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르부르 앞바다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54화

by 오래된 타자기


7장 5
(1864-1865)



마네의 작품들에 격노한 심사위원들처럼 그 역시 심사위원들이 하는 짓거리에 분격하여 마네는 어떻게든 파리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이탈리아 무언극에서나 볼 수 있는 야반도주해야만 하는 도망자의 심정과는 달리, 단지 파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그에게 첫 번째로 주어진 기회에 진정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난 3년간 미국에서는 기이하게도 프랑스에 열광하는 내란과도 같은 수준의 열풍이 불면서 맹위를 떨쳤다. 6월이 되자, 미국에서 시작된 싸움이 공화주의 신념을 지닌 이들 사이에서 미술전람회를 둘러싼 싸움으로 비화되었다.


불길이 점점 가까워오고 있었다. 미국의 남군을 실은 배 한 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앨라배마란 이름이 붙은 이 배는 60척에 달하는 미국 북군의 배들을 순식간에 격침시킨 걸로 유명했다. 그것도 셰르부르 난바다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호기심이 발동한 마네는 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고자 달려들었다. 마네는 현재 작업이 진행 중인 작품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 영 달갑지 않았으나, 잠시 작업을 중단하는 것도 건강엔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자신이야말로 왕년에 수습 선원이 아니었던가 결론이 내려지자마자 마네는 선박 조종기술 실습을 시키는 배에 올라탔다. 그가 탄 배는 해전의 끝판을 지켜보기 위해 그를 최대한 가까이 데려다줄 것이고, 마네는 배 위에서 해상에서 벌어지는 박진감 넘치는 광경을 스케치할 참이었다.


다행히 미국 북군의 배 케이르사르쥬가 승리했다. 북군은 노예제도 폐지론자들이 주축이 된 선량한 공화주의자들이었다. 마네는 그들을 지지했다. 파리에 돌아온 마네는 여세를 몰아 습작한 것들을 화폭에 옮겼다.


보름이나 걸린 마네의 첫 번째 작품이 완성되었다. 해전을 그린 두 번째 작품이 완성되자마자 바로 리슐리외 가에 있는 꺄다흐 갤러리 유리 진열장에 전시했다. 마네의 작품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담은 역사화”로서는 최고의 수준이었다!


마네의 작품을 본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림으로 기사를 완성한 회화-저널리스트의 이상적인 작품을 보는 듯하다고 평했다. 관전에서 마네에게 망신을 줬던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셰르부르 인근의 대서양 난바다에서의 해전을 그린 「케이르사르쥬 호와 앨라배마 호와의 해전(Le Combat du Kearsarge et de l'Alabama)」, 1864.


대서양에서의 체험은 마네가 거듭나는데 확실한 도움을 주었다. 바다를 향한 그만의 애착에도 큰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때의 심정을 “저 수평선 상에 아득히 배가 지나간 뒤의 물결에 어른거리는 빛과 그림자의 숨바꼭질을 즐기면서 꿈꾸던 밤이 과연 몇 밤이던가?” 하고 털어놓았다.


마네는 술회하기를, “난 하늘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해전을 소재로 한 작품 제작에 그는 온 심혈을 기울였다. 마네의 성공은 눈부시기만 했다. 「투우」의 실패가 야기한 상심의 나날 또한 기억의 저편으로 아스라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투우 장면을 그린 그림 앞에서 마네는 더는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혼란스러워했었다. 유화용 칼을 집어 들어 그림을 찢어발기기도 했다. 잘려나간 그림은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 「투우 경기장 전망」과 「투우사」였다. 두 조각으로 나뉜 그림은 펼쳐진 채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끝났다. 이제 그림은 없어진 거나 다름없다. 마네는 남은 부분마저 없애버렸다.


“꼭 이렇게까지 악다구니를 써야만 하나?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나.” 드가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래서 뭘 어쩌라고?”


“그러니까, 두 사람이 결탁한 침묵을 없애버리라는 뜻이네. 팡탱은 조용히 내버려두게. 그 순진한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불로뉴 앞바다의 케아르사르쥬 호(Le Kearsarge à Boulogne Sur Mer)」, 1864.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돌고래들과 배(Les marsouins marine)」, 1864.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순풍에 돛 단 고기잡이배(Le Bateau de pêche arrivant vent arrière)」, 1864.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고요한 순간 바다 풍경(Vue de mer, temps calme)」, 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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