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6화
2장 1
(1848-1851)
자유로운 영혼이여!
바다는 늘 그대의 가슴속에 출렁이리라.
지도들과 화판들을 펼쳐가며 무언가를 찾아 나서고픈
어린 시절이야말로 세상은 거칠 게 없는 탐험의 세계였노라.
오! 흔들리는 등불에 비친 거대한 세상이여!
눈을 뜨고 뒤돌아보니 세상은 좁디좁은 곳에 불과했구나!
- 샤를 보들레르
르 아브르로 떠난 뒤에 에두아르는 모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가족의 안부를 묻는 걸 극도로 삼갔다. 자신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아버지뿐만 아니라 자신의 형제들, 외삼촌들 그리고 할머니까지 나서서 읽으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터였다.
그는 오로지 호된 훈련 생활을 겪고 있는 내용으로 가득 찬 장문의 서한만을 어머니에게 띄웠다. 에두아르는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여느 어린아이처럼 어머니를 따랐다. 그래서 모친은 자신의 아들이 심리적으로 의존 상태에 빠져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채라고 판단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르 아브르에 오실 수 없었음을 너무도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사 새로운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고통스러운 작별의 순간뿐이라 할지라도 [···] 비단 선박에서 생활해야만 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따뜻한 위로와 불쌍한 어머니들이 자신들의 자식을 데리고 온 것을 확인할 때마다 어떤 특별한 호사스러움마저 떠오르곤 합니다. 배 안에는 모두 36개의 침대가 놓여있으며, 저는 기둥에 달아 맨 그물 침대인 해먹에서 잠을 잡니다. 배 안에는 요리사와 취침을 점검하는 흑인 지휘관을 포함하여 모두 26명의 남자들이 있습니다. 배 뒷전에는 피아노가 있는 아주 그럴싸한 휴게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 사랑하는 어머니! 이만 작별을 고합니다. 어머니와 제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너무도 서글퍼진 까닭에 이만 갈음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형제들과 에드몽 외삼촌에게, 그리고 모든 분들께 제 안부를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따사로운 애정을 쏟아주시는 할머니께 각별한 안부를 부탁드립니다. 어머니께 제 따뜻한 입맞춤을 전하면서 이만 총총……. 존경의 마음을 담아 아들 올림.”
바다로 나가기 위해서는 프랑스로 돌아오는 배와 엇갈려 지나쳐야만 했다. 거의 매번 길게 쓴 편지들은 배가 그저 스쳐 지나간 것처럼 느닷없이 끝나고 만다. 거기에는 아무런 항적도 없다.
에두아르 마네가 배에 승선한 날 17살이 채 안 된 그때에 그는 드넓은 대양에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하지만 그건 한 마디로 한 줄의 경력도 되지 못했다. 파도치는 해안에서 명상에 잠긴 끝에 에두아르는 자신이 걸어갈 길을 가늠해 보았다. 그러고는 선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가 해서는 안 될 것을 재빨리 선언하기도 했다. 자신이 선원이 될 거라는 어떠한 확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라! 그는 바다를 좋아했다. 바다 곁에서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바다는 그가 있는 곳 인근의 저 아래에 있지 않았다. 그는 여름 휴가철을 이용하여 바다를 찾는 여행자로서만 바다를 좋아했을 따름이다.
성난 바다를 바라보며 폭풍우를 홀로 견디며 자만에 빠지고 파도치는 바다에 조금은 빨리 익숙해졌다고 판단한 처음 며칠이 흐른 후, 그는 두 번째로 닥쳐온 성난 파도에 쓰러지고 말았다. 나흘간이나 에두아르는 배 뒤편 갑판 쪽으로는 발걸음조차 내딛질 못했다. 그곳은 모두가 구토를 일으켜 토해놓은 토사물로 지독한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악천후에 더하여 어머니의 학업에 대한 반복되는 질문이 그를 괴롭혀댔다.
에두아르는 결국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고 말았다. – 내면에서 거세게 이는 폭풍우는 아마도 바다에서 부는 폭풍우보다도 더 거칠게 에두아르를 흔들면서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을 법하다.
에두아르는 해상 실습에 관하여, 그리고 견습생들이 속한 각 학급이 절대복종에 따르는 계급 유형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속한 예비 견습생들인 어린 수병들은 상급 지휘관들에게 거수경례를 해야만 했다. 이는 각 단계마다 다양하게 실시되는 훈련 체계에 절대복종한다는 의미였다.
에두아르는 그가 속한 분대에서 가장 어렸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그와 같은 처지에 있던 아돌프 퐁티용이라 부른 견습생으로부터 보호받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에두아르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고 모든 시험에 합격한 장본인이었다. 퐁티용은 앞으로 해군 장교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하루의 4분의 1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텅 빈 시간이었다. 이 텅 빈 시간의 기다란 백사장은 견습생들이 서로 간의 우정을 견고히 쌓아가는 장으로 꾸며졌다. 그렇기는 하지만 얌전하고 좀처럼 속내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던 마네로서는 자신의 단짝하고는 정치에 관해 역사적으로 커다란 변곡점을 이룬 사건들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를 갈망했다. 대화의 기술에 대해서만큼은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에두아르는 함장에게 거의 매번 질문하곤 했다. 혹시 함장이 프랑스 본국에서 벌어진 일들에 관한 소식을 알고 있는지를 묻곤 했다.
리오를 향해 항해하는 동안 자잘한 일들이 발생했다. 일기가 불순했을 뿐만 아니라 지루함마저 몰려왔다. 출항 준비를 하는 중에 악천후가 발생하여 기항지를 아일랜드로 바꿔야만 했다.
그들은 예정된 날보다 훨씬 뒤에야 포르투갈에 기항할 수 있었다. 바람이 반대로 부는 바람에 생수와 빵과 신선한 과일들을 싣고자 배를 부두에 정박시키는 것조차 힘들었다. 먹을 것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던 관계로 그들은 허기가 졌다. 누구보다도 배가 고파 참기 어려웠던 에두아르는 해군 수병들이 먹는 건빵이라도 먹으려고 달려들었다.
그들에겐 매번 식사가 제공되고 있었지만 양이 충분치가 않았다. 그에게는 빵이 늘 부족했다. 그런 이유로 빵을 훔치고자 이곳저곳을 뒤지고 다녔다. 이때 경제에 관한 초보 원리를 깨달았다. 배에서는 잃어버릴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무엇도 버리는 건 금지되었다.
에두아르가 아무리 사람 취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걸 스스로 즐겼다 하지만, 그에게 공포심을 조장하기 위하여 선박 표면에 낀 이끼를 제거하게 하는 것이나, 강제 노역을 당하는 것이나, 강제로 물속에 처박히는 등 온갖 무시무시한 취급을 당하는 것조차 달갑게 여겼다.
하지만 그와 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이 중고등학생 시절 자주 벌어지던 짓궂은 장난을 넘어선 것이란 사실을 알고부터는 마음속 깊이 자신이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가 너무 어렸던 탓으로 괴롭히고 놀림을 당하는 것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절감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계급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를 알고 있었던 탓에 경솔한 행동을 보이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뱃멀미에 향수병까지 겹쳤다. 12월 22일부터 기력이 급격히 쇠약해지더니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말았다. 몇 달째 바다에 떠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에두아르가 퐁티용에게 털어놓기를,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매일 같은 하늘, 같은 바다만 보일 뿐이야. 눈을 뜨고 어디를 둘러봐도 똑같은 풍경이야. 매일 똑같은 일만 반복될 뿐이고. 똑같은 생활의 되풀이에 결국은 미쳐버리고 말겠지!”
그가 배에 승선한 건 12월 8일이었다! 식량을 보급 받기 위해 잠시 들렀다 가야 하는, 꿈에 그리던 중간 기착지 포르투갈 령 마디라 섬이 수평선 저 멀리로 검은빛 가오리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악천후로 배가 섬에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먹을 것마저 떨어져 여전히 군용 건빵으로 연명해야만 했다.
모든 풋내기들이 그러하듯이 에두아르 역시 돌고래에 열광했다. 엄청난 크기의 돌고래들을 발견하고는 짜릿한 흥분마저 일면서 갑판 위로 튀어 오르는 날아다니는 물고기들을 지켜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풍경에 두 눈마저 휘둥그레졌다.
북회귀선을 지나면서부터 닷새째나 긴긴 낮 동안 검은 항아리 단지 속에 꼼짝하지 않고 들어박혀있었다. 열기가 그들 모두를 숨 막히게 만들었으며 갈증은 날로 더 심해져 갔다.
바다에서 한 달이 흘렀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에게 편지를 전해줄 우편물을 실은 프랑스 선박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일간지나 신문들을 건네받을 수 있는 프랑스 선박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게다가 에두아르는 소식이 점점 궁금해졌을 뿐만 아니라 현재 프랑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절망적일 만큼 가련한 상태에 빠진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이 배에 승선할 때 프랑스 정치적 상황은 누가 프랑스를 이끌어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국은 혼미한 상태였다. 더욱이 안타까운 일은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1848년 그 해에 에두아르의 모든 것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뒤엉켜버리고 말았다.
저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몹시도 궁금해하던 탓에 아무런 소식도 모른 채 배에서 지내야만 한다는 것이 에두아르의 감정을 더욱 격화시켰다. 8개월 전에 그는 온 파리 거리에서 7월 혁명으로 군주제가 붕괴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1845년, 46년 연달아 두 해에 걸쳐 기근이 이어졌다. 자연재해로 수확량이 확 줄어들자 가난한 이들이 일제히 무장한 채 봉기하여 파리의 온 거리에 성난 물결을 이뤘다. 이들을 막을 방법 또한 없었다. 배고픔과 궁핍으로 말미암아 이미 광분 상태에 빠진 성난 민중들은 통제선 밖에 있었다. 에두아르는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6월에 이미 파리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루이 필리프는 사의를 표명했다. 그때 에두아르는 외삼촌과 함께 성난 민중들 틈에 끼어있었다. 바다에서 거세게 부는 폭풍우마저도 아버지와 외삼촌과 함께 지켜보던 성난 민중들의 격렬한 투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또한 아버지가 피력한 견해와 충돌하면서 불화마저 생겨난 기억까지 상기시켜 주었다. 그때 이후로 에두아르는 정서적으로 외삼촌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는 군주제를 옹호하는 편에 기대기보다는 개혁의 물살을 탄 공화파의 이념을 흡입해 가던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