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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Oct 12. 2024

우리에게는 셀랑과 같은 시인이 없다

프랑스 문학의 오늘 36화

[대문 사진] 폴 셀랑, 1958, <르 몽드(Le Monde)> 지.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에게 있어서 시에서의 중요성은 눈과 귀라는 두 감각 기관을 서로 잇는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1988년에 페렉을 다룬 저술을 통하여 클로드 뷔흐쥴랭(Claude Burgelin)이 설명한 바와 같이, 페렉의 시집 “『알파벳(Alphabets)』의 시들은 한 페이지 안에 가로와 세로가 모두 열한 자씩 정사각형으로 되어있는데, 이 큐빅은 그 자체로 폐쇄되어 있으며, 닫힌 상태 속에서(던져진 주사위, 혹은 산포(散布, dispersion)에 따른 우연 자체로) 읽는 이로 하여금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퍼즐이 같은 문자들을 해체함으로써 문자들이 이루는 고요에 구멍을 뚫는 서로 같은 문자들의 산개(散開, déploiement)”를 보여주는 이러한 시 형태는 역설적으로 페렉이 ‘시의 산문으로서의 번역’이라 부른 것에 해당한다.


조르주 페렉의 시집 『알파벳』


이와 같은 시에서의 알파벳 철자들은 쉬볼렛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서로 흩어져 있는 문자들이 이루는 완벽한 우연의 조합에 해당한다.


        DESTINCRUALO

        RSCELANTQUOI


       어휘들은 항체(抗體)들과

       날 것 상태의 운명을 복구한다, 그런데

       셀랑이 뭐라 했다고?


        ces mots reconstruits

        l’anticorps, destin cru, alors

        célant quoi?


페렉은 폴 셀랑(Paul Celan)의 이름과 함께 셀랑의 석연치 않은 자살에 대한 비밀, 그리고 연금술에 가까운 그의 시까지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셀랑의 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 너무도 간결한 페렉의 시적 실험은 한편으로 보면 20세기 후반의 프랑스 시문학을 특징짓는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이 두 시인을 좀 더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두 사람의 몸속에는 유태인의 피가 흐르고, 실종의 비극(2차 세계 대전의 인간 실종의 참상) 또한 함께 공유하고 있다.


더군다나 다 같이 언어의 해체, 그러나 궁극적으로 보면 언어의 구성에 이르는 문자 유희에 입각해 시를 쓰고 있다는 점, 더불어 서로 조응하는 어떤 특별한 방법을 통해 시적 비의를 획득하고 있다는 점 등이 두 사람을 서로 가깝게 만드는 공통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까이에 조르주 페렉(Cahier Georges Perec 13) : 실종(la dispar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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