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전 심사위원회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53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앙리 제르베(Henri Gervex)가 묘사한 미술전람회 출품작 심사위원회 심사 장면.



7장 4
(1864-1865)



붓이나 가위나 펜이나 할 것 없이 온갖 재주를 능히 구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걸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나 뜨거운 열정, 사려 깊음 또한 남에게 뒤질 게 없는 자샤리 아스트뤼크가 마네와 상당히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마네는 그의 모습을 「튈르리 정원에서의 음악회」에 담은 바 있었다. 또한 「스페인의 왕비에게 벌어진 한밤중 소동」에서 그의 모습을 다시 묘사한 것 역시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1862, La Musique aux Tuileries.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튈르리 정원에서의 음악회(La Musique aux Tuileries)」, 1862.


가까운 사이가 된 친구의 초상을 그린 것은 친구에게 기쁨을 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결국 친구 맘에 드는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아주 예민한 탓인지 아스트뤼크는 늘 아틀리에에서 온 신경을 집중하여 작업에 몰두해 버릇했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친구나 작품에 대하여 맹렬히 옹호하는 그를 말릴 수 있는 자 아무도 없었다. 서정에 넘치는 작품을 지지하고 이를 펼쳐가는 그의 열의를 막을 자 역시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1864, Portrait de Zacharie Astruc.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자샤리 아스트뤼크의 초상(Portrait de Zacharie Astruc)」, 1864.


“마네야말로 이 시대가 낳은 걸출한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이며, 그는 오늘 이 미술전람회에서 섬광을 발할 뿐만 아니라 감동을 주고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재능으로 탄성마저 터져 나오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게르부아 카페를 드나드는 친구들 말고는 누가 자샤리 아스트뤼크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거의 매일이다시피 12명가량의 동료들이, 간혹 그 이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모임의 핵과 같은 존재인 마네-팡탱-드가를 중심으로 게르부아 카페를 드나들었다. 게다가 점차 바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특히나 금요일에는 멤버들이 거의 다 모였다. 카페 입구 왼쪽에 있는 두 테이블은 이들의 독차지가 되었다.


젊은 화가 집단은 몸집을 불렸다. 당연히 그림쟁이들 모두에게서 스캔들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서로 이웃한 채, 그들이 속한 선량한 사회에 의해 온갖 망신을 당하고 있긴 했어도 그 또한 전혀 구애받지 않았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친구들 가운데 르그로는 동료인 마네를 비롯하여 팡탱, 르누아르, 드가, 휘슬러의 초상을 그리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이들 동료 화가들은 르그로와 함께 런던으로 갈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르그로는 런던에서 부자가 되어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제임스 티소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들로서는 제도권 안에서 그들의 작품을 향해 표출되고 있는 적대 행위들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하던 참이었다. 관전의 횡포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이유로 두 나라를 이쪽저쪽으로 갈라놓은 망슈 해협까지 한걸음에 건너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바지유가 자주 얼굴을 디밀었다. 아흐장퇴유로 이사 간 모네도 끼어들었다. 두 사람은 항상 함께 하던 이들은 아니었다. 세잔은 그와 같은 백인이긴 하였지만, 머리털도 검고 얼굴도 까무잡잡한 친구 졸라의 권유에 못 이겨 참석했을 따름이다. 두 사람 다 시골 냄새를 풍길 정도로 촌스러웠을 뿐 아니라, 공공연하게 파리 화가들을 경멸하고 조롱하는 말투 또한 여전했다.


삼류 문사에 속하는 몇몇 엉터리 문인들 또한 핵심 구성원들과 어울렸다. 그들 가운에 한 명이 아가씨들을 잘 웃길 줄 아는 호남형 얼굴인 평론가 이폴리트 바부였다. 이폴리트 바부는 번번이 함께 살고 있는 여자를 데리고 나타나는 바람에 동반자로 말미암아 모두가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


뒤랑티와 뷔흐티는 서로를 헐뜯고 비웃다가 서로 엉켜 붙어 땅바닥에 뒹굴고. 젊은 화가 집단은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저 이야기를 주고받는 걸 좋아했다. 그것도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수많은 주제들을 화제로 삼았다.


하지만 최근에 개최된 전시회들과 새롭게 떠오른 재능꾼들이나 현재 작업을 진행 중인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들의 단골 메뉴였다. 왜냐면 몇몇 글쟁이들을 제외하곤 그림 그리는 이들이 모임의 주축을 이루고 있어서 회화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온갖 문학 서클과는 대조적으로 이들 집단은 각자가 모임에 열의를 지닌 까닭에 서로 어울리는 걸 좋아했으며, 서로에 대한 열정까지 품고 있었다. 절대 빈약하고 초라할 수 없었던 것이 그 때문이었다.


모두가 한 마디씩 이야기를 꺼내고, 서로 말다툼하고, 지칠 줄 모르는 논쟁을 이어가는 관계로 관전이 배출한 인기 작가들을 부러워하거나 질투심에서 그들의 결점에 관해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할 틈조차 없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단연 예술이었으며, 열정에 찬 우정이었다. 그들 서로 간에 똘똘 뭉칠 수 있었던 것도 돌이켜보면 모임에 대한 열의 때문에 가능했다. 여자들과 어울리는 일과는 거리가 먼, 적어도 카페에서만큼은 여자들과 어울리는 일은 좀처럼 드물었다.


설사 어쩌다가 여자들과 어울리는 일이 생겨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여자들도 그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법이 없었다. 설사 여자들과 희롱하고, 장난치고, 농담을 주고받는다 할지라도 어찌 되었건 간에 그들 예술가들의 모임과는 아무 상관 없는 논외의 대상으로 치부되었다.


그런 가운데 관전에 의한 미술전람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재능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이들이, 작품을 보는 판단 능력조차 결여된 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 상황에서 암살자들에 불과한 이 심사위원들은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해 출품한 돌들을 자기 입맛대로 깎아낼 것이 틀림없었다.


심사위원회는 오로지 ‘경애하는 장색(마스터)’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고관대작들로 구성된 자유석공조합(프리메이슨)을 방불케 하는 조직이었다. 그들은 저 강줄기 끝이 땅속으로 잠기는 끝없이 펼쳐진 마리고 강 지류들 가운데에서 허우적대며 어쩔 줄 몰라 쩔쩔맬 것이 틀림없었다.


조형예술 부서인 보자르에서 박물관 협회인 메디시스 빌라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학술원이자 예술원인 아카데미에서 프랑스 학회인 앵스티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자기들 마음에 드는 것만을 골라서 노획물로 삼은 작품들을 서로 차지하려고 주문하고 이를 도배하고자 안달이 나서 어쩔 줄 몰라할 것 또한 확실했다.


그들은 서로 군생하는 식물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지닌 이들로서 보다 더 서로를 잘 감시하기 위해서는 절대 흩어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Salon des Refuses de Paris, 1863.jpg 미술전람회(Le Salon artistique en 1864-1865)에서 출품작 선정을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담은 기록화.




매거진의 이전글스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