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학의 오늘 61화
우리가 이른바 ‘세기말’이라 부르는 것은 한 세기가 100년을 주기로 하여 그 끝에 이르렀을 때다. 그러나 우리는 한 세기의 끝에 다다랐을 뿐만 아니라 천 년의 끝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새로운 세기를 맞으면서 한 세기를 정리해야 하는 절박함 속에 문학에 있어서의 19세기의 몇몇 특징들이 20세기 말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 ‘세기말’이란 말이 적어도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고 있지 않다면, 나는 21세기를 향한 행보가 위기 없는 희망적인 것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에 있어서 위기에 처한 세기말의 징후는 어떤 면에 있어서는 필연적인 일처럼 보인다.
우리가 이미 ‘에이즈 문학’이라 규정해 온 것을 통해 드러나게 된 충격적이면서 끔찍한 징후들에 비춰볼 때, 장르의 위기가 그러하며, 사회적 위기 역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장르의 위기
‘시의 위기’란 말은 1886년부터 1896년까지 약 10년 동안 말라르메가 고심하여 완성한 글의 제목인데,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 글은 말라르메가 죽기 1년 전인 1897년에 같은 제목으로 『객설(Divagations)』에 수록한 것이었다. 이 글은 ‘시사성’을 띤 문제의 글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로서는 문학 전반에 걸쳐 문제 제기를 시도한 초유의 사건이었을 만큼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말라르메는 기술하고 있기를, “마침내 세기의 끝에 도달했다. 이 최후의 순간에 모든 것은 뒤죽박죽되고 ‘위기’마저 도래하였다. 우리가 이른바 ‘우아한 것, 근본적인 것’이라 이야기해 오던 것의 붕괴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세기말의 문학에 대한 말라르메의 이 같은 진단은 운율에 입각해 시를 써오던 당시의 시적 경향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심도있는 변화를 겨냥한 것이었기는 하나 무엇보다도 이른바 무슨 무슨 꼬리표(l’étiquette ; 이 용어가 지닌 모든 의미에서)가 붙는 문학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었다. 다시 말해, 말라르메가 언급한 ‘말의 유희’라 지칭한 것 속에서 장르의 개념에 대한 초월의 문제가 제기되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말라르메의 글을 통해 그가 언급한 유희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형식들속에서 지금까지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앞서 전통적인 장르 구분 방식에 따라 문학작품들을 유형별로 묶어 고찰해 왔다. 물론 장르에 대한 신중하고도 사려 깊은 고찰을 이끌어 내기 위한 배려를 간과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장르에 대한 이해에 문제가 없었던 것 역시 아니라 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 글을 통하여 고찰해 온 장르들을 열거해 보면, 먼저 소설(제2장, 3장)을 비롯하여, 시(제6장), 희곡(제7장)과 일종의 결체 조직들로 구성된 에세이 순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장르 구분이 지닌 문제점은 다름 아닌 내가 항상 닫힌 범주들로서 이해하기를 바라 마지않던 작품들을 결국 그렇게 밖에는 묶을 수 없었던 고민, 즉 작품 유형의 범주가 지닌 한계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의 중반부에 장르들에 대한 통과벽으로서의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소개한 것이다. 뒤라스는 이미 앞장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대본이면서 동시에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작품을 시도하였는데, 뒤라스가 발표한 『스퀘어(Le Square)』(1973년에 『인디아 송(India Song)』으로 개작)는 ‘텍스트, 희곡, 영화’의 한 전형을 이룬 작품이다.
또한 뒤라스는 서로 다른 작품들에게 같은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단적인 예로 소설로는 『태평양의 방벽(Un barrage contre le Pacifique)』이 있고, 희곡으로는 『에덴 시네마(L’Eden cinéma)』가 있다. (해)체의 유희들은 이처럼 이름 붙일 수 없는 영역에서조차 장르 상의 동요를 더욱 심화시켰으며, 이와 함께 분류하기조차 어려운 난제들을 제공하였다.
희곡(le théâtre)만을 놓고 볼 때, 희곡은 이 용어가 지닌 가장 다양하고도 폭넓은 의미만큼이나 많은 불확실성을 향해 열려있다. 말라르메는 이미 호기심에 이끌려 프랑스 극에서 『목신(牧神)의 오후(L’Après-midi d’un faune)』의 신비를 밝히고자 애쓴 바 있다. 이러한 호기심으로 말미암아 말라르메는 결국 작품에 ‘목가(élogue)’라는 개념을 부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더해서 그는 “기술체가 광막하고도 혼란스런 삶을 모사하는 이상, 그것에는 연극적인 견지에서 행동을 제기할 만한 어떤 방법도 게재되어 있지 않다”(「극에서의 스케치」)고 단정한다.
파브리스 루치니(Fabrice Luchini)가 『밤, 그 끝으로의 여행(Voyage au bout de la nuit)』이란 소설을 ‘원맨쇼’로 연기한 것은 장르의 한계를 조롱하고자 한 의도를 표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본다면, 누보로망의 기수이자 이론가였던 장 리카르두(Jean Ricardou)는 ‘원문 그대로의 새로운 교육’을 제안했으며, 『변형의 극(Le Théâtre du métamorphoses)』(1982)이란 제목의 작품에다 ‘혼합된’이란 부제를 붙이기도 했다. 이는 “서로 다른 음색들의 어울림”이었던 것이다. 또한 “모두가 호기심에 이끌린 교전상태를 치르는 것은 물론이고, 각각의 음색이 그와는 다른 음색을 취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요인이었다.
책은 말라르메의 「-X라는 소네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X의 예술’의 한 유형으로서 제시된다. 그렇지만 행간에 숨어있는 패러디화 한 의미는 ‘X의 예술’의 실체를 밝혀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재치나 기지도 없이 책을 탐독하는 자, 이를 모사하는 자는 그럼으로써 단 한순간에 책을 갈가리 찢어버리지는 않을까?” 미셸은 독백을 통하여 여러 목소리에 답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한 ‘X의 예술’이란 개념은 그러나 그보다는 오히려 책이라는 개념이 지니고 있는 단일한 의미를 두 곱절로 증대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여기서 X가 엔지니어에서 파생한 ‘X’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발상 역시도 비록 언어 요소들이 자유 상태 하에 있다고는 하나, 아무 거리낌 없는 문자유희나 어휘에 관한 유희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이보다는 오히려 ‘제조의 거침없는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언어의 극은 하나의 해프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학작품들을 유형별로 구분하는 장르 간의 구별을 폐기하거나 철폐하지 않는 한 현대 문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달리 이야기하자면, 현대 문학이야말로 작품 간의 장르의 구별을 폐기해 온 지 오래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정언에서 확연해진다.
마침내 프루스트가 도래했다.
20세기 중반에 반 브왈로주의자에 의해 토해진 이 편안함에 대한 탄식은 모든 시 예술에 적의를 품은 한 시 이론가에 의해 터져 나온 절규였다.
제라르 쥬네트(Gérard Genette)는 『형상(Figures) III』(1972)에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야말로 “모든 이에게 소설과는 전혀 다른 작품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문학작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소설이 아닌, 더 이상 소설만으로 머무를 수 없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제라르 쥬네트에 따르면, “장르(양식들)의 역사를 종결시켰을 뿐만 아니라 다른 몇몇 작가들에게도 해당하지만, 문학의 공간을 무한대로 넓힌 것은 물론이고, 현대 문학을 불확정의 영역으로 내던져 버린 프루스트다운” 작품이었다.
그러나 프루스트 역시 문학을 통한 자신의 새로운 시도를 지칭하기에 적당한 개념으로서 소설이란 용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프루스트로서는 자신의 작품이 마치 한 편의 시라 할 수 있는 미완의 소설임을 짐작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루이 아라공 또한 1956년에 엘자의 고독하고도 참된 죽음을 상기시키는 언어와 형식들의 살랑거림 속에서 그 자신 일련의 성공적인 죽음들을 불러일으킬 만한 작품이 한 편의 시와도 같은 미완의 소설임을 깨닫지 못했다. 1974년에 이르러 아라공은 희곡/소설이란 새로운 형태로 나아갔는데, 이 새로운 양식의 작품은 일면 불연속 상태에 놓인 작가와도 같은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마리-클레흐 방꺄흐(Marie-Claire Bancquart)는 이를 두고 “시, 소설, 희곡 : 모든 장르가 한데 뒤섞인 훌륭한 한 편의 항해일지”와도 같은 작품이라 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