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테스, 텍스트극으로의 복귀 1

프랑스 문학의 오늘 57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저것이 바로 콜테스 연극이다.


최근에 나와 함께 베르나르-마리 콜테스(Bernard-Marie Koltès)의 작품 공연을 함께 감상한 지인은 내게 그렇게 털어놓았다.[1] 그러나 콜테스는 먼저 연극인으로 우리들의 뇌리에 떠오른다. 콜테스는 파트리스 쉐로(Patrice Chéreau)와 함께 작업했으며, 극의 대본을 창작하기 이전에는 연출에 종사했던 경력답게 현대 연극을 특징짓는 신운동에 일정 부분 기여했던 관계로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테스가 <유렵 연극(Théâtre en Europe)> 지(紙))와의 대담에서 알랭 프리끄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종합해 볼 때, 그는 극작가의 독립성을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적어도 그 자신 극작가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연출가와 극작가를 구별해야 한다고 역설하기까지 했음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가가 극이라는 작품이 서로 다른 요소로 이루어진 것임을 인식하고 있는 이상 극작가가 의도하고 있는 장면이나 방법상의 문제에 연출가의 방법이 일치해야 한다. 작품을 이루고 있는 서로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이해 역시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오직 결과에만 주목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항상 홀로 창작에 몰두했으며, 단 한 번도 연출의 문제와 내가 써 가는 극을 혼동한 적은 없다. 따라서 내가 쓴 극이 연출가와 일치하지 않은 적도 단 한차례도 없다. 극이 상연되기 전에 말이다.”


이러한 일치는 단 한 명의 연출가하고만 극작가가 관계를 맺고 있을 때 가능하며, 콜테스 자신은 오로지 쉐레에게만 자신의 극의 연출을 의뢰했을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콜테스는 이와는 대조적인 쓰라린 경험을 이미 맛보았는데, 외국의 무대에 올려진 『흑인과 개들과의 싸움(Combat de nègre et de chiens)』(1983-1989)이란 공연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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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테스(Koltès)의 극 <흑인과 개들과의 싸움(Combat de nègre et de chiens)> 공연 포스터.


『흑인과 개들과의 싸움』 스웨덴 공연을 앞두고 콜테스가 겪어야 했던 문제점은 스웨덴어를 구사하는 흑인을 배우로 기용하기가 어렵다는 점 말고도 스웨덴이란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는 흑인이 아니라 터키인이라는 고언을 감내해야만 했다는 데에 있었다. 더군다나 그가 당하였던 수모는 마침내 그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기 직전에 이를 위해서는 이른바 보완 작업이라 할 만한 새로운 작업을 통해 그의 작품이 각색되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에 있었다. 콜테스는 이러한 배신행위를 간과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자칭 연출(réalisation)이라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Koltès, Combat de nègre et de chiens 1.jpg 콜테스의 극 『흑인과 개들과의 싸움(Combat de nègre et de chiens)』 일러스트레이션.


사정은 명확하다. 콜테스는 스스로 극작가로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익명이든 무명이든 극작가의 직업에 대한 명예를 회복하고자 애쓴 것이며, 또한 극작가가 아직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익명” 그는 이어가기를 “이에 있어서 연출가들만은 예외다. 작가가 없다고 말할 권리는 없다. 그들을 알지 못한다고 말할 권리도 물론 없다. 알다시피 극작가들을 치켜세우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아주 호조건 속에서 오늘날 공연되고 있는 엄청난 기회와도 같이 작가를 고려할 이유 또한 없다. 보다시피 얼마나 초라한 일들이 발생했던가. 극작가들에게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작가들이 최상의 수준이기를 당신은 어떻게 바랄 수 있는가? 하물며 그들이 하는 일이 최상의 것이 아니라고 깎아내리면서 말이다. 오늘날 극작가들은 역시 이 시대에 활동하고 있는 연출가들만큼이나 훌륭하다.”


콜테스는 『흑인과 개들과의 싸움』(1983)이란 신 식민 세계로부터 『사막으로의 귀환(Retour au désert)』(1988)을 통해 제시되는 소박한 그러나 전혀 불결하지 않은 시골 풍경으로 이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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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테스 『사막으로의 귀환(Retour au désert)』 한 장면.


그러나 그의 극이 항상 현실에 닻을 내리고 있던 것은 아니다. 앙리 꼬삐(Henri Copi)처럼 그 역시도 에이즈로 말미암아 목숨을 잃고 말았는데, 너무도 빠른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앙리 꼬삐가 발표한 최후의 작품 『때아닌 방문(Une visite inopportune)』(1988)은 조르주 라벨리(Jorge Lavelli)에 의해 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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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꼬삐(Henri Copi)의 최후의 작품 『때아닌 방문(Une visite inopportune)』 한 장면.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콜테스는 죽음에 이르는 시기 동안 거의 초시간적인 세계의 주변을 넘나들었다. 그가 자살에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의 유희를 감행했던 것이나, ‘딜러’와 손님과의 대화를 상기할 때, 『서쪽으로 난 만(灣 Quai ouest)』(1985)이나 『목화밭에서의 고독(Dans la solitude des champs de coton)』(1986)의 제목은 그와 같은 사실을 입증해 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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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테스의 연극 『서쪽으로 난 만(灣 Quai ouest)』 공연 포스터와 극중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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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테스의 연극 『목화밭에서의 고독(Dans la solitude des champs de coton)』 공연 포스터와 극중 장면.


1988년 가을에 완성된 『로베르토 쥬꼬(Roberto Zucco)』는 그가 쓴 작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작품에 속한다. 콜테스가 사망한 후인 1990년 가을에 초연된 이 작품은 그의 작품을 관류하고 있는 본질적인 특징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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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테스의 연극 『로베르토 쥬꼬(Roberto Zucco)』 공연 포스터와 극중 장면.






[1] 이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이 안느 위베르휄트(Anne Ubersfeld)가 콜테스를 위해 펴낸 책 『베르나르-마리 콜테스(Bernard-Marie Koltès)』(악트 쉬드(Actes Sud), 2001)란 책만 봐도 알 수 있다. 책에서 펼쳐진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베케트와 콜테스에 가장 근접한 작가는 “아무것도 심을 수 없는 딱딱한 땅이야말로 척박한 대지”라고 고집한다. 이 말을 달리 해석하면, “콜테스의 시학과 함께 꽃피운 텍스트”라 할 것이다(<문학잡지(Le Magazine littéraire)> 2000년 2월 호 55쪽 콜테스를 추모하는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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