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빛 바다

몽생미셸 가는 길 123화

by 오래된 타자기


마침내 에트르타에 당도했다. 2014년 여름이었다. 봄이 다 하고 막 여름으로 접어드는 때였다. 아니 2015년 겨울, 폭풍우가 몰아칠 것만 같던 겨울날이었을 지도, 아니 그보다도 더 아득한 2000년 혹은 1999년 여름날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에트르타에 첫 발을 디딘 건 그보다 더 이전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2000년 어느 여름날 한 세기가 다 하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무렵, 경제위기가 한 바탕 대한민국을 초토화시켜 놓은 그 해, 외환위기(IMF)를 막 견뎌내고 힘차게 다시 일어서려던 국가가 통째로 넘어가던 순간, 아이도 없이 부부 둘 만이 막막하게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애송이 부부를 위로해 주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찾아오신 장모님, 장인어른. 두 분의 든든한 팔에 의지해 숨 가쁘게 오르던 아몽(Amont) 언덕길. 나는 힘들게 기억 속에서 빛바랜 사진 한 장을 꺼내 들고야 만다.


포흐트 다몽을 향한 언덕 위에는 자그마한 수호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아니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무사 귀환하는 어선을 수호해주고 있다.
아몽(Amont) 언덕 수호의 성모 마리아 성당 앞 절벽 쪽으로 걸어가면 마주하는 포흐트 다몽(Porte d'Amont) 단애.


스스로 저버리려 작정했던 생(生), 귀국길에 오르고 싶던, 올라야만 했던 그러나 하루하루 스스로를 위로하며 견뎌내야만 했던 삶, 피폐해 질대로 피폐해진 옹색한 일상, 햇빛도 거절한 그늘진 삶 속으로 성큼 찾아오신 두 분이 아니었다면 그 힘든 여름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삶은 그렇듯 여름에 피는 수국꽃마냥 환하게 내 어둔 일상의 그늘을 걷어내던 장인, 장모님의 햇살에 그을린 환한 미소로 말미암아 기억의 고통보다는 추억의 아름다움이 되기에 이른다. 그런 생각이 앞서는 것은 에트르타에서만 일까?


에트르타의 상징이 된 코끼리 바위.


고달픈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쇠잔한 삶의 빛바랜 사진을 인화되지 않을 필름 통에서 다시 꺼내 든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아몽(Amont) 언덕에 올라 수호의 성모 마리아(Notre-Dame de la garde)성당을 등지고 펼쳐놓은 돗자리 위에서 코끼리 바위를 바라보며 아내가 아침 일찍 준비한 김밥을 입에 넣으면서 서걱이던 바다는 이젠 결코 외롭지 만도 쓸쓸하지도 않다. 외려 따사로운 겨울날 어깨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 햇살과도 같이 추억의 소중한 편린일 따름이라고 스스로의 어깨를 다독이는 2023년 12월로 향한 겨울의 길목, 바닷가 면한 길에 태연히 차를 주차시키고는 물살이 일렁이는 바다를 향해 걸어가면서 나는 나를 그렇게 조심스레 위무한다.


Etretat, Mont Amon, Notre Dame.JPG 에트르타 아몽(Amont)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을 화첩에 담아보았다.


차를 주차시켜 놓고 바다 쪽으로 걸어가는 도중 만난 눈(雪) 대신 얼굴로 쏟아지는 차가운 빗방울, 휘몰아치는 광풍, 겨울은 너무도 춥고 버겁기까지 하다.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처럼…….


희부연한 빗줄기 속에 가까이 아몽 언덕으로 오르는 오솔길이 숨 가쁘다. 턱까지 차오르는 물살이 코끼리 바위를 연신 후려치고 있다. 인적마저 끊긴 자갈 해변!


코끼리 바위 부근엔 원래 굴 양식장이 있었다. 세계 최대의 굴 양식장이 있는 브르타뉴 지방의 깡깔(Cancale) 앞바다, 잉크물을 풀어놓은 듯한 바다에서 건져 올린 굴들을 바닷길을 이용해 배로 이곳까지 실어 나른 뒤, 코끼리 바위 아래 양식장에서 숙성시켜 하루 종일 마차를 이용하여 베르사유 궁전으로 나르던 때가 있었다. 아침마다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께서는 그렇게 건져 올린 신선한 굴을 맛있게 드셨다는 후일담마저 전해오는 얼룩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뭉개버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대혁명의 불길이 아니라 1940년부터 44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독일군이 진주하면서 이곳에 철옹성 같은 요새를 지은 탓이다.


왕비께서 드시던 굴 맛은 어떠했을까?[1] 주차장 인근의 석화 도매상에게 굴 한 접시를 사 먹어 본 들 그 맛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이 우중충한 날씨에. 석화 안의 짜디짜면서도 달코롬한 바닷물은 혀끝에 닿기 전 빗물이 앞을 가려 굴 맛조차 제대로 날 리 없는 참혹한 절기에 여행을 떠나온 스스로가 한심할 따름이지만, 인생의 겨울은 그보다 더 어두워져 가는 해안의 찻집을 골라 유리창 밖으로 시선을 내밀고 곱게 물들어가는 저녁노을을 한없이 기다려보는 것에 묘한 반전이 일어난다. 세상의 이치를 한참 등진 듯한 이 기다림은 때론 슬프지만 감미롭기만 하다.


노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꼭 나이 탓만이 아니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에서 느끼는 감정의 일렁임과는 달리 해 지는 서쪽서 맞이하는 저녁노을은 차분한 두려움마저 교차하는 설렘이다.


유리창 앞에서 나는 그렇듯 한참을 비가 그치기만을, 노을이 바다 위로 퍼져가기만을 기다렸다. 모두가 문을 닫는 시간에 바다가 밤을 향해 열리기만을 한없이 고대하고 있었다. 마침내 저 회색빛 물살이 어느새 잉크 빛으로 물들어가리라 상상하면서. 내 단단한 믿음에 퍼붓는 빗줄기의 우울한 불안마저 걷히리라 확신하면서. 하여 나는 내 스스로 창조된 세계로 몰입하리라 희망하면서.


그때서야 동종 생 클레흐 호텔 방에 두고 온 카메라가 생각났다.


자연의 빛, 그 소멸이 아름다운 건 때가 되면 스스로 사라질 줄 알기 때문이다.





[1] 우리가 흔히 먹는 굴(石花)은 학명으로 ‘일본 굴’이다. 이에 뒤질 새라 세계에서 제일 많이 굴을 생산하는 프랑스는 납작하고도 짠맛이 강한 가리비조개 모양의 굴을 학명으로 등재했다. 이런 종류의 굴은 그래서 ‘프랑스 굴’이라 부른다.

이른바 ‘프랑스 굴’이라 학명으로 등재된 가리비조개 모양의 납작 굴과 프랑스 최대의 석화 산지인 깡깔(Cancale) 바닷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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