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55화
[대문 사진] 나다르(Nadar)가 그린 토레 버거(Thoré-Burger)의 캐리커처
7장 6
(1864-1865)
마침내 모두가 서로 합의한 듯 마네를 몰아세우면서 생각지도 못한 고통을 주는 가운데 그들이 쌓은 증오의 벽에 균열이 발생하여 틈이 생겼다. 1848년에 프랑스에서 추방당한 테오도르 토레는 벨기에로 망명했다. 테오도르 토레는 일명 윌리엄 버거란 필명으로 글을 쓰며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벨기에의 독립」이란 글에서 마네를 두둔하는 글을 싣고 마네 편에 선 것이다.
실상은 보들레르가 마네야말로 희생자가 된 것이 아주 부당한 일이라는 점을 테오도르 토레에게 일러준 탓이었다. 그런 연유로 토레는 신중하게 자신의 저서에서 마네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열렬히 반박하고 나섰다. 토레는 들라크루아의 작품들과 마네의 초기 작품들을 비교하면서 마네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기법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마법사”의 자질을 타고났다고까지 극찬했다.
마네야말로 진짜 화가라는 것이다. 마네가 라이몬디, 라파엘로, 티치아노, 고야, 벨라스케즈 등과 같은 화가들이 사용한 기법들을 나름대로 자신의 작품에다가 이를 적용했다고 누누이 설명을 덧붙였다.
이를 안 보들레르는 적잖이 불안해졌다. 그렇잖아도 사람들이 마네를 남의 작품이나 표절하는 범죄자로 몰아붙이는 판국에 벌어진 일이라서 더욱 걱정이 앞섰다. 보들레르는 마네가 과거의 작품들에게서 자신의 모델을 구했다는 마네의 주장을 비난하고 나섰다.
보들레르는 화가가 아닌 시인으로 그같이 판단한 것이다. 시인으로서 보들레르는 늘 인용이란 자체가 인용문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정도에서만 그쳐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마네를 옹호하기 위하여 보들레르는 테오도르 토레에게 마네는 일생에 고야나 벨라스케즈를 본 적이 없다고까지 단언했다!
보들레르의 주장은 믿을 게 못되지만, 시인으로서 마네가 곤경에 처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란 건 쉽게 수긍이 가는 일이다.
보들레르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패기에 넘치는 화가는 로마 상을 휩쓴 화가 군단과는 달리 스스로 혼자만의 힘으로 화가가 된 진짜 화가다.”
보들레르의 도움에 힘입어 마네는 결국 화가로서 인정을 받은 셈이 되었다. 벨기에에서만큼은 확실했다. 그러나 토레는 프랑스 사람이기도 했다. 어찌 됐든 마네에 대해 테오도르 토레가 언급한 것은 걱정과 불안에 휩싸인 마네에게는 최고의 위안으로 삼을 만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