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5화

by 오래된 타자기


1장 4
(1832-1848)



모친은 남편 앞에서 아들을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그녀의 남편은 미리 사전에 나쁜 버릇들을 뿌리째 뽑지 않으면 얌전한 학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기생충 같은 놈이 된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의 아내 또한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더하여 자식들에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마저 눈치채고 있었다. 특히 장남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기만 했다.


어느 어머니나 다 그와 같이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으나, 모친은 자신의 장남에게 비록 학교가 맘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장남이 제 길을 잘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모친은 장남이 마침내 알을 까고 부화하기만을 고대했다. 꽃이 활짝 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안의 장남인 아들에게 이런저런 재능에 따른 징후가 나타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에두아르는 한 번 뭔가를 하기로 작정하자 아무도 말릴 수가 없게 되었다. 심지어 아버지의 격노조차도 아들의 질주를 막을 수가 없었다. 에두아르는 이제 고집부리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면서 더군다나 지극히 위험한 상태를 즐기는 나이가 되었다. 모든 것에 눈이 어두워져 그 모두를 상탄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걸 어떻게 해서든지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고 고집 피우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법학 이외의 다른 학문들이나 다른 분야 쪽에는 아무런 관심조차 없었다. 에두아르는 삶이 곧 경이로운 꿈의 실현과도 같으며, 이상과 열정으로 몰아넣을 언약과도 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나이에 이른 것은 물론, 모두를 감동으로 몰아넣으면서 영육을 뒤흔들 감동을 구현할 계시에 찬 나이를 먹기까지 한 것이다. 부모의 가증스러운 규범에 대하여 분명하게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나이.


대경실색할 일이 벌어졌다! 에두아르는 부모에게 순종하기를 포기한 채,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그것도 아주 어둡고도 불길한! 그를 위해서는 빛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찬란한 빛이. 예술가, 예술가가 되기로 맘먹었다는 건 학교를 그만둔다는 것과 같으며 결국 화가가 된다는 이야기나 다를 바가 없었다.


“예술가 마네라! 참으로 집안의 망신은 물론 가증스럽고도 수치스러운 일이로다! 어찌 너는 마네라는 성씨와 가문과 혈통을 이처럼 짓밟을 수 있느냐? 너는 오로지 법학만을 공부해야 한다.”


처벌은 가혹하기만 했다. 즉시로 온 집안에, 거리에, 삶에, 어린 반항아에게 침울한 분위기가 드리워졌다. 그러나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설사 부모의 감시와 처벌이 에두아르의 욕망에 족쇄를 채웠을지언정 그가 새롭게 눈뜬 각성이 발아하고 있는 것만큼은 말릴 수가 없었다.


에두아르는 스스로 대담함에 취해 자신이 하고자 열망하는 일을 밀고 나갔다. 아버지가 아들의 목을 잡고서 3일 동안 좁은 방에다 가둬놓고는 오로지 마른 빵과 물만을 준 탓에 에두아르는 사흘 밤 내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극도의 고립감 속에 분노마저 치밀어 오르면서 모든 것이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형제들도, 어머니도, 앙토냉도 방문을 두드리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외삼촌 에드몽도 그에게 말을 붙일 권한이 없었다. 결국 에두아르는 모든 걸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중단하는 것만이 당장 살 수 있는 길이었다. 에두아르는 아버지에게 잘못을 빌고 모든 걸 포기한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증오로 모든 것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가운데 에두아르는 다시 학교 수업에 참석했다. 이젠 아버지의 허락 없이 함부로 뭔가를 그리거나 하는 일은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에두아르의 선묘는 나날이 속도가 빨라지고 정확해져만 갔다. 예술가들이나 화가에 대해서는 한 마디 반구도 하지 않았다. 에드몽 외삼촌은 집에 틀어박힌 채 침묵을 지키고만 있었다. 여하한 일이 있어도 밖으로 나가는 건 금지되었다. 아뿔싸! 이 역시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에두아르는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연거푸 두 해를 보냈다. 이제 그는 어리다는 이유로 충분히 모든 걸 즐길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왜냐면 그 충격적인 취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효력은 딱 한 번 발휘되었을 뿐, 에두아르의 여린 각성을 결코 잠재울 수는 없었다.


에두아르는 아직 성인의 나이에 이르렀다고는 볼 수 없었다. 모든 걸 속박당한 상태 속에 나날을 보내야만 할 처지였다. 하지만 그를 들뜨게 만들고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준 명확한 체험을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그걸 아버지가 그것도 서투른 솜씨로 자신을 매섭게 후려쳤을 뿐이다.


“결코 전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 앞에서 공포에 질려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곤 하던 그의 유약하기만 한 어린 시절을 휘감은 과묵함의 베일을 드디어 벗어던지고 만 것이다. 그가 아버지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건 그처럼 자연스럽게 발생한 악몽이자 시련에 불과했다.


언뜻 보기로는 에두아르가 순순히 복종하는 듯한 태도로 바뀐 것 같았으며,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억지로 취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학교 성적은 억눌린 욕구를 맘껏 발산할 수 있었던 체육 수업을 제외하면 항상 중간 정도였다. 데생도 소홀해졌다. 그가 그린 스케치는 전투 장면들뿐이었고 그나마도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해서 그린 시시한 것들 따름이었다.


에두아르의 행실은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눈가림으로 그런 척했을 뿐이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이 변화무쌍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방법을 터득해 갔다. 매 학기마다 성적표를 손에 든 뒤에도 다시 되풀이될 뿐이었다. 똑같은 장면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고함지르는 소리 그리고 그에 대한 처벌……. 이 첫 번째 시련은 에두아르를 몇 달간이나 괴롭혀댔다. 그는 등이 굽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에두아르는 어느 날 기력을 되찾고 매일 저녁 자신에게 예정된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것에 대해 목소리 높여 완강히 거부하면서 동시에 이제까지 고분고분했던 것조차 단호히 그만두고자 맘먹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실천할 것이며, 또한 자신이 생각한 바대로 올바르게 걸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란 과연 어떤 길인가? 손에 색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고집 피우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라 작정했다.


그런 상황에서 2년이 덧없이 흘러간 뒤, 1847년 4월 어느 금요일 오후가 거의 끝나갈 무렵 여느 때처럼 기숙사 생활을 끝내고 귀가하자 누구보다도 에두아르를 따르는 강아지가 그를 보고는 펄쩍 뛰며 반가워했다.


에두아르는 개를 데리고 세느 강을 따라 멀리까지 산책을 나섰다. 몽상을 하면서 개와 함께 뛰어놀던 중에 에두아르는 언뜻 아버지가 발치에 있는 깜봉 거리에 위치한 사무실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았다. 아버지의 사무실이 자리한 건물은 깜봉 거리에 직각 자 형태로 당당하고 위엄에 찬 모습으로 들어앉아있었다.


개 역시 아버지를 알아본 듯 잘 차려입은 신사를 향해 펄쩍 뛰어오르면서 짖어대기 시작했다. 에두아르는 고개를 숙인 채 앞으로 걸어갔다. 집에서는 성적표가 자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성적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학교 교장이 이미 아버지에게 에두아르의 성적에 대해 무언가를 이야기한 것이 분명했다.


성적표를 아무리 뒤져봐도 아들이 무엇을 꿈꾸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탓에 아버지는 에두아르에게 운명적인 질문을 던졌다.


“너는 장래에 무엇을 하고 싶은 거냐? 대체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 거냐?”


얼빠진 표정으로 어린 소년은 집에서 고작 10미터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보자르(파리 미술대학) 쪽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세느 강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봄이 시작되고 몇 주가 흐른 뒤인 그날 세느 강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물살을 번뜩였다.


바닥이 평평한 하천을 오가는 수송선 한 척이 세느 강 하구를 향해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에두아르는 두 눈으로 커다란 화물선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배가 에두아르에게 아버지가 물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주리라 기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커다란 크기의 수송선은 바다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아버지의 욕심을 어떻게 해서든지 누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그러나 그 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는 불안한 눈초리로 마침내 에두아르는 성적표를 손에 들고 아버지의 질문에 대답했다.


“선원이 되고 싶어요.”


“아! 해군을 말하는 거구나.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고 싶다고? 아주 좋은 생각이다. 당장 내일 해군사관학교에 시험 치를 수 있도록 입학원서를 보내도록 하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에두아르는 당장 법학 공부를 때려치우게 된 것이다! 그것도 부지불식간에!


아들이 해군이 되겠다 해서 법학을 공부하는 걸 그만두는 걸 결정한 아버지로서는 생각 한 편에 이젠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아들이 더 이상 외삼촌 푸르니에와 함께 하지 않을 것에 대한 확신이 앞섰다.


의문은 바로 풀렸다. 중학교에서의 학업이 거의 끝나갈 즈음 성적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중간 정도였다. 따라서 아버님이라 부른 부친은 옳지 못한 처사로 자신의 친구이자 학교 교장인 롤랭으로 하여금 에두아르가 예비 교육 과정을 건너뛸 수 있도록 부탁했다! 열등생이 어떻게 수업을 건너뛰면서까지 상급반에 속할 수 있었겠는가? 에두아르가 예비 교육 과정을 건너뛰는 걸 아무도 개의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군다나 누구나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에두아르는 해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전념하기 위하여 나머지 수업은 되는대로 건너뛰면서 예비 교육 과정을 통과했지만, 결국 입학시험에 낙방했다. 이제 나이 16살에 불과했던 그로서는 수학 실력이 전무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필수과목인 삼각법에 대해서도 아무런 지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법학은 이젠 완전히 거리가 멀어졌다. 그런 탓에 에두아르는 아버지의 노여움을 살만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군인이었던 외삼촌 푸르니에가 그를 구하고자 날아왔다.


“지난해에 해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낙방했던 학생들이 바다에서 견습 생활을 받으면 입학시험에서 불합격된 걸 구제받을 수 있다 하더구나.”


‘바다에서의 구제라.’ 외삼촌은 유머를 섞어가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머 섞인 표현이긴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그가 구제받을 수 있는 법률안이 가결된 덕분이었다.


입학시험에서 떨어져 집으로 돌아왔지만, 해군사관학교에 다시 입학할 수 있는 규정에 따라 먼 곳에서 그것도 아버지의 노여움으로부터 너무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배를 탐으로써 에두아르는 구겨진 체면을 바로 세울 수가 있었다.


에두아르는 그걸 지체 없이 받아들였다. 분명한 건 아무것도 생각에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바다도, 해군이 되는 것도 상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친과 형제들과 우정 어린 앙토냉 그리고 외삼촌 에드몽과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조차도 깨닫지를 못한 상태였다.


오직 가슴 가득 차오르는 신선한 공기만을 흡입했다. 그건 시도 때도 없이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진정 자유로운 상태에 이른다는 걸 의미했다. 마치 자유에 도취되어 열광하는 듯한.


바다로 떠난다는 건 그의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는 걸 의미했다. 이미 기숙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가족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잠들곤 했던 관계로 오직 형제들과 앙토냉만이 그를 지켜보았을 따름이다.


양친과는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일요일에만 만났다. 그가 집을 떠나 기숙학교에 머문 건 6개월, 아니 그 이상의 기간에 해당했다. 그곳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복판 같은 곳이었고, 그곳에서 에두아르는 조난을 당해 표류하는 신세였다.


그렇다. 그곳에서 그가 아버지의 삶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아볼 수가 없다. 에두아르는 집에서조차 오직 가구들과 벽지들을, 자신의 부모를 멀거니 쳐다보면서 커가고 있었을 따름이다. 그곳은 그를 가둬놓은 감옥이었다. 도망치자. 저 멀리로 도망치자? 확실한 것은 그가 도망치기로 작정했다는 사실이다.


자식과 마찬가지로 부친에게도 바다에서 보낸 계절은 힘든 시기이자 뜻밖으로 주어진 행운의 순간이었다. 아버지 오귀스트가 의도한 바는 아들이 해군에 입대하여 해상훈련을 하다 보면, 아이에게 형성된 반항심이 자연 뿌리 뽑히게 될 뿐만 아니라 텅 빈 허공의 무한한 창공 또한 훈련 생활을 싫증 나게 만들어 아들이 다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참다운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법학 공부를!


에두아르는 아버지의 계획이 어긋나게 되는 것이 너무도 고소했다. 아버지는 오로지 자신처럼 법조인이 되는 것이 가장 값진 삶을 살 수 있는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둘째 아들인 으젠은 의사가 되고, 셋째인 귀스타브는 아직 어려 장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 상태였다.


장남을 르 아브르에 데려다주려고 집을 나서는 오귀스트는 문밖에서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내에게 절대 눈물을 보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장남을 르 아브르로 데리고 가면서 부친은 그가 도망치는 날에는 끔찍한 벌을 받을 것이란 공포심도 주입시켰다.


오귀스트는 실제로 아들이 배에 오르는 걸 지켜보길 원했다. 아들이 바다를 향해 출항하는 배의 뱃전에 서있는 걸 지켜보고 싶었던 탓이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1848년 12월 2일 에두아르는 르 아브르 항구에서 배에 승선했지만 폭풍우가 불어 기항지인 과달루프로의 출항이 연기되었다. 하지만 에두아르는 여전히 르 아브르 항구에 정박한 배 안에 있었다. 부친인 마네 씨 또한 홀로 호텔에서 소일했다.


바람은 더 거세게 불어 돌풍을 일으켰고 그는 창가에서 여전히 배가 항구에 계류 중임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가 정박 중인 배 안에 있는 아들과 멀리 떨어져 있게 된다면 아들은 파리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폭풍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지도 벌써 6일이 흘렀다.


어딘가로 도망칠 의향이 전혀 없는 에두아르는 선상에서 지내면서 받고 있는 규칙적인 훈련이 점차 몸에 배어들었다. 엿새째가 되는 12월 8일, 아버지 오귀스트는 아들과 작별하기 위해 배에 오르려는 감정을 여전히 품은 채였지만, 아들 눈에는 띄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러고는 배로 가서는 눈물도 보이지 않고, 아들과 포옹하는 일도 없이, 최소한의 눈에 띄게 불안해하는 어떤 감정 상태도 보이는 일 없이 오귀스트 마네는 처음으로 아들 손을 꽉 쥐었다. 구름다리 난간에서 나눈 마지막 작별이 애석해서였을까? 요컨대 바다로, 그것도 태평양 한가운데로 떠나보내지 못한 것을 영 아쉬워했던 것일까? 항해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오귀스트 마네는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장남에게 건넨 아버지의 작별 인사는 진정 어린 것이었던가? 에두아르는 그걸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오직 드넓은 대양, 난 바다를 향해 눈을 돌렸을 뿐이다.


바다, 무한한 창공, 수평선에 드리워진 모든 색조가 허공 한가운데에 글자를 새겨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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