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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Dec 02. 2024

도빌에 미술관이 탄생했다

몽생미셸 가는 길 194화

[대문 사진] 도빌 해안 백사장, Thomas Le Floch 사진


아내와 함께 하는 여행은 늘 유쾌하고 즐거웠고 행복했다. 시인이며 작가인 그녀의 프랑스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기억력에 탄복하던 터라 발걸음은 시작부터가 가벼웠다. 그런 가운데 그녀와 함께 처음 가보는 곳에 도착하면 그녀 역시 신명이 나는지 놀라워하며 기뻐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때마다 나 역시 항해의 모험을 즐기는 항해사처럼 온 마음이 들떠 함께 흥분하곤 했다.


새로 발견한 장소, 새로 맛보는 음식, 새로 알게 된 역사 등등. 하지만 꼭 새로 찾아간 도시나 마을, 역사적으로 이름난 장소가 아니더라도 이미 가본 곳가운데 새로 생긴 미술관을 발견할 때는 여행의 기쁨이 배가되곤 한다. 그 새로운 곳이 도빌이고, 2021년 기존의 프란치스코 수녀회 건물이 미술관이자 시립 미디어 아트 센터로 변모한 곳이 ‘레 프랑치스캔느 도빌(Les Franciscaines Deauville)’이다.


아침부터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다시 찾은 도빌, 코로나 기간에 개장한 <도빌 프란치스코 미술관>을 찾아가는 발걸음 역시 출발부터가 상쾌하다. 해맑은 봄날 햇살 가득한 아침 호텔 조식 레스토랑에서 한눈에 바라다 뵈는 언덕 아래 도빌 시가지와 바닷가 풍경이 봄기운에 가물거린다.


바리에르 뒤 골프 호텔과 호텔에서의 아침식사.


어제저녁 무턱대고 <노르망디 호텔>로 가서 예약을 확인했다. 호텔 측은 망연히 서있는 우리더러 인터넷상으로 예약이 안 되었고 고지한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호텔 측은 이미 묵은 적이 있는 고객인이지라 우리 두 사람을 무시할 수만은 없었던지 바리에르 그룹의 체인 호텔을 소개해줬다. 그곳이 어제저녁 찾아온 산꼭대기 골프장 호텔이다. 생 로랑 교회와 가까운 지역에 자리 잡은 호텔은 전망만큼은 최고였다. 산꼭대기에서 바라본 도빌 해안가 밤풍경은 그림과도 같았다.


그리고 아침, 눈부신 초록의 그린, 이른 시각부터 골프를 치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골프장 입구를 기웃거리며 한때 골프에 빠져 골프장을 드나들던 악몽을 시원하게 펼쳐진 그린 위로 날려 보낸다.


밤이 지고 날이 밝았다. 하루종일 쏘다니던 도빌 해안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아침식당에서의 커피 한 잔은 근사한 기분에 빠져 들게 만드는 효력이 있다. 그 효력을 믿고 미술관을 찾아 나서야 하리라 생각하며 스푼으로 커피를 되질한다. 미술관을 가려면 언덕을 내려가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차를 끌고 가는 수밖에 없다. 차가 없었다면 어제저녁 이 산꼭대기까지 오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어젯밤 호텔 측은 셔틀 미니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고 귀띔해 줬다. 하지만 버스를 기다려야 하고 짐을 실어야 하고 터덜터덜 기사만 믿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는 처지가 여간 곤란하고 귀찮은 게 아니다. 그래서 다들 차를 몰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생 로랑 성당에서 내려올 때처럼 언덕길을 내려와서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달려 스트라스부르제흐 빌라를 지나 도빌의 프란치스코 미술관(Les Franciscaines Deauville)에 도착한다. 처음 보는 건물이라 그런지 입구부터가 산뜻하게 다가온다.


2021년 새로 개장한 도빌 프란치스코 미술관 ‘Les Franciscaines Deauville’. 건축 시공을 담당한 모아티-리비에흐(Moatti-Rivière) 사진.


도빌에 처음 개장한 프란치스코 미술관은 원래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 건물이었다. 이 미술관이 개장하기까지에는 많은 사연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도빌 프란치스코 미술관인 ‘레 프랑치스캔느 도빌(Les Franciscaines Deauville)’의 역사는 1875년 도빌에 처음으로 프란치스코 수녀회가 설립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솜므(Somme) 가문에서 태어난 아델과 조세핀 메리고(Adèle et Joséphine Mérigault)는 디브와 트루빌에서 세관장으로 일하던 아버지 덕에 노르망디 지방에서 자라고 컸다. 부친이 파리에서의 근무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뒤 조용히 여생을 보내던 차에 세상을 뜨자 두 자매는 어렸을 적 지내던 트루빌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트루빌로 돌아간 두 자매는 경건한 신심을 바탕으로 자선 활동에 참여하기로 작정하고 선원을 위한 병실을 마련하는가 하면, 바다에서 실종된 선원의 고아들을 돕기로 계획한다.


1875년 두 자매는 도빌로 이사했는데, 당시에는 교회 양쪽에 여분의 부지가 있었다. 이 해에 독실한 신앙심을 지닌 두 자매는 25 헥타의 땅을 매입하여 첫 번째 건물을 지은 후, 선원의 딸들을 위한 고아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뻬루[1]의 프란치스코 수녀회에 속한 수녀들을 초청했다. 1878년 6월 29일 뻬루의 프란치스코 수녀회에서 4명의 수녀가 도빌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수녀들은 12명의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어려운 출발 끝에 수녀들은 1881년 바이외와 리지외의 주교인 위고냉(Hugonin)의 동의를 얻어 도빌에 ‘자비로운 성모 마리아(Notre Dame de la Pitié)’ 프란치스코 수녀회 공동체를 설립했다.


1883년 고아원은 성 요셉 고아원(St. Joseph's Orphanage)으로 공식 명칭을 지닐 수 있었다. 이때 성당, 현관, 홀, 고아원에 부속된 식당이 들어섰다.


1914년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고아원은 군사 지원 시설인 병실로 탈바꿈했다. 그 후 적십자사에 의해 병원으로 완전히 개조되고 1916년에는 안과 전문 병원으로 자리 잡았다.


1,000명 이상의 부상자를 치료한 병원은 1919년 1월 1일에 문을 닫고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갔다. 적십자사에 속한 상당수의 의료 장비로 말미암아 도빌 지역 위원회는 고아원에 의료 장비를 갖춘 진료소 설립을 계획했다.


1929년엔 본관 뒤편에 극장과 영화관인 잔 다르크 홀(Jeanne d'Arc Hall)이 건설되었다. 1931년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진료소를 짓기로 결정하고 중이층(中二層)과 2층 사이에 28개의 침상이 있는 클리닉을 열었다. 이때 수녀들은 지붕 밑에 있는 옥탑방에서 기거해야만 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전쟁 기간 동안 프란체스카 수녀회는 다시 진료소를 짓고 100명 이상의 수녀들이 의무실에서 근무하면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돌봤다. 이 임시 병원은 독일 점령 기간을 포함하여 전쟁 기간 내내 계속 운영되었다. 이때 여학생을 위한 유치원과 초등학교 설립, 여학생을 위한 가정 경제 학교가 신설되었다. 고아원은 정부와의 협약에 따라 직업고등학교로 승격했다.


2008년을 시작으로 2010년 사이에 수녀들을 위해 채소밭 부지에 새로운 수녀원과 성당이 들어섰다. 오래된 성당의 큰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포함하여 여러 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제거되고 기존 건물은 새 건물에 통합되었다.


2011년 12월 15일, 수녀들은 유서 깊은 기존 건물을 떠나 새 수녀원으로 옮겨갔다. 수녀원은 2012년에 시에 의해 인수되었으며, 도빌 시는 수녀원 건물과 베스티아-몽리발(Bestia-Monrival) 건물, 그리고 프란치스코 수녀회의 사목을 위한 본부가 있는 건물을 인수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명했다.


2013년 도빌 해변 문화예술제 기간 동안 사진 전시회가, 2014년에는 고골(Gogol)의 <어느 광인의 일기(Journal d'un fou)>가 2층 홀과 성당에서 두 차례 공연되었다.


2014년부터 2015까지 진행된 프란치스코 수녀회가 이전한 부지에 문화예술 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기획되고 이를 공모에 부친 결과 각종 건축, 기술 및 시노그래피 프로그램들이 발표되었는데 이때 모아티 앤드 리비에르(Moatti & Rivière) 건축회사가 2015년 6월 열린 건축 공모전에서 우승했다.


2018년 1월, 프란치스코 미술관(Les Franciscaines) 건립 공사가 착공되어 2021년 마침내 프란치스코 미술관이 문을 열고 첫 관람객을 맞았다. 이로써 수녀원이 대중에게 직접 다가간 ‘낙원의 길(les chemins du paradis)’이 열렸다. [2]


도빌 프란치스코 미술관(Les Franciscaines Deauville) 지상층 메인 홀. 건축 시공을 담당한 모아티-리비에흐(Moatti-Rivière) 사진.





[1] 뻬루(Perrou)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오흔느(Orne) 도(道)에 위치한 약 350명의 주민들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의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그 명성이 자자하다.


[2] 도빌 프란치스코 미술관 ‘Les Franciscaines Deauville’ 홈페이지 「미술관 건립의 역사(Histoire du lieu)」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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