 관람객이 쇄도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쯤 되면 모네가 ‘국민화가’란 칭호를 부여받은 사실에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저널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2004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판매된 안개 낀 템즈 강변을 그린 모네의 그림이 무려 237억 원에 거래되는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했다. 이 기록은 또다시 경신되었다. 런던과 뉴욕을 오가며 모네의 그림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2007년 일본 국왕이 지베르니를 방문하여 모네가 일본 문화에 관심을 보인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물의 정원[1]에 철쭉나무를 기념 식수했다. 이보다 앞서 1996년에는 힐러리 클린턴이 지베르니에 몰려든 미국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아메리칸 뮤지엄› 개관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지베르니를 다시 찾던 날 평범한 나로서는 이런 정치적 사건들을 개의치 않고 오로지 화가의 성소만을 돌아보고자 애썼다. 이제는 주인도 바뀌어 클로드 모네 재단이 관리하는 모네 생가와 거장의 아틀리에에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되찾고 방문객을 맞고 있었으며, 모네가 화초를 키우던 정원은 정원사들이 돌보고 있었다. 지하통로 너머에 자리한 연못엔 여전히 일본식 다리가, 다리 위로는 등나무 줄기가 피워 올린 등꽃이 무성하고 수련은 이제 막 꽃잎을 피우려던 참이었다. 그렇듯 그곳엔 거대한 빛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1] 모네의 정원은 둘로 나뉜다. 생가 앞에 위치한 정원은 ‘꽃의 정원(Jardin des fleurs)’이고, 길 건너 수련이 있는 정원은 ‘물의 정원(Jardin des eaux)’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