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학의 오늘 56화
[대문 사진] 사무엘 베케트 연극 포스터
베케트의 극에 있어서 몇몇 장면들에겐 분명히 새도-마조히즘적 요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 포조는 과거라는 밧줄로 럭키의 목을 매달아 끌고 가고 있으며,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저항해 마지않던(『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 채찍을 휘두르기에 이른다. 함(Hamm)은 몸이 마비가 된 끌로브가 앉기를 원하는데도 절대 앉지 말라고 그를 괴롭히기까지 한다. “놀이를 그만두자”고 끌로브는 애원하지만 함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안돼” 라고만 외친다.
우리는 여기서 주인과 노예의 헤겔적 관계와 저 유명한 변증법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케트의 극에서 그에 대한 도치는 성립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제2막에서 포조는 럭키를 채찍으로 휘두르면서 다시 길을 떠나고 블라디미르는 이 경우에 노예를 발로 차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끌로브는 자살을 시도함으로 함으로부터 겨우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끌로브는 결코 자살하지 않는다). “눈여겨보시오.” 포조는 럭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그에게 내 자리를 내주었던 것은 우연히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이 우연은 단지 출생의 우연이라는 타인에 지나지 않는다. 폭압을 일삼는 자칭 존재자의 모습을 한 이 타인은 자아로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아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자인 것이다. 그렇듯 베케트는 자신의 작중 인물들에 대한 최초의 사형집행자라 할 수 있다. 또한 베케트는 아마도 그 최초의 희생자이기도 할 것이다.
설사 『오 아름다운 날들(Oh Les Beaux Jours)』의 제2막에서 어휘들이 위니의 존재를 드러내는 유일한 수단이 되고 있다고는 하나 존재들 간의 대화나 와해되어버린 언어를 증거로 삼아 우리는 베케트 극을 염세주의(le pesimisme)적 관점에서 논의해 왔다. 『가사(歌詞)와 음악(Paroles et Musique)』에서의 가사(어휘)는 어휘의 메커니즘으로 축약된다. 모든 것이 여러 번 이야기되었다 할지라도 그에 대한 중요성은 그러나 거기에 있지 않다.
베케트에 따르면, 어휘들의 고유성은 어휘들이 이야기들을 산출한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고래(la Baleine) 뱃속의 미라(Mira) 이야기(『가사와 음악』)나 볼튼 이야기(『성회(聖灰, Cendres)』), 함(Hamm)이 매일 조금씩 이어가는 끝없이 긴 이야기(『놀이의 끝(Fin de partie)』), 블라디미르가 에스트라공에게 들려주는 2명의 도둑 이야기가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에스트라공은 블라디미르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으나, 아다는 앙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들 즉, 거의 부질없는 이야기나 다름없는 객설을 들으려고 그에게 바짝 다가간다. 그러나 아무것도 이야기된 것은 없으며, 또한 『조에를 말하다(Die Joe)』에서 여인의 목소리는 그녀가 저항했던 그 무엇에게 이를 이야기함으로써 끝나버리고 만다. “그렇지, 이야기…너는 이미 그 이야기를 들은 거야.”
베케트와 언어와의 관계는 확실히 부정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베케트의 극들은 이야기들을 산출하는 언어로써, 또한 이야기 서술체의 폭력으로써 새도-마조히즘적 새로운 관계 속에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자아는 침묵 속에 몸을 숨기고자 하지만, 그는 그의 이름을 마구 불러대는 경향이 있는, 항상 낯선, 어떤 언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 그런데 누가 말하지, 나를 부르면서?
- 내 존재하지 않음의, 그 역시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비존재라는 구덩이 속에서 내 존재하기 위해 항상 고독했던 것처럼 그와 같은 익명의 누구겠지…그는 5분 내내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지,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말이야. 그것은 단지 교활한 속임수라는 것을 고백하는 게 좋을 거요.” (『아무것도 아닌 텍스트(Textes pour rien)』).
고도(Godot)와 그의 창조자들, 포조와 럭키, 존재와 언어의 목소리, 베케트와 그의 드라마들은(비록 그것이 추상적이라 할지라도 항상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 그만큼 서로 동질적인 관계의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신과 극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마찬가지로 폭압적이고도 공허한 되풀이라 할 수 있다.
비존재자들, 예컨대 이 말이 비존재자들이 존재의 구덩이로써 주위를 두르고 있는 베케트의 극 가운데 내포할 수 있는 의미에 입각해 본다면, 이들은 확실히 존재하지 않는 자들이다. 비존재라는 의미는 그렇듯 “널빤지라 부르는 무대”인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4명의 인물들이 들려주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의 의미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