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43화
나이가 든 탓인가? 한 해가 가고 다시 한 해가 시작되는 마당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파리에 첫눈이 내렸다. 밤새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비로소 한 해가 다 하고 새해가 밝았음을 어렵사리 깨닫는다.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춥다. 하늘빛마저 음습하며 대낮이건만 인기척 소리조차 없다. 사위가 마냥 조용하다 보니 새해에 대한 불안감만 가중된다. 올해는 반드시 재기해야 한다는 희망 없는 다짐만 되풀이된다.
필요에 따라선 더 민첩하게, 경우에 따라선 좀 더 부드럽게, 만일 반드시 해치워야 할 일이 생긴다면 무덤덤하게, 그러나 인간관계만큼은 공손하면서도 상냥하게 이어갈 필요가 있다. 새해에는!
2019년 7월 7일은 처음으로 훼깡(Fécamp)을 찾은 날이다. 숨이 막히는 뜨거운 열기마저 수그러든 그 잠깐의 여름날에 나는 책으로만 알던 바닷가 도시를 찾았다. 수많은 날들을 주변을 오가면서도 나는 이 도시만큼은 절대 발을 들이밀지 않았다. 기억하기론 그렇듯 늘 도시를 가리키는 지명만이 오롯이 묘비명처럼 어슬렁거렸다.
파리에 사는 지인들이 양념처럼 이야기 말미에 끼워 넣기를 좋아하던 항구도시는 그럼으로써 점차 윤곽을 더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철저히 이 도시를, 이 바닷가를, 이 항구를 외면했다. 왜 그랬을까? 프랑스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시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도시의 역사마저 외면하고 싶어서였을까? 그도 아니라면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기가 내심 반갑지 않아서 였을까? 그럼에도 역사서들은 한결같이 이 도시에 대해, 이 도시와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해 내 두 귀를 간지럽히기만 했다.
역사서에서 훼깡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노르망디 공국의 수도였고, 백년전쟁의 살아있는 교과서였으며, 근세의 주요한 대구잡이 어항이자, 현대의 풍력발전 단지가 조성된 첨단 환경도시였다. 관심은 그러나 역사서에 밑줄을 그은 지명을 통과하고 만다.
인구가 점차로 감소하고 있는 도시, 거리마다 다시 지었으면 하는 빈집들로 가득 찬 도시, 지금처럼 한 겨울에 찾아들면 방파제를 부서져라 두들겨 패는 파도 소리만 공명처럼 울려 퍼지는 어항, 냉동창고에서 방금 꺼내온 듯한 차가운 청어 통조림에 삶은 감자 몇 알만이 황당하게 접시에 올려진 듯한 썰렁한 레스토랑, 손님이 없어 일찍 문 닫은 가게들, 주유할 곳이 없어 차를 내버려두고 마냥 걸어가야만 하는 대로, 텅 빈 골목길 허공으론 눈 대신 내리는 비 탓으로 적적함만이 묻어나는 갈색 도시, 갈 곳을 잃은 듯한 길에 버려진 반려동물, 생화 대신 조화를 꽂아놓은 작은 찻집의 쓸쓸한 인테리어, 빈 테이블에 차갑게 식은 에스프레소 잔에 담긴 싸늘한 형광 불빛, 여행 절기는 4월에서부터 10월까지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호텔 주인장, 세탁물 통에서 꺼내 입은 듯한 물기가 마르지 않은 비옷을 걸치고 닻줄을 고쳐 매는 요트 마도로스, 바게트 빵을 옆구리에 끼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늙수그레 한 남자, 선원같이 덩치 큰 사내 팔에 얹혀 비틀거리듯 걸어가는 젊은 여자, 손님 한 명 없는 빈 테이블에 놓인 기억의 영사기를 틀어 놓고 나만이 길디긴 생애의 필름을 되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도시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읽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 사람들은 죽고 사는 것을 누구나 한 번 당하고 말 일로 보고 있다. (…) 세상에 무엇이 괴롭다, 무엇이 괴롭다 해도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남는 생이별보다 더한 괴로움이 또 어디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별의 괴로움에는 ‘곳’과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1]
물가에서 ‘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열암의 서사는 21세기 공간으로 이동하여 지난가을 새집으로 이사 온 내 청춘의 죽음을 장례하며 통곡한다. 나는 그렇듯 파리의 옛집을 떠나기 싫었다. 새집의 생경함이 마치 이사 가기 싫어 발버둥 치는 이 씨 가문의 막내아들로 되돌려진 듯싶었다.
형과 둘째 누이와 셋째 어린 누이와 함께 어머니가 충남 대전 오동나무 벗 삼아 은행나무 두 그루가 사이좋게 나란히 서 있는 새집으로 이사를 간 뒤에도 나는 아버지와 큰 누이와 함께 옛집에 남아 이사 가기 싫다고, 모처럼 사귄 고향 친구들을 버릴 순 없다고 발버둥 쳤다. 매일 밤 코 풀던 갱지에 침 묻힌 연필로 써 내려가던 어머니께 쓴 부쳐지지 않을 편지를 쓰며 나는 소리 죽여 울기만 했다. 그런 눈물 젖은 편지들을 새집에서 재회한 풍양 조씨 당당한 어머니께서는 눈물로 가슴으로 마음으로 읽으시곤 내 까치집투성이 머리통만 매만지셨다. 어머니께서는 새집에 대한 아이의 두려움을 읽으신 걸까? 나는 곧 순한 양처럼 그 ‘은행나무집’을 좋아라 뛰어다녔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만의 서사조차도 각색되고 변질된다는 사실을 깨닫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변하는 건 산천초목만이 아니다. 인간의 간사스러운 마음도 자신의 치레 앞에서는 무력하게 변질되고 만다. 그때마다 새로운 미사여구가 등장하고 그것을 우리는 인간사의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꼿꼿한 마음은 나이 들수록 허물어지고 스스로 짓고 부수던 꿈의 궁전은 폐가처럼 버려진다. 그래도 위선과 거짓으로 내면의 서사를 온통 도배질한다. 그걸 우리는 흔히 자기 기만이라 치부하지만, 존재 이유는 그런 자아를 언젠가는 내동댕이친다.
고백인지 독백인지 분간 못할 주절거림 끝에 바닷가에 선다. 내가 바다를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바다가 나를 부른 것이다.
“바다여! 이젠 말해다오. 파도치던 그 순순한 여름날 저녁을. 내 그리워하지 않고도 바닷속으로 첨벙 내 모든 회한과 번민과 갈등의 수고로움을 벗어던지던 그날의 저녁노을을 되돌려다오.“
[1] 열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보리 출판사, 서울, 2004년, 430쪽에서.
[2] 노르망디 관광청 홈페이지, 다니엘 뒤마(Danielle Dumas)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