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41화
[대문 그림] 프랑스 최서단 북서쪽 대서양가에 위치한 섬 우쌍(Ouessant)의 크레아슈(Creac’h) 등대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새집으로 이사 온 뒤 이때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유리창 너머로 나무 한 그루 여전히 푸른빛이다. 오랫동안 나무를 바라본다. 나무는 말이 없다. 살아오면서 겪었을 법한 인고의 시간이 나무 나이테에 선명히 새겨져 있을 터이지만 나무는 여전히 말이 없다. 나이테는 그렇듯 말을 하지 못하는 나무의 가장 확실한 언어다.
늘 푸르른 소나무는 새집에 대한 낯섦과 두려움을 덜어줬다. 정원에는 이 밖에도 많은 수종의 나무들이 자란다. 하지만 잎을 다 떨군 활엽수보다는 늘 푸르른 소나무가 제일 반갑다. 날씨가 영하 밑을 돌아도,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쳐도 든든한 자세로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이 영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연유로 완당 김정희 역시 지인에게 보내는 서한 「세한도(歲寒圖)」에서 소나무를 그려 넣은 걸까?
정원을 거니는 이들은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이들이거나 가끔 지팡이를 길잡이 삼아 땅만 바라보고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히잡을 쓴 할머니뿐이다. 단 한 번도 눈길을 마주친 적 없는 이들은 모두 다 한 동네 주민들이다. 그들이 키우는 반려동물들 역시 나와 같은 한 동네 주민 격이다.
포르투갈 태생의 아파트 관리인은 멍하니 정원을 내다보는 내 눈길을 피해 내 집 앞을 멀찍이 돌아간다. 가끔 그와 마주칠 때는 그는 늘 한 옥타브 높은 어조로 “봉쥬 무슈 리(Bonjour Monsieur)!”라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이란 뜻이다. 세밑에 그에게 선물을 하지 못했다. 내내 마음에 걸려 마치 목 안에 생선가시가 박힌 느낌이다. 삶은 늘 팍팍하게만 돌아간다.
나무는 검은빛에 가까운 진초록이다. 짙은 고동색 나무둥치에 갈라진 표피가 언뜻 갈색을 띤 소나무는 저녁 어스름한 탓에 불을 밝힌 가로등과 함께 집 유리창 밖을 환히 비추는 등대와도 같다. 소나무가 대낮의 등대라면 가로등은 밤에 빛나는 등대라 할 수 있다. 내 집 앞 정원엔 그처럼 두 개의 등대가 우두커니 서 있다.
등대는 항해하는 배들에게 길을 밝혀주는 구실도 하지만, 항구로 진입하는 선박들에게 암초가 있으니 피해가란 경고 표지도 되어준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등대인 이집트 항구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는 그처럼 클레오파트라를 찾아가는 카이사르에게 바람의 길잡이가 되었을까?
나는 내 집 앞을 사람들이 오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하나 내 집 앞에는 정원 산책로가 나 있어 몇몇 주민들은 내가 내다보는 유리창 앞을 가끔씩 오간다. 동네 주민들은 크리스마스 때도 단 한 집만 제외하고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종교를 따져 묻지 않는다. 다만 저 늘 푸르른 소나무가 내 사는 동네의 크리스마스트리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우리 모두 종교는 다르지만 화해롭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죽는 날까지 한 동네 주민으로, 세계 시민으로, 역사의 당당한 주역들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은 책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여행을 떠난다. 민속학자 주강현이 펴낸 그러나 지금은 절판된 『등대』라는 책이다. 내 생애 딱 한 번 찾아간 적이 있는 훼깡(Fécamp)을 여행하기엔 이보다 더 좋은 책이 있을까 싶다.
방안 가득 병풍처럼 벽마다 둘러싼 책꽂이에 겹겹이 꽂힌 책들 가운데 『등대』가 얼른 눈에 띄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국의 호텔 그 적적한 밤에, 새벽에 이만한 읽을거리가 있나 싶어, 그리운 고국의 노스탤지어를 달래줄 책이 있는가 싶어 고른 심산이기도 하다.
주강현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구미 유럽을 여행해 본 이들은 익히 잘 아는 대목이지만, 새해 달력에 아름다운 등대들이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등대만을 소재로 한 달력들이 고가에 팔리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등대가 서 있고, 초원이 펼쳐져 있어 사람들은 소풍을 나온다. (…)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에서 주인공은 등대로 떠나는 소풍을 꿈꾼다. 등대는 예나 지금이나 어떤 이상향적이고도, 문학적인 그 어떤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전선이 모조리 땅 밑으로 들어간 지중하 공사를 완료한 프랑스의 전원 풍경, 사진을 찍을 때마다 전봇대만 돌출되는 우리의 풍경…….”[1]
나는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 것 같다. 오랫동안 발품을 팔며 누구 하나 도움 주지 않는 길을 걸어간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등대가 나타난다. 그 열의가 어떠한 것인지 나는 안다.
절판된, 다시는 세상에 태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운명을 타고난 그의 책을 옆구리에 끼고 세상에서 노을이 제일 아름답다는 훼깡을 찾는다. 훼깡은 노르망디 공국의 수도였던 아주 오래된 도시다. 대서양의 길목이기도 한 이곳은 프랑스 망슈 해협이 통과하는 에트르타에서 르 트레포에 이르는 장장 13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이른바 ‘알바트로스의 해안’이라 부르는 바닷길의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다.
이 도시에 대해 『어느 인생』(우리말로는 한결같이 『여자의 일생』이라 번역되었다)의 작가 기 드 모파상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북쪽 잿빛 차가운 바닷가에서 태어났다. 항상 바람과 비와 물보라를 맞고 자랐으며, 늘 생선 냄새가 진동하는 거리의 조약돌에게서 비늘이 반짝이는 부두에 던져진 신선한 생선 냄새를 흡입하며 컸다. 소금에 절여 통안에서 삭힌 생선, 벽돌로 지은 굴뚝이 있는 갈색 창고에서 말린 생선, 연기가 멀리 시골 저 너머로 비릿한 청어 냄새를 실어 나르곤 하던 것을 지켜보며 자랐다. 나는 또한 집집마다 문짝에 걸어놓은 그물들이 햇빛을 받아 말라가면서 내는 그 특유의 비릿한 바다 내음을, 썰물 때마다 코끝을 간지럽히던 다시마 냄새를, 그리 크지 않은 항구에 모여든 배들이 일제히 피워 올리던 격한 냄새를, 독한 향과 매캐한 내음, 그러나 가슴과 영혼을 훑고 가는 그 진한 향(香)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2]
[1] 주강현, 『등대』, 생각의 나무, 2007, 185-186쪽.
[2] 기 드 모파상, 『어부와 전사(Pêcheuses et Guerrières)』, 188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