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케트 극에 있어서 침묵의 어휘들 3

프랑스 문학의 오늘 55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사무엘 베케트


달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토, 일, 월, 금 혹은 목요일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말할 수 없다. 정확한 시간을 이야기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지금 몇 시지?” 함(Hamm)이 묻자 “보통 때와 마찬가지야.”라고 끌로브가 대답한다. 『패러디(La Parodie)』(1952)에서 아르튀르 아다모프(Arthure Adamov)가 상상했던 바늘 없는 시계와 마찬가지로 회중시계들과 자명종들 그리고 작은 추시계들은 정확한 눈금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만을 다투고 있다.


이러한 지옥은 다른 모든 지옥들과 마찬가지로 감옥에 해당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있는 힘을 다해 뛰어가지만 고도(Godot)를 만나는 일조차 없다. 그들은 또한 구원되지도 않는다. 비참하게도 그들은 단지 ‘포위되어’ 있을 뿐이다.


에스트라공 : 나는 천벌을 받았어!

블라디미르 : 자네가 그렇게 멀리 떨어졌다고?

에스트라공 : 비탈진 끝에 다다랐어.

블라디미르 : 그래, 우리가 쟁반 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야. 틀림없이 우리는 쟁반 위에 차려진 거야.


이러한 3명의 인물의 언어유희는 성채에서의(혹은 천국에서의) 허망한 삶의 준거에 관한 지리(地理)와 빈정거림을 묘사하고 있으며, 연극의 규칙들을 상기시킨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그리고 포조와 럭키는 단지 어느 누군가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이렇듯 그는 익명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불현듯 엄습하고 있는 신이나 비존재자의 모습을 한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극(le dramaturge) 자체를 이끌어 가는 이 같은 연극의 규정들은 연극에 있어서 극을 뒷받침하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베케트에 의해 제기된 것인 만큼 그의 극에서 훨씬 유효하게 이야기될 수 있지만, 그의 몇 편의 에세이에서조차 그 같은 방법에 의해 확실하게 표명된 적은 없다.


베케트의 초기 작품들은 시들(1930년에 베케트에 상을 안겨준 『인간 검시기(Whoroscope)』)와 단편들(『찌르고 발로 차기(More Pricks than Kicks)』, 1934), 에세이들(조이스와 프루스트에 관한), 그리고 소설들이 있다.


사무엘 베케트 시집 『인간 검시기(Whoroscope)』)와 단편집 『찌르고 발로 차기(More Pricks than Kicks)』 그리고 에세이집 『프루스트(Proust)』.


1938년에 발표한 『머피(Murphy)』, 1943-1944년 동안 쓴 『와트(Watt)』 그리고 『몰루아(Molloy)』와 『사라진 마론(Malone meurt)』(1951), 『이름 붙일 수 없는 것(L’Innommable)』(1953)이 바로 베케트가 발표한 소설들이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극적인 형태가 아주 조금씩 비연극적 작품들 속에서 잉태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베케트의『머피(Murphy)』, 『와트(Watt)』, 『몰루아(Molloy)』, 『사라진 마론(Malone meurt)』, 『이름 붙일 수 없는 것(L’Innommable)』.


‘나’는 극중 인물이 될 수 있는 ‘익명의 인간(personae)’으로 해체되어 간다. 나의 죽음은 확실히 그들의 사라짐과 궤를 같이한다. “내가 만일 결코 잠자코 있을 수만 없다면”이라고 소설 『사라진 마론』에서 운을 뗀 베케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해 가고 있다.


“그것은 더 이상 이야기할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비록 모두가 이야기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설사 아무것도 이야기된 것은 없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병적인 질문들을 놔두어야만 한다. 그때 적어도 무덤 너머에 아무 일도 계속되지 않는 한, 거기에는 머피와 메르시에, 몰로이, 모란과 또 다른 모습을 한 마론이 있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서 베케트의 극은 이승의 지옥 속에 이미 다가올 내세의 대화가 전개되고 있듯이 보인다는 점이며, 베케트의 극중 인물 또한 그가 자신을 가리켜 『아무것도 아닌 텍스트(Textes pour rien)』에서 비존재의 구덩이라 이름 붙인 것만큼이나 존재의 너무도 충만한 모습을 낳지는 못했던 탓이다.


베케트 단편집 『아무것도 아닌 텍스트(Textes pour rien)』, 미뉘 출판사.


베케트가 『이름 붙일 수 없는 것(L'Innommable)』 속에 “다음 작품 속에 그려지게 될 존재자의 모습을 한 인물은 다름 아닌 앉은뱅이일 것”이라고 밝힌 바와 같이, 이러한 인물의 유형은 이미 『놀이의 끝(Fin de partie)』이나 『희극(Comédie)』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예견된 것이었다. 또한 베케트는 자신의 모습을 극 속에 투영시키지는 않았으나 – 그는 간혹 파리의 거리에서 마주치는 또박또박 한 발자국씩 걸음을 옮겨가는 덩치 큰 노인네의 모습을 하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자신의 정반대의 모습을 한 인물을 묘사했다.


사무엘 베케트의 『이름 붙일 수 없는 것(L'Innommable)』, 『놀이의 끝(Fin de partie)』 연극 포스터.
사무엘 베케트, 『희극(Comédie)』, 미뉘 출판사,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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