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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

프랑스 문학의 오늘 67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조디 브라운



개념의 적절한 사용



비평의 취향은 이 시대에서 저 시대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시간과 공간을 달리함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모던(moderne)이라든가 모더니티(modernité)란 용어들 역시 이미 19세기 이전에 보들레르에 의해 아주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그러나 오늘날 적어도 모더니즘(modernisme)이라 부르는 문학운동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여기서 모더니즘이란 남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이른바 모데르니스모(modernismo)라 부르는 새로운 문학운동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던(post - moderne)이나 포스트모더니즘(post - modernisme)이란 새로운 용어들 역시 전자보다는 한결 자주 쓰이는 말들이기는 하지만, 미국이나 독일에서와 같이 프랑스에서는 그렇게 널리 확산되지는 못했고, 그 쓰임새 역시 지극히 제한받던 용어들이다.


물론 이는 프랑스에 국한된 문제인데, 오늘날에도 다른 나라들에서와는 달리 유독 프랑스에서만 이러한 용어들이 어떤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프랑스라는 나라와 프랑스의 정신 체계에 있어서 본원적이고도 저항적인 사고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암시해 주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오늘날 프랑스 철학이 예전의 철학과 궤를 같이하고 있으며, 새로운 개념과 사고에 저항하고 있다고 볼 때, 장 프랑수아 리요타르(Jean-François Lyotard)의 노력은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그는 1979년에 펴낸 『포스트모던의 조건 – 지식 체계와 관련하여(La Condition postmoderne – Rapport sur le savoir)』란 책을 통하여 전지구상에 포스트모던이란 새로운 개념을 확산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장 프랑수아 리요타르(Jean-François Lyotard)의 『포스트모던의 조건 – 지식 체계와 관련하여』, 1979.


기존의 개념으로부터 파생한 것이든, 이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개념이든지 간에 새로운 용어란 항상 애매한 법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던의 진행을 강화시키는 일련의 흐름에 강력히 반발하던 보수주의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모더니티의 확산에 따른 압력을 견디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추측해 볼 수가 있다.


이런 점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독특하기만 했던 현상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60년대에 조직된 일련의 현대적인(contemporaine) 문학운동이었던 텔켈(Tel Quel) 그룹과 우리포(Oulipo)는 여러 면에서 기존의 문학운동과는 다른 양상을 띠었지만, 이전의 문학운동과의 가장 두드러진 변별점은 창작 태도 즉, 창작 방법론에서 찾을 수가 있다.


1960년대에 조직된 일련의 현대적인 문학운동이었던 텔켈(Tel Quel) 그룹과 우리포(Oulipo).


그러나 후자의 경우 이미 한 물 간 창작 방법상의 새로운 요소들을 재 취합하여 그들의 방법론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는 기존의 것에 대한 회복이란 차원에서 이해할 수가 있다. 1968년 5월의 사건들을 되짚어 볼 때, 이 운동의 실패에 따른 새로운 변혁에의 아쉬움이 몇몇 이들의 가슴에 원한처럼 남아 있다가 일찍이 랭보가 지칭한 바 있는 ‘부조리하게 현대적인 것’에 대한 탐구를 재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에서 기인한 급진적인 과격화의 경향은 1970년을 거치면서 1975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른바 더 이상 넘어설 수 없는 극점에로의 진행을 촉진했다.


1968년 5월 13일 파리 소르본느 대학 광장에서 촉발된 <68 학생운동>.


그러나 포스트모던은 오히려 그 정반대를 의미했다. 포스트모던은 모던 이후에, 모던을 넘어서서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다시 말해 모던의 과잉 현상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어떤 시도였다. 1980년 이후에 시작된 이 퇴조(reflux) 현상은 바로 이러한 경향을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나는 이미 1971년에 보르다(Bordas) 출판사에서 펴낸 동료들과의 공저 『프랑스 문학사(Histoire de la littérature française)』의 증보판을 발행할 기회에 1980년 이후로 전개된 이러한 퇴조 현상을 일종의 썰물 현상에 비유하여 개관한 바 있는데, 이 책에서도 나는 그에 대한 몇몇 증거들을 앙리 미테랑이 제시한 정황들과 비교하여 제시하고자 했다.


피에르 브뤼넬, 『프랑스 문학사』, 보르다 출판사.


앙리 미테랑(Henri Mitterand)은 『20세기 프랑스 문학(La Littérature française du XXe siècle)』(나당(Nadan) 신서(新書) 128)이란 작은 책자에서 이 시대의 문학에 대한 예리하고도 고무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앙리 미테랑, 『20세기 프랑스 문학』, 아르망 꼴랭 출판사.


우리 두 사람이 견해의 일치를 보인 점은 바로 ‘80년대의 소용돌이’야말로 이른바 대가나 거장들이 사라진 시기란 점, 그럼으로써 이전의 한 시기를 이끌던 세대들(싸르트르를 비롯하여 라캉, 바르트, 알튀세르, 골드만, 푸코 등)의 사고에 흠씬 젖어들던 시기란 점, 더하여 기호 본위적인 취향이 사고를 점하는 진보적인 시기였다는 점 등이었다.


한 시기를 이끌던 세대들 : 장-폴 싸르트르를 비롯하여 라캉, 바르트, 알튀세르, 골드만, 푸코.


이 시기는 또한 ‘누보(nouveau)’라는 톱니바퀴 장치 없이는 기계가 생산품을 두 배로 증가시킬 수 없다고 믿은 시기였으며(신 연극, 신 소설, 신 비평, 신 철학은 그래도 얌전한 편이다. 심지어는 요리법에도 이처럼 ‘새로운’이란 수식어가 붙어야만 했던 시기였다), 한 술 더 떠서 ‘새로운’이란 수식어 하나 만으론 만족지 못하는(장 리카르두(Jean Ricardou)의 『누보 누보 로망(Nouveau nouveau Roman)』) 새로움에 대한 불감증의 시대이기도 했다.


장 리카르두(Jean Ricardou)의 『누보 누보 로망(Nouveau nouveau Roman)』


결국 80년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꾸로 되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이미 ‘포스트 모더니티’가 새로운 경향의 기저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앙리 미테랑은 진단하고 있다. “또한 들뢰즈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죽음 이후로 포스트 모더니티는 과거로 회귀하려는 경향으로 슬그머니 옮아가고” 있으며, 1995년, 96년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퇴조 현상은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는” 경향마저 띤다.


질 들뢰즈와 마르그리트 뒤라스


리요타르가 자신의 입장에서 정의를 내린 포스트 모더니티란 말을 가만히 살펴보면, 포스트 모더니티에 기초한 ‘문화들의 시대’는 이른바 회사들에 기초한 후기 산업구조(post-industrie|)의 시대와 부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는 포스트 모더니티를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이루어진 산업혁명을 이끌던 모더니티와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이치에 맞는 듯한 이 같은 구별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이중의 불합리성을 띠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떻게 아폴리네르의 시에서 읽을 수 있는 현대적이기 위한 의도라든가 과거 세계에의 거부라는 시의 혁명성을 간과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아폴리네르는 1913년에 발표한 『알코올(Alcools)』의 초기 시들을 통하여 오랜 시기 동안 지속되어 온 그리스 로마 문화라든가 성서와 중세 문화에 기초한 항구 불변한 시적 유희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집 『알코올(Alcools)』, 1913.


이렇듯 아폴리네르는 「포도월(葡萄月, Vendémiaire)」이란 시에서 연기구름이 자욱한 공장 굴뚝을 ‘기계의 형상을 한 익씨온(Ixon :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만든 헤라의 형상을 한 구름과 익씨온이 정을 통하는 장면이 나온다)이라 표현하고 있다.


아폴리네르의 시집 『알코올(Alcools)』


더군다나 리요타르는 1950년 이후의 시대를 후기 산업구조와 포스트모던이라 뭉뚱그려 이야기하고 있다. 리요타르의 이 같은 입장은 오히려 그가 어떤 극점에 다다른 시점부터 다시 말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진절머리 나는 문제에 당면한 순간부터 모던에의 저항이란 차원에서 이루어진 그 나름의 개념의 파선(破線) 임을 – 물론 확고한 엄밀함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 가늠해 볼 수 있다.


문화의 근본 사상에 대한 회복은 단지 포스트 모더니티로 말미암아 가능했던 것만은 아니다. 이미 이러한 문화의 기저를 이루는 것들에로의 복귀는 1950년대의 누보 로망이나 우리포(Oulipo)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8화 전통은 어떤 작용을 하는가? (1) 참조].


잠재적인 문학 작업장(Oulipo) 및 누보 로망(Nouveau Roman)


더해서 필립 포레스트(Philippe Forest)만 예로 들어도 1992년에 그가 솔레르스에게 헌정하고 있는 탁월한 저술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솔레르스가 중반에 이르러 즉, 1970년대에 들어서서 조이스의 특징을 자신의 작품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은 바로 포스트모던에의 증거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필리프 포레스트 <글쓰기를 위한 삶>
필리프 솔레르스 및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그러나 1980년대의 소용돌이 이후에 기저 문화에로의 복귀 현상은 더욱 현저해졌으며, 퇴조 운동이란 차원에서 20세기 말에 있어서의 프랑스 문학의 주요한 특징으로 이어지고 있음은 특기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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