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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Dec 03. 2024

도빌 미술관 레 프랑치스캔느

몽생미셸 가는 길 195화

[대문 사진] 도빌 프란치스코 미술관


기존 수녀원 건물을 부수지 않고 그대로 살려 새롭게 미술관으로 탄생시킨 이 아름다운 미술관은 입구부터 관람자의 시선을 압도한다. 6천 평방미터 크기의 대형 건물엔 노르망디에서 활동한 화가 앙드레 함부르크(André Hambourg) 전용 전시실을 비롯하여 도서관, 미디어센터, 공연장, 실습장, 서점, 식당에 이르기까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시설들이 들어섰다. 일반 전시실에는 주제에 따라 특별전이 개최되기도 한다.


건축가가 수녀회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하여 지은 이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미술관은 기존 건물을 응용하여 새롭게 꾸몄다는 데에 의의가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화가 앙드레 함부르크의 부인 니콜 함부르크가 남편의 유작을 기증했다는 점 또한 이 수녀원 건물을 미술관으로 거듭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거기에 더해 도빌 시당국이 수집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과 야수파, 현대 회화, 사진 작품에 이르기까지 수녀회와 시당국이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한 흔적이 역력히 배어든 미술관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대체 이 프란치스코 수녀회를 처음 설립한 두 자매들의 영혼은 어떤 점에서 이처럼 독특했던 것일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고기잡이 배를 타고 일하다 부상당한 어부들을 치료해 주고, 실종된 어부들의 고아들을 돌봐주고, 두 차례씩이나 되풀이된 전쟁 기간 동안에 아군이든 적군이든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료해 주고, 고아들을 위한 학교와 병원을 건립하고, 그것도 부족하여 수도원 건물을 도빌 시에 기증하여 미술관으로 거듭나게 만든 이 두 인물은 어떤 영혼의 소유자였을까?


미술관을 이리저리 돌아보면서도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미술관이었다. 그리고 많은 걸 떠올리게 만든 미술관이기도 했다. 쿠르베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을 뿐만 아니라 으젠 부댕이 만년을 위해 지었다는 빌라도 보았던 터라 그의 그림을 다시 보게 되어 반갑기도 했다. [1]


도빌에 처음으로 공방을 열었던 꼬꼬 샤넬을 화폭에 담은 마리 로랑생, 트루빌의 등대를 독특한 화풍으로 묘사한 라울 뒤피, 입체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앙드레 로트의 그림에 빠져들었다. 현대 작가들의 회화 및 사진 작품은 덤으로 주어졌다. 이밖에도 점묘법 대가였던 폴 시냐크, 후기 인상주의에 속한 나비(Nabi) 파의 화가 모리스 드니, 마티스와 함께 야수파를 이끌었던 모리스 드 블라맹크, 폴란드 바르샤바 태생의 모이즈 키슬링 등 미술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예술가들을 만난다는 기쁨, 그 기쁨이야말로 미술관을 찾는 가장 커다란 즐거움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위 왼쪽부터 차례대로 으젠 부댕, 라울 뒤피, 귀스타프 쿠르베, 앙드레 이오트.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정원의 두 아가씨(Jeunes fllles dans un jardin).


앙드레 함부르크의 상설 전시실에서 만난 화가의 작품들은 또 어떠한가? 1909년 파리에서 태어나 1999년 파리에서 사망한 화가는 평생 노르망디를 떠돌며 그림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그는 왜 이 지방을 떠돌며 그림을 그린 것일까? 대체 이 지방이 무슨 매력이 있었던 걸까? 나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무한정 이리저리 그의 그림들을 찾아다닌다.


앙드레 함부르크 전시실에서 그의 그림을 찾아나선다.
앙드레 함부르크 미술관 전시실.
마침내 찾은 앙드레 함부르크가 묘사한 노르망디 바다 너머로 지는 태양.


이젠 됐다. 점심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들 차례다. 간단한 샐러드와 빵만으로도 배부른 식사가 될 것 같다. 오늘만큼은!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로 나와 테이블에 앉는다. 왜 두 자매는 이 엄청난 일을 계획하고 실천했을까? 세관원의 딸들은? 아직도 그 의문에 해답을 찾지 못한 채다. 이 도시를 떠날 때까지 물음은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 작정인 모양이다.


식당 테라스 모습






[1] 화가 으젠 부댕은 각고의 노력 끝에 성공하여 이곳 도빌에다 저택을 짓고 만년을 보냈다.


화가로 성공한 으젠 부댕이 1884년에 도빌 앞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지은 브흘로끄 저택(La villa Brelo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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