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22화
차의 방향을 튼다. 11월 안개가 걷힌 아침 길은 온화하다. 비 대신 햇살이 내리쬐는 길은 축복이기도 하다. 노르망디의 꼬 지역(Pay de Caux)의 평온하고도 고요한 길을 달려가면서 한 화가가 화폭에 담은 화사한 정오의 바닷가 풍경을 떠올려본다.
꼬 지역은 건기보다 우기가 더 긴 탓으로 습하며 안개가 자주 출몰하는 탓에 밀밭 대신 목초지와 유채밭 또는 사탕무밭이 더 흔하다. 간혹 사과나 배 밭을 스치듯 지나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칼바도스(Calvados) 지방에서 생산되는 사과증류주인 칼바도스의 독한 향내가 코끝을 스친다. 칼바도스의 진한 향은 굴뚝마다 피어오르는 참나무 장작의 매캐한 연기와 뒤섞여 여행길을 떠도는 나그네의 앞길을 혼란스럽게 만들기까지 한다.
인상주의를 완성한 화가가 수학한 항구 르 아브르(Le Havre)에서 25킬로미터, 잔 다르크가 산채로 화형 당한 고딕의 도시 루앙에서 70킬로미터에 위치한 프랑스 북서쪽 알바트로스 해안이 시작되는 에트르타(Étretat) 마을은 깎아지른 절벽이 쭉 이어지다 단애 한복판이 움푹 꺼져 들어간 협곡에 자리한 인구 약 1250여 명 남짓한, 그나마 매년 인구가 감소하는 노르망디의 한 작은 마을에 불과하다. 이 작은 어촌 마을은 해안가에 두 개의 절벽이 서로 쌍으로 마주 보고 있는 풍광을 자랑하면서 기찻길이 놓이자 수많은 화가들과 작가들 그리고 인근을 비롯한 파리의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거듭났다.
숨이 멎을 듯한 풍광에 넋을 잃은 화가들은 해안의 절경을 쉼 없이 화폭에 담았을 뿐 아니라 작가들 또한 이곳에 정주하면서 그들의 명성을 빛내줄 글쓰기에 골몰했다. 예나 지금이나 휴양지였던 마을의 내력에 더해 석회암덩어리들이 파도에 쓸리고 거친 물살에 깎이고 다듬어져 동그라면서도 매끄러운 자갈이 지천인 돌밭 해안을 자랑한다. 에트르타(Étretat)라는 지명도 이 자갈밭 해안을 가리키는 ‘돌밭’에서 유래했다.
거친 풍랑 속에 역사의 부침을 거듭하던 상처뿐인 마을은 한 화가에 의해 영고성쇠의 덫을 피해 찬란히 부활했다. 인상주의를 완성한 클로드 모네는 그 많은 바닷가를 놔두고 에트르타 마을 앞바다만을 집중적으로 화폭에 담는 바람에 누구보다도 이 마을을 세상에 알리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마을 해안가에는 그렇듯 화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2개의 절벽이 마을의 문장 속 2개의 열쇠처럼 동과 서(바다를 마주 보고 있노라면 동서가 남북으로 여겨진다)에 들어서있어서 알바트로스 해안의 그 어느 포구보다도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포흐트 다몽(Porte d’Amont)은 북동쪽에, 포흐트 다발(Porte d’Aval)은 그 정 반대편에 위치한다.
모네는 이 두 단애를 집중적으로 그렸다. 하필 에트르타 마을의 바다 풍경만을 화폭에 담는 바람에 에트르타는 모네라는 인상파 화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말았다. 모네 이전에는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가 에트르타를 찾아 영원불멸의 해안을 의미심장한 색조로 화폭에 담았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는 쿠르베의 ‘바다’보다도 모네의 ‘바다’가 더 알려져 있다.
모네는 저 대서양 한가운데 외롭게 떠있는 벨 일(Belle-Île-en-Mer)까지 찾아가서 거친 파도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 단애의 고집스러운 외로운 저항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벨 일은 지명 그대로 ‘아름다운 섬’이란 뜻이다. 끼브롱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이면 족히 닿는 거리다.
이 아름다운 섬에 연극배우 사라 베른하르트(Sarah Bernhardt)는 파리 생활을 정리하고 말년을 소일하면서 보내다가 섬의 해변의 묘지에 묻혔다. 프랑스 연극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기에 충분한 여배우가 말년을 지내다가 고이 잠든 섬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을지라도 모네가 그린 파도치는 절벽 바닷가 풍광을 화폭에 담은 그림으로 이 아름다운 섬을 기억하고 찾아가는 여행객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여행 중에 내가 만난 외국인들은 그렇듯 각국 유럽인들뿐 아니라 미국인을 포함하여 캐나다인들, 아시아에선 일본인들까지 다양했다.
모네는 자신의 명성만큼이나 자신의 화폭에 담은 장소를 명소로 만들어준 그야말로 탁월한 예술가였다. 그가 그린 에트르타의 코끼리 바위는 마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마을을 향한 길은 비좁다 못해 협소하기까지 하다. 마을 시청 건물이 있는 곳이 구도심의 출발점이다. 길들은 모두 바다를 향해 나있다. 아니 길은 바다 쪽에서 도심을 향해 방사선 모양으로 퍼져나간 모양새다.
여름 성수기엔 피서객들로 몸살을 앓는 도심 안쪽의 궁색한 골목길들을 포기하고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해 준 널찍한 대형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마을까지 걸어서 오가는 편이 나으리라.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주차장 수입은 마을의 재정수입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마을 최대 수입원이 되었다.
더불어 주차장 인근의 <괴도 뤼팽>을 탄생시킨 소설가의 생가도 한 번 방문해 보란 뜻일 것이다. 소설 속 괴도 뤼팽이 훔친 보석들을 코끼리 바위 꼭대기 동굴에 숨겨놓았다는 이야기가 구전되면서 신화화되는 바람에 지금도 많은 여행객들이 보물을 숨겨놓았다는 아슬아슬한 단애 꼭대기 동굴을 방문했다가 인증샷을 찍는다고 낭떠러지 벼랑 끝에서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전한 지역 언론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신윤복은 과연 여자인가?” 광팬은 예나 지금이나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이 믿고 있는 이야기가 허구(소설)인지 사실인지 따져 묻지 않는다. 베스트셀러란 ‘많이 팔린 책’을 가리키지만, 책 내용들은 한결같이 독자들을 현혹시킬만한 끔찍하고도 충격적이며 원색적인 문장들로 가득 차있다. 그걸 교훈이나 비유로 읽는 이는 거의 없다. 재미 삼아 나선 길이 재미에 중독되어도 독자들은 개의치 않는다. 중세의 음울하고도 암울한 소재만을 골라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움베르토 에코도 어떻게 보면 좌파 진영의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을 지닌 작가임에도 스스로 베스트셀러를 진단하고 나선다.
그의 말에 따르면, 베스트셀러란 ‘스스로의 수명보다 더 오래 사는 책’이다. 그리고 에세이 어딘 가에선 ‘이 세상은 책처럼 읽히기를 바라는 한 권의 책’이라는 그만의 유명한 정의도 내린다. “세상은 해석을 요구하는 기호들의 숲이며, 하나의 의미는 다른 의미에서 나오고 다른 의미로 보완된다는 것이다. 기호학의 거장이며, 보르헤스, 칼비노, 바르트처럼 상징과 기호의 우주를 파고들었던 작가들이 세운 교회의 성자였던 에코만큼 그런 세상을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현대 기호학의 성직자이며 서양 고대와 중세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학자 에코는 베아투스의 ‘주해’가 불러일으킨 모든 메아리 안으로 섞여 든다.”[1]
중세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스페인의 수도사 베아투스가 「요한의 계시록」을 주해한 수사본이었다. 얼마나 세상 종말을 살벌하고 끔찍하게 묘사했는지 전 유럽의 냉기로 가득 찬 수도원들마다 이를 필사하느라 추운 줄도 몰랐다고 전해진다.
[1]세스 노터봄, 『산티아고 가는 길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