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52화
7장 3
(1864-1865)
미술전람회 전시장 문이 열리자마자 모든 이들이 예상했던 대로 일반 대중은 곧바로 마네의 작품 앞으로 돌진했다! 작품 전시는 알파벳 순서에 따라 이루어진 탓으로 마네의 이름자 첫 글자인 ‘엠(M)’자 앞으로 군중이 쇄도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마네는 순식간에 다시 온갖 모욕과 경멸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자연히 그의 작품도 공격의 화살을 피할 수 없는 과녁이 되고 말았다. 「그리스도의 죽음」처럼 「투우 장면」의 에피소드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폭소를 터뜨리게 만들었고, 조소를 퍼붓게 만들었으며, 야유를 쏟아지게 만들었다. 노도와 같이 쏟아진 비난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마네가 그린 「그리스도의 죽음」은 교양이 낮은 중산층 계층에 속한 이들이 신봉하는 정교주의에 따른 엄격함과 자연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비난은 예수 그리스도 몸에 수직으로 내리치는 채찍질과도 같은 수준이었다.
그렇기는 하여도 마네는 만테냐나 필립 드 샹패뉴의 형제와 같은 화가이기에 충분했다. 일반인들은 화제가 그레코와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투는 부당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모욕이 담긴 욕지거리에 불과했다. 작품에 대한 반감도 싹텄다. 어느 누가 마네의 그림을 제대로 감상했겠는가? 그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가 옆구리가 아닌 잘못된 곳에 그려져 있다는 사실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보들레르와 연대하여 보조를 나란히 한 덕분에 일약 존경받는 저명인사가 된 고티에가 다시 마네를 편듦으로써 비난으로 먹칠만 당한 것일까?
또 다른 혹평 가운데 하나는 마네가 “구두 칠을 한 듯한 붓질로 그림을 그렸다”는 평가였다. 이 같은 혹평은 다른 비난보다는 한결 수위가 덜한 편에 속했다. “「투우 장면」은 원근법의 개념을 완전히 무너뜨렸으며, 그가 그린 「그리스도의 죽음」은 너무도 가련한 보잘것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줄 뿐인 신성모독에 가까운 작품일 따름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무덤에서 부활하는 모습은 보기 드물게 최상의 표현을 획득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에는 난데없이 쿠르베가 나섰다. “자네 천사들을 본 적 있어? 자네 말이야, 천사들이라면 진절머리가 난다는 걸 알고 있냐고?” 자칭 예술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화가들이 마네를 조롱하고 나서야만 했다면, 왜 그들은 제도권에 속한 공식 예술가들을 압살하는 데에는 그처럼 주저했을까?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몰골사납게 싸우는 일은 이제 거의 관습적인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마네에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 걸까? 아니면 그 역시 어딘가로 도망쳐야만 하는가? 그건 아니다. 왜냐면 마네는 그래도 유리한 상황이었다. 동료들 역시 혹평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보다 덜할 것도 없었다.
단지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었다. 마네의 작품들을 보고 이구동성으로 증오를 쏟아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따름이었다. 그런 증오심의 표출은 마네에게 있어서 타당하다기보다는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현상이었다. 작품을 상탄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처럼 균형감각 없이 공공연하게 비웃고 증오를 품은 고함만 내지르는 짓은 단지 악다구니에 지나지 않을 뿐이지 않은가.
미술전람회가 열리기도 전에 새로운 스캔들이 터져 그간 「목욕」이 뒤집어쓰고 있던 불명예마저 탈취당하는 소동마저 일어났다. 『예수의 삶』이란 제목이 붙은 책이 출간된 탓이었다. 이 책은 예수의 삶을 다룬 책이라기보다는 저자인 에흐네 르낭의 삶을 기술한 책에 더 가까웠다.
책을 읽은 이들은 르낭이 마네의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자마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회화에 대한 애호가이자 마네의 친구였던 위렐 신부는 책 내용 이상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위렐 신부는 마네에게 있어서 신학적 주제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상대였다.
확실한 건 마네는 신에 대한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자 시도하였다는 점이다. 착한 하느님을 인간화한 것이 수치라니, 뭔 놈의 치욕! 결론적으로 말해서 마네는 또다시 가십거리의 소재가 되었다는 데 있었다.
모두가 나폴레옹 3세의 권위를 실추시킨 르낭의 책을 읽었으며, 읽고 있는 중이고, 읽어갈 것이다. 르낭은 마네가 회화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자 고민했던 것과 같은 시선으로 경건한 역사를 다루었을 뿐이다. 그는 마네처럼 눈에 보이는 것과 어떤 이들에게는 보이는 것이 만족스러운 것만이 아닌 것을,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조차 제시하려고 애썼다.
“역사가는 단지 예술과 진실에 대해 고민할 뿐이다.”라고 르낭은 공언한다. 이어 그는 “스스로가 속해 있는 시대와 족속을 부인하는 자만이 자신이 속한 시대와 족속에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결국 르낭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만족스럽지만, 권력을 쥔 자들에게는 마음에 차지 않는 기독교의 교리에 따른 삶을 보여주고자 애쓴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더라도 마네와 르낭의 시선은 그렇게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급변하는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전속력으로 질주해 가는 제국이란 거대한 기관차 밑으로 슬그머니 끼어들고자 시도하였을 따름이다. 마네는 사려 깊게도 시대에 뒤지지 않으려 애썼다. 르낭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시대적 진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만큼은 그러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야기한 소동을 지켜보면서 마네는 혹시 보들레르가 사주한 바 있는 「비너스」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마네는 그걸 바라고 있었다. 그는 세상에 대한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이 세계야말로 모든 게 결핍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마네의 이 같은 판단은 재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찌라시들과 그를 중상모략질하고 있는 자들이 계속 마네를 씹어대면서 즐거워했던 탓이다. 마네는 세상엔 엄연히 진실이 존재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처럼 한심한 일을 당하고도 팡탱의 「들라크루아를 기리며」이라는 그림 덕분에 마네는 오히려 호감을 주는 인물로 비쳤다. 사람들이 그에게 악착같이 달라붙어 떠들어대는 것도 그리 지겨운 일만은 아니었다. 팡탱이 그린 그림 속의 등장인물이 되었으니, 어느 날인가는 마네를 제대로 평가할 날이 도래할 것 역시 분명했다.
하지만 저널과 남에 대한 소문을 떠들어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팡탱의 그림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들라크루아가 죽자마자 잊힌 탓이었다! 들라크루아의 후예들인 젊은 화가들은 자신들에게 건네진 검은 깃발만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또다시 실패!
마네는 자신의 더 없는 친구들에게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운 것에 데에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자신이 전위예술운동(아방가르드)의 중심에 서서 이를 추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그늘을 드리운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특히나 팡탱의 그림을 향한 미안한 감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들라크루아의 눈에 비친 거의 독보적인 존재로서, 그를 믿고 따르는 친구들 곁에서, 또한 현대적인 주제들을 추구하는 십자군과도 같은 혁명적 예술 운동을 이끌어 가고 있는 입장에서 마네는 말갛게 씻은 두 눈으로 바라보는 비전을 새로이 제시해야만 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까지도 구현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낭만주의자로 낙인찍힌 보들레르만 하더라도 그에게는 사람들이 가능한 가장 우아한 인사말을 건네는 것조차 마치 죽음을 예찬하는 이들에 대하여 빈정거리듯 조롱이나 쏟아내는 거나 다를 바가 없었다.
시인과 같은 혈통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갑옷과 투구를 갖추는 일만이 가장 절실한 일이었다. 적어도 보를레르가 어떠한 인물인지 알고 있는 마네로서는 보들레르만큼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