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테스, 텍스트극으로의 복귀 3

프랑스 문학의 오늘 59화

by 오래된 타자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을 위한 대본에는 남근 숭배 상징이 그렇게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 비록 작품의 말미에서 골리앗과 삼손이라는 명백한 신화적 인물들과 마주친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화를 타파하기(démythisation)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삼손은 그 역시 감옥에 들어갔다 온 경험이 있는 막세이(Marseille)의 부랑아는 아니었던 것이다. 또 다른 목소리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듯이, 만일 적어도 그가 막세이의 부랑아가 아니라면, 그는 단지 가짜 막세이 사람일 뿐이다.


콜테스의 극 <로베르토 쥬꼬(Roberto Zucco)>의 한 장면.


콜테스 극에서 삼손 이야기는 이처럼 어설프고(‘머리칼 이야기’), 저속하며(“그는 여자와 뒹굴었다”는 식의), 진부하기까지 하다(“그는 항상 여자를 배신한다”). 그렇기에 몇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첫째, 단번에 10명의 입을 찢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막세이의 부랑아는 삼손이면서 동시에 골리앗일 수 있는가? 둘째, 쥬꼬 역시도 발레즈의 주먹에 맞아 죽기를 바랄 수 있을까? 셋째, 그에게 이 모든 것을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주인공의 목소리인가? 아니면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의 목소리인가?


게다가 『로베르토 쥬꼬(Roberto Zucco)』는 위대한 영웅들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토넹 아르토(Antonin Artaud)가 이미 콜테스보다 앞서 “걸작으로 대단원을 끝내는” 법을 찾아냈다는 사실에 콜테스가 주목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선행하는 부친 살해(오이디푸스 신화를 참조)로 이어지는 모친 살해(오레스테스 신화를 참조)라는 시원의 분위기 속에 아무런 이유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한 인간이 서 있는 장면으로부터 출발하는 극은 뒤이어 “지붕에 금방이라도 닿을 것만 같은 감옥의 둥그런 담 둘레길” 앞에 헬싱게르 성의 테라스가 위치한 무대와 함께 하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도입부 연장선상에 놓일 듯한 막 오르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다.


간수들은(아누이의 『안티고네』에서 폴리니스의 시체를 감시할 의무를 부여받은 이들을 기억할 필요조차 없는) 소음에 불안해한다. 만일 소음이 인다면 탈주범이 도망치는 것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며, 그만큼 그들은 한 치의 앞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에 이미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침묵에 익숙해진 그들이지만, 언어를 통해 서로의 흉금을 털어놓는 기발한 방법을 터득하기도 한다.


그들이 서로 나눈 대화인즉슨, 이야기는 주로 두 번째 간수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것이지만, 그는 6년 복무연한의 고된 근무를 언제라도 그만 둘 용의가 있으며, 감방을 지키는 간수와 감금된 죄수들 간에 존재할 수 있는 차이에 관해 재론할 여지가 많으며, 또한 그가 샤워장에서 훔쳐보았던 6백 명의 죄수들의 그 서로 다른 성(性)의 다양성에 관해(태양의 남근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화신들!), 내면의 세계 또는 내부의 풍경들에 관해 언제라도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 그러나 극이라 한다면 우리로 하여금 외부를 바라볼 수 있도록 다른 쪽을 비춰줘야 할 것이다.


확실히 「오펠리아(Opélie)」란 제목이 붙은 제13장(이 작품은 총 15장으로 구성되었다)으로 봐서 이 작품이 『햄릿』에게서 상당 부분 빚져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로베르토 쥬꼬에 의해 처음으로 성적 경험을 하게 된 가민느는 이제 본격적으로 암말이 되어 자신의 성을 팔기 시작하는데, 그녀는 실상 오라비와(라에르뜨와 거의 대등한 존재였던) 그리고 – 이 경우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 그녀의 언니를 통해 보호받는다.


콜테스의 극 <로베르토 쥬꼬(Roberto Zucco)>의 한 장면.


작품 13장을 온통 기다란 독백으로 채워가는 그녀는 가민느는 아니며, 남자같이 사나운 여자 건달에게 치욕을 안겨주는 것은 물론 그녀의 멧비둘기, 순결한 처녀였던 어린 동생의 몸을 더럽힌 건달들에게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복수하는 바로 그 여자인 것이다.


이 장에는 또한 폴로니우스의 쥐가 등장하고 있다(“나는 내 사랑의 우리에 울타리를 쳐야만 했다. 이 쥐를 발로 밟아 으깨 죽인 뒤 난로 속에 처넣고 불태워버려야만 했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된 쥐는 가짜 라에르뜨이며, 오펠리아의 순수성을 옹호해 줄 존재하고는 거리가 먼, 오히려 그녀를 학대하고 심지어는 뚜쟁이에게 그녀를 팔아넘기기까지 하는 인물일 따름이다.


콜테스의 극 <로베르토 쥬꼬(Roberto Zucco)>의 한 장면.


어떻게 보면 셰익스피어의 『햄릿』이기도 한 이 작품은 그러나 시궁창 속의 사회상을 담은 『햄릿』임이 분명하다. 그 많은 석연치 않은 구석들과 도착적 취미 혹은 결함들은 이 작품이 근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타락한 일면을 감추기 위해 덴마크의 궁정은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기에 충분하지만, 이른바 ‘작은 시카고’라 할 수 있는 왕국의 부패함으로까지 비대해진다.


신화의 기층을 형성한 패러디는 셰익스피어의 양피지(le Palimpseste)를 완곡히 긁어 지우고 다시 채워 넣은 것 같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며, 더 이상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을 연상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주인공들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에둘러 극중 인물의 행동을 설정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할 뿐이다.


극은 오히려 그가 도입한 거리감 덕분에 더욱 빛을 발한다. 결과적으로 보아 항상 다른 인물에 뒤처지는, 명령도 없고, 동기조차 없이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자들 대신에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살인자를 대체하기 위해 모델 가운데에서서 그가 창조해 낸 도덕적으로 흠투성이의 여주인공을 설정한 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극 중의 유령(le Spectre)은 실제로 유령이 나올 듯한(spectral)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시 말해 부재의 상태와 쥬꼬는 단지 햄릿의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어휘들이 침묵을 대신하는 극에서의 햄릿이 그러하다.


콜테스의 극 <로베르토 쥬꼬(Roberto Zucco)>의 한 장면.



매거진의 이전글콜테스, 텍스트극으로의 복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