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르노가 들려주는 노르망디 왕국 이야기 33화
[대문 사진] 코탕탱, 바흐흘뢰흐 항구의 정복왕 기욤(윌리엄)의 배 문장
영지 분할에 대해 언급하자면, 먼저 뒤동이 롤로를 이야기하면서 사용한 후니쿨로 디비지트(funiculo divisit)란 표현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성서적 의미에서 ‘신으로부터 나누어 받은(tira au sot)’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의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도 있죠. ‘끈으로 분할’이란 말은 새로운 토지대장 작성을 위하여 측량을 한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으로부터 나누어 받은 몫(partage)이란 말은 최근에 와서 텐마크에서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는 ‘태양으로부터 나누어 받은 몫(solskifte)’이란 표현과 비교해 보면 그 의미의 연관성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런 점에서 들판의 터라는 것도 세분화를 통해 설정된(toft) 것에 좌우되며, 측량 자체는 측량 실(reb)로 완성된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노르망디 지방에는 접미어가 -tot로 끝나는 지명이 3백 개가 넘습니다. 접미어는 정확하게 말해서 덴마크 어인 toft에서 비롯한 총칭명사입니다. 이는 스칸디나비아 인들의 정주가 저 시골구석까지 침투했음을 여실히 증거 하는 것이죠.
Toft는 무엇보다 농가가 들어선 토지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농가 전체, 즉 농가를 둘러싼 부속건물이 자리하고 있는 땅을 일컫죠. 노르망디 방언을 살펴보면, 단순과거 형태의 어휘가 오랫동안 지명으로 활용된 경우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지명에 Tot나 Tots, 게다가 여성형 Tôtes가 들어간 어휘는 수없이 많습니다.
바이킹들은 그들의 일상이 된 농업에 전념하기 위해 군사 활동을 단념했습니다. 예를 들어 코(Caux) 지역만 보더라도 바이킹들의 체계적인 정착이 이루어진 것을 반영하는 그와 같은 어휘들이 들어간 지명들이 수없이 눈에 띕니다. 내륙 깊숙이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죠. 바이킹들의 정착은 세느 강 연안으로부터 코 지역 전체로 확산되기에 이르렀음을 예증해 주는 아주 좋은 사례이기도 합니다.
대략 -tot로 끝나는 노르망디 지명의 절반은 접두사가 스칸디나비아 식 총칭명사이거나 형용사일 때가 태반입니다. Appetot(루앙 지역)는 Epli(사과)라는 접두사가, Seltot는 selja(버드나무)라는 접두사가, Languetot(코 지역)는 langr(긴)란 접두사가, Hottot(저지 섬)는 hór(높은) 또는 haugr(산말랭이, 작은 언덕)란 접두사가 따라붙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스칸디나비아 식 사람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코 지역의 Hattentot는 Hásteinn에서 왔고, 건지 섬에 속한 Manetot는 Máni에서 왔습니다.
물론 프랑크 식 인명에서 비롯한 지명도 있죠. 그리고 꼭 그렇다고 확신에 차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상당수의 지명이 그와 같은 경우에 속합니다. 프랑크 식 이름이 지명으로 바뀐 경우(Robertot)는 허다합니다.
이 경우에는 두 가지 방법을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첫째로 바이킹들이 세례를 받으면서 식민지화된 곳들에 프랑크 식 이름을 채택한 경우이고, 두 번째로는 바이킹들이 접촉했던 프랑크 인들과 함께 프랑크 식으로 꾸며지거나 만들어진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너그러운 로베르(로베르 르 마니피크) 노르망디 공작의 문서들 가운데 약 1030년경에 씌어진 한 문서에는 루앙의 대성당에 우이이(Ouilly) 토지를 하사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참조하면, “속어로 망슬로트라 부르는 33개의 작은 조각들”이란 표현이 그러합니다.
또한 토지 분할이란 표현도 나옵니다. ‘망슬로트(mansloth)’는 글자 그대로 ‘한 사람의 몫’을 의미하죠. 이는 또한 ‘몫(part)’이란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뜻을 지닌 말은 노르웨이 어에서 비롯된 노르망디 인들이 사용한 또 다른 어휘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델(delle)이란 단어가 그것이죠. 이 말은 세분된 작은 땅 조각을 가리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