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10화
2장 5
(1848-1851)
가족들은 에두아르가 변하지 않았을까 궁금해하면서 그를 반겼다. 오랫동안 바다에서 지내다 보니 가족들 간에 그의 자리가 뻥 뚫린 상태였다. 에두아르는 오랫동안 바다에서 긴 나날을 보냈으며, 리오에서는 낮과 밤을 지새우기까지 했다. 열병과 몸살과의 격렬한 싸움, 그리고 데생을 가르치는 일로 소일하면서 프랑스로 귀환하는 마지막 나날을 보냈다.
가족들은 에두아르의 몸을 보고 거의 홀쭉해질 정도로 늘씬해졌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더군다나 용모는 햇볕에 그을리고 머리카락은 금발에다가 이제는 씩씩하게 단단한 땅을 딛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갈 것을 확신하는 눈치였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 뭐란 말인가? 이 가톨릭 중산층 부르주아지 집안에서 그에게 일어날 일들을 예견한 사람은 그처럼 아무도 없었다.
마치 예정된 일 인양 에두아르는 해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낙방했다.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속내에 있는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없었다. 그 또한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지 않았다. 그는 입학시험지를 백지로 제출했을 뿐이다. 그 같은 비밀을 오직 형제들하고만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드디어 모든 것에 저항하고 있었다.
참담한 결과를 받아 든 아버지는 아들에게 운명적인 질문을 던졌다.
“너는 네가 무얼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곧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법학 공부도 해군사관학교도 아니고요, 화가가 되렵니다.”
그의 나이 17살에 6개월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특히 그가 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를 정확히 깨달을 수 있는 나이였다. 쥬느빌리에흐에서 보낸 여름 휴가철에 가족 모임에 모습을 나타낸 에두아르는 확실히 변한 모습이었다.
털갈이를 하는 짐승처럼 그는 자신을 개조하는데 진력했다. 날씬해졌고, 근육이 생겼으며, 세련된 모습이었을 뿐만 아니라 머리마저 벗어지기까지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적으로 보이는 그의 커다란 이마와 책임감이 전보다 배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나이에 기다란 수염을 길러 구레나룻이 그를 한층 건방져 보이게 만들었다.
또 다른 변화도 있었다. 열대지방에서의 경험, 그리고 그곳에서 겪은 이상야릇한 체험, 신체적으로 겪은 온갖 시련들과 도저히 발설할 수 없는 사정에 의한 그 무엇들이 스스로 자신을 컨트롤하는 것과는 묘한 대조를 이뤘다.
스스로도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가 어머니나 형제들은 물론 사촌들을 홀린 이상야릇한 표현 역시도 인상적이었다. 아버지마저도 아들을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보지만은 않았다. 아버님이라 부르는 부친은 에두아르에게 법학을 공부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권유하는 걸 포기한 채,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다른 질문마저 던졌다.
에두아르는 아주 강한 어조로 아버지의 물음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바다에서의 여섯 달과 화가로서의 첫 번째 성공은 그의 신념을 확고하게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미술대학에 들어가고 싶다는 말이지?”
“아뇨.” 그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화가가 되겠다는 게 맞느냐?”
“좀 더 수련을 쌓을 것입니다. 몇 주 간만이라도 저를 내버려두셨으면 합니다. 작업할 곳을 찾을 때까지 만이라도요.”
“화가가 되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느냐? 예를 들어 건축가가 될 생각 말이다.”
“화가 이외에는 다른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귀스트는 아들과의 대화를 그만두었다. 에두아르가 이겼다. 열일곱의 나이였다. 이제 그는 자유로운 몸이 된 것이다!
당시의 예술계의 상황에 비춰보거나 또한 그의 기질로 볼 때, 마네는 가까운 시일부터 먼 훗날에 이르기까지 제도화된 모든 예술계를 다 완강히 거부할 참이었다.
“미술대학에 들어갈 생각은 없으며, 로마 상을 수상하려고 노력할 마음도 없고 더군다나 구태의 방법을 통하여 제도화된 예술을 따를 생각 또한 전혀 없습니다. 더군다나 관학풍의 예술을 추구할 생각은 더욱.”
“뭐라고? 어디서 뭘 어떻게 한다고?”
무장을 해제당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속내를 드러낸 강직함이라고나 할까?
여섯 달 동안 에두아르는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은 채 고집 피웠다. 그는 이곳저곳 아틀리에들을 오가기도 했지만, 자신이 직접 선택한 곳을 골라 찾아가서는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또한 아틀리에에 걸려있는 작품들을 바라보면서 그가 어떤 방법으로 그림 그릴지를 스스로 적용할지에 대해 신중히 검토까지 마쳤다. 어떤 아틀리에들은 그가 마음에 드는 방법론을 실제 작품에 적용한 경우에 속했지만, 반면 어떤 아틀리에들은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많았다.
게다가 아버지는 모든 일에 더 이상 참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들이 확신하고 있는바에 반하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조차 포기했다. 아들은 절대 정해진 길을 따라 걸어가지 않을 것임이 분명해 보였고 아카데미에 개망신을 줄 것이며, 자신에게 걸맞은 실기 선생을 스스로 선택할 거라고 고집 피웠다.
이런 자유스러운 상태에서 그는 여름 휴가철 내내 문전 박대를 당하면서까지 파리에 머무르면서 거의 여섯 달 가까이를 이곳저곳 자신에게 적당한 아틀리에가 있는지를 찾아 헤매 다녔다. 매일 루브르를 찾아가서는 벽에 걸려있는 작품들을 화폭에 그대로 옮겨보는 건 어떨까 스스로 자문해 보기도 했다.
밤에까지 이러한 방황은 이어졌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급하게 집 밖으로 뛰어나가서는 리오의 유흥가를 쏘다녔을 때처럼 생 조르쥬 마을 기슭에 새로이 조성된 누벨 아텐느 구역에 들어선 유흥가를 전전했다.
그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젊은 남자의 경력을 착실히 쌓아가는 중이었다. 서클, 최신 유행 카페, 카바레, 또 다른 구역에 들어서 있는 유흥가들을 드나들면서 색다른 경험을 쌓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모든 걸 경험하면서 앞으로 친구가 될 이들을 손꼽고 있었다. 특별한 경우에는 아직 이름을 내 걸 만큼 유명하지 않은 그림쟁이들과 또한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는 보헤미안들, 세속적 쾌락을 좇는 활량들, 그리고 온갖 멋을 다 부린 세련된 멋쟁이들인 댄디들과 같은 아주 특이한 유형들에 속한 작자들이 드나들었다.
그는 이들 무리 가운데에서 자신과 함께 경험을 나눌만한 작자가 있는지 뒤지고 다녔다. 젊지만 나이보다 훨씬 더 무르익은 행동을 하는 마네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가 않다. 물론 그는 간혹가다 착오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 기간에 그에게 형성된 우아함은 앞으로 변별적 특징으로 작용하기까지 한다. 다시 말해 넥타이를 이용하여 한층 세련된 멋을 강조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모친은 그와 같은 모습에 상당히 흡족해했다.
덕분에 어머니와 형제들과 공모하여 단 한차례의 실수도 저지르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저녁식사 때마다 빠짐없이 모습을 나타내고는 아버지가 식사를 한 뒤 잠들자마자 바로 집 밖으로 나서는 기행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그는 파리를 사랑했다. 파리의 밤 역시 사랑했다. 그렇기에 그는 파리와 밤을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쾌락에 젖어드는 쾌감을 맛본 이후로 그는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을 모두 거부했다. 오직 생생하게 살아있는 존재들만이 그의 취향에 부합한 것일까?
외삼촌 에드몽이 벌이는 온갖 난삽한 짓들을 지켜보면서 아버지에게 처남 뻘이 되는 작자를 골려 주는 재미에 빠져들자 에두아르는 더욱 불법으로 영업하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파리의 수상한 곳들을 찾아 헤매는 일에 열을 올렸다. 화류계에 눈을 떠가는 것이 어찌 보면 쾌락의 즐거움에 빠진 젊은 남자에게는 행운일 수도 있었다.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화폭에 담고자 했으니 그에게 그와 같은 욕망을 불러일으킨 세상에게 거꾸로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그것도 광적으로 뻔뻔스레 시도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다려야만 한다. 그걸 제대로 표현하는 기술부터 익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