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르노가 들려주는 노르망디 왕국 이야기 29화
[대문 사진] 15세기 때 제작된 <롤로의 세례>
바이킹들과 그들의 우두머리의 개종은 조약의 기본조항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는 기독교도들의 땅을 그들에게 불하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죠. 랭스 대주교는 이러한 점을 환영했을 뿐만 아니라 루앙 대주교와 의견을 나누기까지 했습니다. 개종만이 그들과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던 셈입니다. 또한 이중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더해서 이제는 충성 서약과 세례 또한 이미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국왕들과 몇몇 바이킹의 우두머리들 간에 화해의 의식은 일상화되어가고 있었죠. 뒤동이 생각한 대로 로베르 후작 또한 자기 차례가 되어 롤로가 세례를 받을 것을 주선했고 단순왕 샤를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는 “악마의 과오들을 그물 속에 가둬두려면” 이 작자를 반드시 개종시켜야만 한다고 믿었던 것이죠. 그는 롤로에게 자신이 대부[1]가 되겠다고 자처했으며 그를 초대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롤로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것이며, 구원의 영세식에 축성된 물로 정화되기에 이르렀다.”라고 보았습니다.
롤로가 세례를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912년 첫 달에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세례명은 그의 대부와 같은 로베르라 정했죠. 968년 생 드니 수도원에 하사한 리샤르 1세의 칙서는 뒤동이 이야기한 바를 증거 해주고 있습니다. 세례명이 그의 ‘조력자 로베르(aïeul Robert)’였다는 사실 말입니다.
롤로와 그와 동행한 이들 그리고 그의 군사들은 그가 한 것처럼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한 이후에 “그들은 신앙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고 평화를 구가하게 되었”습니다. 923년에 씌어진 흘로도야르의 「연대기」 역시 그렇게 전합니다. 확실히 “그들은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흘로도야르는 전하기를 루앙의 대주교 기(Gui)가 요청한 것에 대해 에르베는 교황의 견해를 전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그들이 다시 그들의 우상숭배로 돌아서지 않을 것을 분명히 조약의 조항에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들은 세례를 받게 되었르며, 재차 다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뒤에는 다시 이교도로 살았고, 기독교도들을 죽였으며, 성직자들을 살해하고, 우상들에게 제물을 바쳤다.” 이는 요한 10세가 랭스 대주교에게 화답한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조심성 있게 관대함을 갖추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죠.
공식적으로 개종을 하였음에도 실제로 이교도에 속한 무리들은 상당한 숫자를 이뤘고 이교도들은 끈질기게 오랫동안 생명력을 이어나갔습니다. 기욤 드 쥬미에쥬가 이야기한 새로운 개종자들에 대한 의심스러운 진단은 진중한 것이었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바이킹에 대해 노르망디 어로 표현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아주 위험한 일에 처할 때마다 예전에 그들이 믿었던 도르(þórr) 신을 외쳤던 것입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기독교와 그들이 원래 믿고 따랐던 그들의 신을 향한 ‘신앙의 뒤섞임’과 같은 혼란상태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긴 검을 찬 기욤의 살해에 관한 애가」의 세 번째 시구는 “그의 아버지 사망 이후로” 기욤에 적대적이었던 ‘이교도들’을 상기시켜 줍니다. 아데마르 드 샤반느는 「연대기」에서 롤로는 죽기 얼마 전까지고 세례를 받고 난 뒤에 내팽개쳐버린 원래 그가 믿고 따르던 신들에게 바칠 목적으로 다수의 기독교도들을 희생 제물로 삼을 것을 명령한 장본인이었다고 강조합니다.
[1] 대부(代父, parrain)란 가톨릭 영세 때 신자가 될 사람의 영적 보호자를 가리킵니다.
[2] 동판화는 1825년 오귀스탱 티에리가 펴낸 『노르망디 인들에 의한 영국 정복의 역사』에서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개인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