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의 이상적 설계

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27화

by 오래된 타자기


816년에서 817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액스 라 샤펠 인근의 인덴에서 종교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이를 주도한 인물은 경건왕 루이와 브누아 아니안느입니다. 이때 종교회의는 제국 안의 모든 수도원들에게 베네딕투스의 계율에 입각한 수도자의 삶으로 개혁할 것을 주문했죠. 이와 같은 사실을 증명하는 설계도가 장크트 갈렌 수도원의 고문서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스위스 장크트 갈렌 수도원 설계도면, 820년경, 수도원 도서관 소장.


이 엄청난 크기의 도면은 가로 77센티미터에 세로 1미터 12센티미터에 달합니다.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당시 수도원에서 제작된 수사본으로서는 최대의 크기를 자랑합니다. 설계도는 5장의 양피지로 재단한 가죽 위에 실물을 192/1로 축소하여 그린 도면입니다.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확인된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12세기에 수도승 가운데 어느 누군가가 설계도를 발견하곤 아무것도 씌어있지 않은 설계도 이면에 「생 마흐탱의 생애」를 필사하는 행운을 얻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이 수도승은 읽기 편하도록 한 장씩 둘둘 말아 놓았습니다.


프랑스 라그라쓰(Lagrasse)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 수도원 뒷부분.


참으로 이상적인 수도원을 설계한 장크트 갈렌 수도원의 설계도는 바젤 주교(802-823)이자 라이헤나우 수도원장(806-823)이었던 하이토가 수도원을 새로 증축할 계획을 수립한 장크트 갈렌 고즈베흐(816-836) 수도원장에게 보낸 도면입니다. 수도원장은 816년에서 817년 기간 동안 개최된 종교회의에서 수도원을 증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인물이죠. 만일 이 설계도가 이후로 다시 복사된 적이 없다면 후세에까지 전해졌을 리는 만무했을 겁니다.


설계도면은 확실히 당시의 수도원 건물들을 새로 개편하고자 시도한 모델로 작용했으며 베네딕투스 성인이 선포한 규칙에 맞게 수도원 내에서의 자력갱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수도사들의 처지를 감안하여 칩거생활에 적합한 구조로 설계되었습니다.


“수도원은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갖춰진 곳이어야만 한다. 식수라든가 방앗간, 정원, 빵을 굽는 곳, 약 제조실 등 여러 서로 다른 분야가 가능한 한 곳에 모여 있어야만 한다. 일례를 들어 수도사들이 무엇이 필요해서 수도원 밖으로 달려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수도사들의 영혼보다 더 우위를 점하는 것은 없다.”(베네딕투스, 『규칙(Régle)”, 66장』).




장크트 갈렌 설계 도면에 따르면 교회는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남쪽 측면으로 4 각형의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수도원 경내를 거느리고 있죠. 수도원 경내는 정원에 둘러싸여 있으며, 공동체의 주요한 건물들이 들어차 있습니다. 이러한 건물 배치는 18세기까지 변함없이 유지됩니다.


난방시설이 갖춰진 쉼터는 수도원 경내 동쪽 회랑의 지상층에 위치하고 수도사들의 공동 침실은 위층에 자리 잡았습니다. 식당은 남쪽 회랑에 설치됐죠. 서쪽 회랑에는 포도주, 식품 따위의 저장 창고가 들어섰습니다. 교회 북쪽엔 두 개의 여인숙과 수도원 학교 그리고 수도원 숙소가 들어섰습니다. 동쪽 교회 후진 뒤쪽으로는 과수원과 약초 밭이 펼쳐져 있고, 그 옆에 묘지와 의무실도 자리 잡았습니다.


끝으로 교회와 수도원 경내의 남쪽과 서쪽에서 여러 공방들을 포함하여 수공업과 농사일에 필요한 여러 채의 건물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후의 모든 베네딕트 수도회 소속 수도원들은 이와 같은 모델을 어느 정도 도입하기 시작했으며, 지형에 따라 다양한 배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수도원 경내는 변함없이 교회 남쪽과 북쪽 높이 올라섰습니다.


프랑스에서 제일 아름다운 수도원 정원으로 손꼽히는 몽생미셸 수도원 안뜰. 안뜰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수도원 언덕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9세기말에 수도원 경내 지상층 동쪽 회랑에 교회 참사회가 더해졌습니다. 교회참사회는 공동체의 일상적인 회의가 열리는 장소이자, 참사회 사무실로 쓰였죠. 또한 공동체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카피툴룸(capitulum), 즉 베네딕투스 성인이 정한 규칙에 입각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서로 논의를 하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꺄흐낙(Carennac)의 성 베드로 수도원 경내 회랑.




장크트 갈렌 수도원은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가 경계를 이룬 호수 보덴제 인근에 위치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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