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26화
샤를마뉴 대제는 온천이 나오는 이유로 아쿠애 그라니(Aquæ Granni)라 불린 고대 온천 지역인 액스 라 샤펠에 자신이 거주할 궁전을 지을 것을 고려했습니다. 그는 807년부터 거의 남은 생애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냈죠.
794년부터 80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공사가 이루어져 궁전을 연상케 하는 복합적인 건축물이 들어섰습니다. 성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었으며, 건축가 외드 드 메츠의 설계에 따라 지어졌습니다. 성당은 당시에 지어진 건축물들 가운데 유일한 유적으로 남아있습니다. 대제는 814년 사망한 뒤 이곳 성당에 묻힙니다. 이후로 도시는 성당 이름을 따서 액스 라 샤펠[1]이라 불렀습니다.
중앙집중식 설계로 성당은 높이가 31미터에 달하는 원형 천장 아래 8 각형의 나선형 중심 기둥을 갖춘 모습입니다.
원형 천장은 모자이크로 장식되었으며, 천국에서 권좌에 앉아있는 존엄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형상화되었습니다. 천장 벽화 원작은 소실되었고 현재의 천장화는 19세기 와서 다시 제작한 것입니다.
성당 안의 8 각형 중앙부는 벽면에 들어선 16개의 제단들을 아우르는 회랑에 둘러싸여 있죠. 회랑의 천장은 교차 궁륭 형태로 이어집니다.
건물의 몸체는 3층 높이로 이루어졌고 지상층은 커다란 활처럼 휜 아케이드들로 마감하였죠. 검은색과 하얀색을 적당히 섞어 마치 색이 바랜 듯이 흐릿하게 칠한 홍예 머릿돌이 인상적입니다. 중간층에는 특별석이 마련되어 있으며 꼭대기에는 창문들도 나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직사각형의 후진이 자리합니다. 오늘날엔 고딕 양식으로 개축되어 주제단이 차지하고 들어섰습니다.
서쪽 입구 앞쪽으로는 안뜰도 자리합니다. 이 기념비적인 건축물인 현관은 총 3층으로 나뉜 아케이드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측면에 계단을 갖춘 작은 탑 두 개가 이를 지탱하듯이 붙어있습니다.
내부장식은 고풍스럽게 마감했습니다. 고대의 방식을 본뜬 코린트 양식의 기둥머리, 반암을 깎아 만든 기둥들, 대리석, 화강암, 모자이크 등등. 사무소로 쓰이는 건물들 또한 지상층에 자리한 너무나도 유명한 건축물들입니다.
황제는 아주 상징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황제가 앉을자리는 신자들과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를 동시에 한눈으로 굽어보는 계단 형태의 교각 위에 설치되었죠. 서쪽에서 제일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특별석은 원형 천장에 전지전능한 모습으로 새겨진 그리스도가 내려다보는 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같은 층에 생 소베흐 제대가 자리하고 있기도 합니다. 위로 동쪽 후진 안에는 성 베드로 제단이 놓여있습니다.
이러한 공간 배치는 당시 교회에서 제일 지위가 높은 자의 자리를 고려한 처사일 것입니다. 카롤링거 왕조의 군주는 곧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하느님과 신자들의 공동체를 이어주는 매개자였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공간 배치는 황제의 권력이 어느 정도에 달했는지를 단적으로 예증해 주는 척도라 할 수 있습니다.
샤를마뉴는 액스의 궁정교회를 콘스탄티노플에 세워진 황제의 궁전인 크리소트리클리노스(Chrysotriclinos)와 같은 수준으로 짓고자 고심했던 인물입니다. 8 각형 형태에다 존엄한 그리스도를 모자이크로 표현한 원형 천장을 한 이 커다란 접견실에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썼던 왕관들 가운데 한 점이 은닉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끝까지 돌려주지 않았던 샤를마뉴는 크리소트리클리노스와 유사한 교회를 라벤나에 짓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라벤나의 산 비탈 성당입니다.
샤를마뉴 대제는 서둘러 산비탈 교회를 완공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를 통하여 자신의 궁전이 위치한 액스 한가운데 성당을 새로 짓고자 갈망했던 이유에서였습니다.
[1] 액스 라 샤펠(Aix-la-Chapelle)에서 액스(aix)는 ‘축’이란 뜻이고 라(la)는 정관사, 샤펠(chapelle)은 성당을 가리킵니다. 자의적으로 ‘성당의 축’이란 뜻입니다. 오늘날 이 옛 중세도시는 독일과 벨기에 그리고 프랑스 국경과 인접한 아헨(Aachen)이란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게르마니아(독일 언어권)와 갈리아(프랑스 언어권) 문화가 한 축을 이루는 경계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