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쿠르베를 추모함

몽생미셸 가는 길 124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귀스타프 쿠르베, 폭풍전야, 필라델피아 미술관


비가 내린다. 포구에 한없이 빗줄기를 쏟아붓는다. 해양성기후는 날씨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일기예보도 빗나가기 일쑤다. 호텔밖을 나서야 하는데 나서기조차 두렵다. 아직 돌아볼 곳도 많지만, 억수같이 퍼붓는 빗물엔 사물마저 흐려 보인다. 흐려진 사물들 곁에서 바다를 망연히 바라보는 순간도 여행의 또 다른 멋인 건 분명하지만, 차라리 호텔방 유리창 앞 뜨거운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상념에 젖는 것도 괜찮은 일일 듯 싶다. 그 순간만큼은 바다가 더 잘 보이지 않을까? 기대는 항상 생각을 밑돈다. 비 내리는 바다는 마냥 고즈넉하기만 하다. 그것으로 족하다. 유리창밖 세상은 불순하게도 비에 갇혀있으니.


문득 2014년의 여행노트를 꺼내든다. 차 한 잔의 온기로 천천히 읽어내려간다. 생경하다는 느낌이 끼어들지만, 그 해는 참으로 불안정하고 어설프고 아픈 상처같이 쓰라기만 하다. 보다 명료한 삶을 살기로 작정했지만, 모든 것이 생각을 이기지 못하고 한없이 주위로 불어닥치는 바람에 흩날리기만 했던 주변인의 삶을 끝끝내 청산하지 못한 나날들이었다.


2023년 지금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대서양 바닷가 포구 한 호텔방에서 유리창밖 세상을 내다보니 그 아득한 기억 한 줌이 생각 속을 비집고 들어선다. 내가 펼쳐든 여행수첩 안에는 오로지 <혁명과 예술, 귀스타프 쿠르베를 떠올리다>라 적힌 잉크를 묻힌 펜으로 써 내려간 검은글자들만이 에트르타 바닷가 자갈돌 마냥 백지에 자음과 모음으로 박혀있다.


21세기 프랑스 예술가들의 상황은 저 19세기 프랑스의 미완의 시민혁명처럼 아직도 혁명 진행 중의 상황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더욱이 예술에 있어서의 혁명은 기대하기조차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오늘도 <공연예술가협회> 회원들은 거리로 나선 모양이다. 이에 많은 작가들이 스스로 굳게 입을 닫고 있는 모양새다. 시인들마저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하자 예술가들조차도 마스크로 입을 가리기 시작했다. 저 아득한 혁명의 시대를 상기시키는 이 기막힌 21세기 상황은 타지의 호텔방에서조차 ‘예술의 혁명’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들라크루아는 너무 고상하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정적이다. 혁명은 열기에 가득 차있어야 하는데 그의 작품에는 오직 포연만이 자욱하다. 그는 이 혁명이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인가?



나는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다시 바라본다. 그가 묘사한 인물들의 굳게 다문 입술들은 이 혁명의 혁명에 대한 침묵을 묘사한 것 만큼이나 정직하게 일치해 보인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체제의 전복만이 아니란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혁명을 통하여 그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프랑스 식으로 보자면 그건 자유 평등 박애다. 그렇다면 예술이 혁명을 거쳐 획득하는 자유는 어떠한 것인가? 예술의 혁명성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21세기 문학인으로서 자처하는 내가 예술에의 혁명을 의도하고 있는 그 순수성은 또한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예술을 통해 성취할 혁명은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그리고 그 주체가 예술가로부터 진정한 시민에게로 이전되는 혁명의 당위성은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이런 수많은 물음들로부터 나는 19세기 또 한 명의 프랑스 화가를 만나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의 그림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더군다나 그의 그림까지도 모사하면서.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작가 귀스타프 쿠르베(Gustave Courbet)!


어둡고 답답하다. 현실이 그렇고 일상마저 그러하며 그의 그림 또한 어둡고 암울하다. 「오르낭의 매장」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그림이었다. 아니 당대 사회에 던진 충격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아카데미 예술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던 살롱전(Salon d’automn)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작이 미술관 벽에 걸려야 한다는 사실에 프랑스 화단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나폴레옹 3세의 귀족적이고도 우아한 취미에 중독된 파리 시민들 역시 충격에 휩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화가가 태어난 한 작은 마을의 장례식 장면을 그린 「오르낭의 매장」은 제목이 시사하듯 그림 속의 주인공은 쭉 늘어선 마을사람들이 아니라 그들 앞에 검은 입을 벌리고 있는 곧 관이 들어갈 검은 구덩이, 시신을 담은 관이 매장될 흙구덩이다. 그래서 더욱 흙구덩이 앞에 늘어선 마을사람들이 그림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말한 화가 자신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질 않고 겉돌기만 한다.


이 돌발적인 주제는 화가에게 있어서 이미 준비된 것이었다. 저 산골짜기 자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난 화가가 나아갈 길을 예시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시사적인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의 중앙집권화에 반대한 쿠르베가 한 시골마을의 장례식 장면을 엄청난 크기의 대형 캔버스에 담은 돌발성은 예술의 지역주의와 함께 기존의 화풍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사건’이기도 했다.


「오르낭의 매장」이 걸려있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나는 단박에 이 화가가 무엇을 그리고자 했는지를 이해했다. 사실 이후에 마네가 몰고 온 폭풍과도 같은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차라리 고전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재능 넘치는 화가가 그린 장례식 장면은 너무나도 일상적이며 현실적이고 비판적이다. 가상의 현실에 예술에의 위안을 얻던 부르주아들이 오노레 도미에의 작품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그 처참한 상황보다도 더 끔찍한, 판타지마저 완벽하게 제거된 당대 현실을 재구성한 벽화는 리얼리즘 자체였으니 말이다.


스스로 예술가 자신을 ‘진정한 리얼리스트’라고 말한 쿠르베는 당대를 뛰어넘은 최고의 기교주의자이기도 했다. 그 탄탄한 실력과 재능으로 그만이 이룩한 예술의 리얼리즘은 경계에 선 예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가능케 해 주었다. 「오르낭의 매장」은 그럼으로써 한 시대를 결정지은 작품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전개될 사회주의 예술에 있어서의 리얼리즘을 예고한 전조였다.


귀스타프 쿠르베, 오르낭의 매장, 파리 오르세 미술관


나는 이쯤에서 또 한 명의 화가를 떠올렸다. 얀 페이 밍(Yan Pei-Ming)! 중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21세기 현대화가, 그는 쿠르베가 태어난 저 프랑스 동쪽 산골짜기 마을 오르낭에서 전시회를 한 화가로 유명하다. 그가 그린 자신의 어머니 장례식을 다룬 「상하이 장례식」 그림은 쿠르베의 작품만큼이나 충격적이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측은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과 함께 그의 장례식 그림을 함께 전시했다. 나는 이 두 화가의 그림을 한참이나 번갈아 바라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2019년 코로나가 발병하기 직전의 일이었다.


얀 페이 밍(Yan Pei-Ming), 상하이 장례식, 파리 오르세 미술관


과격하고 극단적이었던 귀스타프 쿠르베는 사회주의 혁명 기간에 예술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예술에의 혁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주의자로서 혁명의 주체세력이 되었다.


그가 그토록 목청껏 외친 것은 ‘예술의 소외’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이후에 빈센트 반 고흐에게서 다시 한번 두드러지는 부르주아, 중앙집권, 귀족적이고도 고상한 우아함에 대한 예술가들 스스로의 동맹을 부추기는 듯한 이 사회주의적 사상은 21세기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물론 그들을 이상주의자로 보아도 무방하다. 예술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지닌 작가들이었던 그들의 예술 세계는 분명 이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으리만큼 치열하고 넉넉하기 때문이다. 「오르낭의 매장」과 「해바라기」가 지닌 그 엄청난 폭발력은 과연 예술은 어떤 것이어야만 하는가? 라는 예술에 대한 영원한 화두를 풀어헤친 전조에 해당할 것이다.


혁명의 실패로 스위스로 도망쳐야만 했던 화가의 이력은 그의 재능만큼 도드라진 사회주의적이고도 이상적이었던 내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망명지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레만 호반의 시옹 성」은 어둡고도 암울했던 한 시대를 관통한 예술가의 평탄치 못한 만년을 재구성한 것이어서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재산과 그림 모두를 압수당하고 외국으로 도망친 예술가의 신세는 그러나 결코 자조적이지 않다. 밝고도 신선한 이미지들로 가득 찬 아침에 그린 걸로 추정되는 「시옹 성」은 한 혁명가의 만년에 부합하는 ‘자연에 대한 관조’를 보여주는 것 같아 의미롭다.


조용히 혹은 망연히 호숫가에 앉아 바라보았을 풍경만을 쿠르베는 화폭에 담았다. 나는 그의 그림을 여행수첩에 복사하면서 그가 바라보았을 혹은 내가 바라보았던 알프스의 레만호를 떠올렸다.



쿠르베의 「시옹 성」은 산과 호수의 경계에 시옹 성을 위치시킨다. 항상 경계를 이야기한 작가의 신념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경계를 제거하면 자연만이 남는다. 그가 경계 밖을 떠돌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그림 안에는 담겨있는 것이다.


저 감옥과도 같은 성채는 우리가 몸 담고 살아가는 사회이자 현실일 것이다. 만일 그 성채를 제거한다면 그림은 화가가 생각한 이상향 자체일 수 있다. 그의 현실인식은 그토록 부단히 경계에 대한 것이었고, 경계 지어진 울타리를 허물고자 한 것이었으며, 그 경계를 넘어서고자 한 것이었다. 예술을 통해 혁명을 통해 그가 외친 외마디가 그것이었다.


나는 화가가 그린 또 한 점의 그림에 주목했다. 마치 에트르타 해안을 덮칠 듯한 「폭풍전야」를 그린 그림은 엄청난 폭풍우가 닥칠 상황을 표현한 걸작이다. 심상에 자리한 ‘혁명적 상황’을 재구성했을 법한 리얼리티는 귀스타프 쿠르베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데 좋은 참고가 된다. 또한 내 자신 맘에 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반 고흐의 「비」라는 작품처럼 참으로 독특하고도 기발한 소재이기까지 하다.



쿠르베는 아주 명증하게 폭풍우가 닥칠 해안을 절묘하게 묘사한다. 하늘과 허공을 온통 뒤덮은 구름이 점차 해안으로 밀어닥칠 바로 그 직전의 상황을 정밀하게 묘사한 것이다. 그림에서의 구름은 저 일상적이고도 무표정한 「오르낭의 매장」에 등장하는 인물들과는 달리, 곧 엄청난 폭풍우를 동반할, 마치 핵폭탄이 터진 뒤의 핵우산 구름과도 같이 묘사되어 있다. 혁명 직전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보는 것은 거리가 있고 오히려 자연상태의 실제상황을 충실히 재현한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화가의 진정성 또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과제이다.


불행한 것은 쿠르베가 스스로 자처한 예술가로서의 모호성이다. 그는 예술가이고 싶어 한 것인가? 혁명가이길 자처한 것인가? 아니면 그 둘 모두였는가? 우리는 그가 혁명가였다는 점보다도 예술가였음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반 고흐도 마찬가지다. 저 이탈리아의 카라바조는 어떠한가? 그들 모두는 이단아였다. 당대의 현실에 비춰볼 때 그들은 너무 진보적이었고 이상적인 인물들이었다.


결국 그들을 통해 예술사를 재구성해야만 한다면 예술은 스스로 진화해야 하고 청중과 가까워져야 하며 진보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점만큼은 명백하다.


그러나 21세기의 상황 예술은 스스로 진화하기를 멈추었고 청중과 괴리를 갖기에 이르렀으며 진보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진보에 등을 돌린듯한 양상이다. 과연 21세기 예술의 혁명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내 일상의 암울함으로부터 건져낸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 「시옹 성」, 「폭풍전야」를 다시 찬찬히 바라보다가 호텔 방 유리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창 밖엔 비가 내리고 있다. 그 날 오르세 미술관 유리창 너머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쿠르베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름다움은 자연 안에 있다.
우리는 리얼리티에 기초한 참다운
다양한 형태로 재현된 자연과 마주한다.”


그는 또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사회주의자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자, 공화주의자, 혁명이 의미하는 모든 것의 지지자이고 무엇보다도 우선 나는 리얼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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