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정원

몽생미셸 가는 길 68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지베르니 모네 기념관 물의 정원


이제 정원을 돌아볼 차례다. 처음 1헥타르에 불과했던 정원은 「루앙 대성당 연작」이 성공을 거두면서 작가로서의 명성과 함께 어마어마한 돈을 손에 쥔 모네[1]는 길 건너편에 정원을 또 하나 만들 것을 계획했다.


이를 위해 루앙에서 정원사들을 불러들여 조성한 정원이 ‘물의 정원’이라 불리는 수련정원이다. 모네는 정원 입구에 일본식 다리를 설치하고 연못 한가운데에는 수련을 심었다. 그리고는 수련을 키우며 수련 연작을 완성해 갔다.


수련정원을 빠져나와 다시 되돌아온 모두 여섯 명의 정원사가 돌본다는 ‘꽃의 정원’은 그야말로 꽃의 지상낙원이다. 이름도 생소한 꽃들 하며, 이름도 모르는 화초들이 저마다의 색조를 뽐내고 있는 것이 장관일 정도로 정원 가득 화초들이 심어져 있다.


나는 정원에서 그야말로 모네의 예술이 만개한 듯한 상상에 사로잡혔다. 얼마나 가난에 찌들었으면 이 화사한 정원에서 한 나절 아니 남은 인생을 모두 소진하고자 작정했을까?


인간은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것도 노력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혜다. 그 특혜를 톡톡히 누린 몇 명 안 되는 화가 중의 한 사람이 클로드 모네다.


이 화사하고 기묘한 색의 파노라마를 펼치고 있는 화초정원은 모네가 부단히 노력하여 이룩한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뿌리 뽑히고 재산을 탕진하고 거덜 난 사람들이 기도하며 마지막으로 향해가던 몽생미셸과는 달리, 모네는 오로지 부단한 노력 끝에 세속의 한가운데 그만의 천국을 마련한 것이다.


꽃의 파라다이스(꽃의 정원)에서 모네는 다시 수련의 세계(물의 정원)로 침잠한다. 수련은 그에게 힘들었던 시절을 유일하게 상기시켜 준 모티프였다. 이제 그는 더는 고생할 필요가 없는 순간에조차 인간 삶의 조건과도 같은 수련의 생태에 빠져든다.


이와 같은 탐색은 봄에서 겨울까지, 새벽 이른 시각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이어진다. 수련을 바라보며 화가는 인생을 관조하기에 이른 것이다. 평범한 속인의 주절거림처럼 인생은 별 것 아닌 게 아니라, 모파상이 들려준 것처럼 인생은 행복도 불행도 아닌 것이 아니라, 모네에게 있어서 인간 삶은 수련처럼 햇빛을 받아 환히 솟아오르는 잎과 봉오리가 말해주듯 치열하고도 지난한 노력을 동반한 것이어야만 했다.


그는 깨닫고 있었다. 부처나 예수가 아닌 다음에야 도달할 수 없는 인간 삶의 명제까지도 그는 비로소 수련이 꽃잎을 피울 때마다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클로드 모네, 수련, 파리 오르세 미술관.


모네가 그린 「수련」(오르세 미술관 소장)은 빛의 화가가 이제까지와는 달리 사물을 관조하는 데로 나아갔다는 것을 일러준다. 수련은 빛이 사라지면 물속으로 사라졌다가 햇빛이 강할 때만이 다시 수면 위로 나와 꽃을 피우는 특이한 식물이 아니던가.


수련을 키우면서 관찰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던 모네는 자신이 키운, 자신이 관찰한 끝에 얻은 ‘빛의 세계’를 화폭 위에 정치하게 담아내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사물은 바라보는 이의 시각과 빛의 변화에 따라 달리 보인다.”라는 저 유명한 정의를 뒷받침할 수 있게 되었다.


꽃의 정원 한쪽에 놓여있는 벤치에 앉아 다시 가야 할 길을 가늠하던 도중 한 줄의 생각이 내가 왜 그토록 모네에게 한동안 빠져있었는지를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일단 내가 모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모네가 그림을 그릴 때마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그림을 계속 고치고 수정하고 다시 고쳤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리고 그림 한 점을 완성하면 그 그림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는 화가의 치열함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노르망디 해안을 홀로 여행하면서 빠짐없이 그림으로 남겼다는 끈질김도 함께 거론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모네처럼 이미 쓴 글을 다시 고치고 다듬은 끝에 더욱 세련되고 의미심장한 글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 탓에 한동안 모네의 작법을 연구하기까지 했다.


다른 하나는 모네가 말년에 완성한 「베네치아」에 있었다. 런던의 국회의사당 연작과 템즈 강 연작에 이어 그는 르네상스의 바다로 헤엄쳐갔다. 거기서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들에 짓눌림 없이 그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풍경화를 완성해 갔다.


비록 연작은 아니었지만, 이 풍경화를 통해 모네는 인상주의의 르네상스를 환기시켜 주기에 이르렀다. 작가의 시선에 따른 그림다운 실체가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이는 티치아노가 해석한 15세기 이탈리아 풍경과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버전이었다.


모네만의 특유한 화법으로 완성해 간 「베네치아」는 티치아노에 버금가는 새로운 예술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듯 꽃의 정원 한쪽 구석에 놓인 벤치에 앉아 써 내려간 글을 다시 읽고 있는 중이었다.


클로드 모네가 살아생전 조성한 ‘꽃의 정원’과 ‘물의 정원’




[1] 당시 「루앙 대성당 연작」 그림 한 점 가격이 12,000프랑이었으니 요즘으로 환산하면 1억 2천만 원에 버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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