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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 데리다의 경우

프랑스 문학의 오늘 35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자크 데리다


해체를 논의함에 있어 이 말을 선풍적으로 유행시킨 장본인에 해당하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와의 연관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무익한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입장들(Positions)』(1972)을 통하여 데리다는 이미 제도화된 철학적 전통에 대한 비평적 사유를 분쇄하기 위해 또한 개념과 개념화의 지배에 대한 물음을 전제로 하기 위한 기도(企圖)로써 유럽의 형이상학의 체계적인 전복을 끊임없이 시도해 왔다.


자크 데리다, 『입장들』, 영문판.


그러나 데리다가 오로지 칸트나 헤겔 또는 하이데거에 대항하고 나섰거나 혹은 그들의 철학에 동조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이러한 점은 양면성을 지닌 그의 태도에 비추어 볼 때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이제까지 기울여왔던 가장 보편적인 관심은 철학에 앞서 문학을 겨냥한 것이었으며,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면, 바로 문학적이라고 할 만한 글쓰기에 관한 것만이 내 주된 관심사였다”라고 데리다는 1990년에 간행된 『법에서 철학에로(Du droit à la philosophe)』에서 토로하고 있다.


자크 데리다, 『법에서 철학에로』


그의 이러한 문학적 글쓰기는 “엄밀함을 통해 이미 씌어진 표현들의 형식과 내용이라는 연관[관계]를 서로 분리시키고자” 한 방향으로 나아갔으며(『문자학(De la grammatologie)』, 1967), 차이(une différence ; 예를 들어 문학어와 일상어간에 존재할 수 있는 차이나 원문과 번역문 사이에 위치하는 차이)보다도 훨씬 더 많은 뉘앙스를 품고 있는 차연(une différance ; 데리다의 신조어. 중간의 철자가 이(e)가 아닌 에이(a)에 유의), 즉 지양 없는 근본적인 양립, “움직임 속에 이미 완결된 것이기는 하지만 필요 불가결한 구조”(『기술과 차이(L’écriture et la Différence)』, 1967)를 정립하고자 한 시도로 이어졌다.


자크 데리다의 『문자학』과 『기술과 차이』


그러나 데리다에게 있어서 그보다도 더 큰 관심사는 오히려 장-자크 루소의 『언어의 기원에 관한 서설(Essai sur l’origine des langues)』이나, 말라르메와 산포(la dissémination), ‘잔인성의 연극과 표현의 울타리’로서의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 『조종(弔鐘, Glas)』(1981)에서의 장 쥬네(Jean Genet)에 관한 문제를 향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왼쪽부터 앙토냉 아르토의 작품집, 장 쥬네에 관해 쓴 자크 데리다의 『조종(弔鐘)』, 말라르메의 시집, 장-자크 루소의 『언어의 기원에 관한 서설』.


특히 앙토냉 아르토의 이러한 점 때문에 데리다는 1992년에 간행된 카미유 뒤물리에(Camille Dumoulié)의 『니체와 아르토(Nitzsche et Artaud)』에 나오는 미궁의 길을 인도하는 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리아드네의 실에 대한 비유)을 자신의 저술 속에 적용시킬 수 있었다.


카미유 뒤물리에의 『니체와 아르토』, 프랑스 대학출판사, 1992.


때문에 베아트리스 디디에(Béatrice Didier)가 1981년에 발표한 탁월한 저서 『여성과 글쓰기(L’Écriture – femme)』가 그로 하여금 더 많은 흥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러한 단정에는 그가 페렉이 에이(a)를 이(e)로 대체한 것과도 같은(revenantes/revenentes) 이(e)를 에이(a)로 대체하는 유희(différence/différance)를 시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베아트리스 디디에, 『여성과 글쓰기』, 프랑스 대학출판사, 1981.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하나의 단어에서 날개로 떨어져 나간 형적(形迹)은 구문(la structure) 이상으로 데리다 자신을 흥분시킬 만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그는 오이디푸스라는 너무도 손쉬운 해결책을 의심하기 시작했으며(친모(親母)는 “결국 조건부로 살아남는다.”), 자서전이 너무도 재빠르게 장르화되는 것에 경계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참고적으로 데리다는 l’autobiographie라는 단어보다는 l’otobiographie라는 말을 더 자주 애용했다.


그의 이와 같은 이름에 관한 논의는 “이름 속에 너무 깊숙이 관여되어 있고 자아로서 요약되지도 않는 그 모든 것과 함께” 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온당할 듯하다. 우리는 여기서 페렉의 1969년의 저술 속에서 유일하게 목숨을 건진 두 개의 이(e)를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즉, 페렉에게 있어서 소멸은 은밀하면서도 영감에 찬(dérobée/inspirée), ‘부풀어 오른 말(parle soufflée)’ 속에 강탈과 분실이라는 주요한 고정 관념으로 이해되는 숨결에 관한 비유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산재된 철자에 관한 작업은 우상화를 목표로 한 비평의 손에 들린 머리채를 한 문학 텍스트는 물론이거니와 언어 자체에 대한 해체 작업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카프카의 케이(K), 미셸 뷔토르의 『시간 나누기(L’emploi du temps)』에서의 움직이는 조각 에스(S), 페렉의 자취를 감췄다가/다시 살아나는 이(e), 기억의 부재 그 깊숙이 매몰된 더블유(W)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데리다 역시 이러한 작업으로부터 조금도 비켜서 있질 않다. 그는 탁월한 루마니아 태생의 유태계 시인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울 안첼(Paul Antshel)이란 독일 식 이름과 폴 셀랑(Paul Celan)이란 프랑스식 이름을 함께 지닌 한 시인에게 주의를 집중하였는데, 데리다는 울름 거리에 위치한 고등사범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시인을 처음 알게 되어(시인 셀랑은 1959년부터 1970년까지 이 대학의 독일어과 강사로 재직했다) 셀랑의 텍스트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고, 또한 셀랑의 두 번째 시집 『고비 고비마다(De seuil en seuil / Von Schuvelle zu Schuvelle)』에서 표제어 구실을 하고 있음은 물론, 몇 년 뒤에 다시 간행된 시집 『익명의 장미(La Rose de personne)』(1963)에 다시 등장하고 있는 ‘쉬볼렛(Shibboleth)’이란 단어에 정신이 얼어붙는 충격을 받기에 이른다. 그 결과 1984년 시애틀에서 있은 심포지엄 석상에서 발제 되어 강연에 이른 데리다의 중요한 문건 『쉬볼렛(Schibboleth)』이 씌어지고, 1986년에 이르러서는 심포지엄 책자와는 다른 형태의 또 한 권의 시집으로 간행되기에 이른다.


2월 13일, 마음의 입속에

기지개를 켜는 쉬볼렛 […]


Dretzehnter Feber, Im Hermund

Erwachtes Schibboleth [...]

Treize février, Dans la bouche du cœur

S’éveille un Schibboleth [...]


– 셀랑의 「하나로써(In eins, En un)」


왼쪽부터 자크 데리다가 펴낸 『쉬볼렛』 그리고 폴 셀랑의 시집 『익명의 장미』와 『고비 고비마다』.


날짜 : 1936년 2월, 스페인에서의 시민전쟁 와중의 저녁, 파리에서의 1962년 2월 13일 샤론느 지하철역에서의 대 살육의 희생자들을 매장하는 하루, 데리다가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압제에 저항하는 기념일에 거대한 물결과도 같은 군중집회의 소용돌이를 한 자 한 자 더듬어 읽어가는 듯한, 이 신비하다 못해 지하 공동묘지의 써늘한 돌무덤을 연상시키게까지 하는 말 한마디는 『구약성서』 판관기 제12장 6절에서 갈리앗 사람들이 에프라임 사람들에게 쉬볼렛을 발음하게 하여 시볼렛(Sibboleth, 원문 표기)이라 발음하면 도살하던 그 끔찍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기억으로 나아가는 관문일 뿐 아니라, 시를 향한 진입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타인들을 애도하는 순간에조차 고유한 쉬볼렛이라 발음되는 쉬볼렛, 쉬볼렛 자체로 말해지는 시에서의 율법을 위해서도 쉬볼렛은 쉬볼렛일 뿐인 것이다.” 이 말은 ‘의미 영역 밖에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실상은 이 말의 음향이 지닌 또 다른 가능한 형태들과의 차이에 긴밀히 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음향들 간의 차이를 이루는 연관 관계(Si/She)에 이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포로수용소에서 신음하는 가족을 둔, 또한 광기에 찬 살인마들의 언어로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자각한 유태인의 비통에 찬 항변의 부르짖음을 향한 수형의 밧줄이기도 한 것이다.


Huhediblu/흐드러질


[…]

Wann,

Wann blühen, wann,

Wann blühen die, hühendiblüh,

Huhediblu, ja sie, September –

Rosen


언제

어느 때 꽃 피는가, 어느 시절에

어느 날 꽃 피는 것들인가, 피어날 꽃들은

흐드러질, 그렇다 그 꽃들은, 그

9월의 장미들은


Quand,

quand fleurissent, quand,

quand fleurissentles, rissentlesfleurs,

rilesfleu, oui les, les

roses de septembre.


이와 같은 텍스트는 번역 자체가 아예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사 번역을 한다 해도 번역자를 곤경에 빠뜨리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위에 인용한 시는 스스로 엄밀한 구조와 정확한 시적 논리를 갖추려고 노력한 작품일 따름이다.


그럼으로써 이 시는 말 더듬기(마치 말을 더듬거리는 투의 반복된 어휘들과 더군다나 단음절을 이루고 있는 어휘들은 더욱 그러한 인상을 짙게 풍긴다)와 불안정한 것으로 이해된다(다음에 이어질 명사를 기다리면서 관사는 끊어진 채로 남아있다).


이 시는 더욱이 ‘꽃 피다(blühen)’란 동사를 뒤죽박죽 만들기 위해 어림치기를 허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마지막의 잘라진 송어(送語, la coupure–rejet)는 프랑스어로 옮기는 것마저 불가능하다. 이를 프랑스어로 les Septembre-roses라 표기할 수는 없다.


특히 이 시의 맨 마지막 싯귀는 베를렌느(Verlaine)의 싯구(『예지(Sgesse) III』를 풍자(패러디) 한 것으로 보인다. 쥘르 르메트르(Jules Lemaitre)가 시인의 최후의 사랑의 서곡을 알리는 시라 표명했던 베를렌느의 싯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아! 언제나 9월의 장미들이 다시 꽃을 피우려나? (Ah! Quand refleuriront les roses de septembre?)” 이를 해체하고 희화화 한 셀랑은 프랑스어로 된 시의 종결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오 언제 다시 피려나, 오 장미들이여, 그대들의 9월은?

Oh quand refleuriront, oh roses, vos septembres?


이와 같은 해체 유형은 두 의미가 서로 중첩한 역설(un double paradoxe)에 닿아가기도 한다. 시의 경우에 있어서 문학 작품은 언어의 해체로 이루어진다. 낱말(le mot)을 분쇄함으로써 해체주의자인 작가는 상호 간의 대화의 도구를 파괴한 상태에서 독자에게 구두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도발적인 행동’은 셀랑의 경우에 있어서 더욱 적나라해지고 있는데, 그와 같은 파괴적 행동이 시인에게 재능이 없음으로 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충분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셀랑의 시집 『익명의 장미(La Rose de personne)』의 탁월한 번역가이자 그에 관한 아름다운 글 『익명의 수화(手話, Dans la main de personne)』(1986)를 쓴 저자이기도 한 마르틴느 브로다(Martine Broda ; 그러나 여기 인용한 시들은 그녀가 번역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는 셀랑이야말로 “인간에게 능란한 솜씨의 불가능함을 일러준” 시인이라 밝히고 있다.


결국 쉬볼렛은 그녀가 이야기한 것처럼 수화나 암호와 같은 유의 것이다. 그러나 비록 셀랑의 시가 여전히 부분적으로 읽히며 이해된다 할지라도 그의 시는 더 이상의 의미가 부재하는, 불확실한, 의미가 있다 할지라도 단지 부가적인, 지시하는 바가 없는 공허한 낱말은 아닌 것이다. 신비로운 시는 그 자체로써 쉬볼렛이며, 암호이다.


몇몇 우리포(OuLiPo) 동인들의 언어유희에 대한 실험적 작업 또한 아직도 쉬볼렛이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입증해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의 실험시들은 페렉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아니다.


페렉이 우리포 작업장을 뛰쳐나온 것은 단순히 소설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잃어버린 문자를 되찾기 위한 기술체를 그는 쓰고 싶어 했다. 루보와 마찬가지로 페렉은 극도의 엄밀한 의도를 작품 속에 표출하고자 했으며, 실제로 언어에 관한 몇몇 특별한 실험적인 용어들을 창안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집념이 이룩한 말의 유희에 관한 작업의 결과는 당연히 하나의 유파를 이루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를 입증할 만한 일이 1996년에 발생하였는데, 마리 다리유세크(Marie Darrieussecq)의 대단히 독창적이고도 탁월한 기술체가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페렉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던 이 스물일곱 살 밖에 되지 않은 젊은 여성은 『자명한 이치(Truismes)』라는 제목이 붙은 소설에서 암퇘지로 변한 『율리시스』의 동행인들을 연상시킬 뿐만 아니라, 카프카의 『변신』(괴상망측한 바퀴벌레가 등장하는)이나 피에 파올로 파솔리니(Pier Paolo Pasolini)의 작품과 영화 「돼지우리(Porcherie/Porcheria)」를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그러나 암퇘지/자명한 이치(truie/Truismes)라는 어휘를 새롭게 개발하여 언어의 유희를 보여준 이 같은 예는 해체 유희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제공하는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마리 다리유세크의 소설 『자명한 이치』,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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