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꽃 피는 계절은 7월이 절정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56화

by 오래된 타자기


7장 7
(1864-1865)



7월이 되자 마네는 파리를 떠나 불로뉴(Boulogne-Sur-Mer) 바닷가로 가고자 서둘렀다. 연어나 석화나 새우 같은 걸 소재로 하여 정물화를 그리면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 순간 마네가 바란 것은 오로지 사물들과 함께 하는 고요한 삶이었다.


네덜란드에서 꽃을 피운 정물화는 네덜란드인들이 붙인 이름만큼이나 마네가 네덜란드를 오가는 동안 더 없는 애착을 느낀 것 가운데 하나이면서, 마음속에 늘 자신도 그걸 한 번 제대로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것이었다.


바닷가에 온 뒤로 기분 좋은 중압감을 느끼게 되자 몇 점의 바닷가 풍경을 담은 그림들을 완성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아득한 과거부터 애착을 느껴온 바다에 대한 그만의 강렬한 인상들을 한데 결합시켰다.


마네는 최근에 수입된 꽃 품종 가운데 모란꽃에 홀딱 빠져들었다. 꽃잎 색깔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했고 향기는 신비롭기만 했다. 풀을 베어 말리는 계절은 느리고 길게만 느껴졌으며, 색다르기까지 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모란은 이때 그림 그리기 가장 좋은 모습을 한 채, 여름 한낮의 옅은 잠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모란이 꽃 피는 계절은 7월로 끝난다. 마네가 서두른 이유 중 하나다. 마네는 모란꽃을 자신이 숭배하는 물신의 대상으로까지 삼았다. 게다가 그의 덧없는 삶 가운데 모란꽃은 죽음을 예정하고 있었다. 8월에 쥬느빌리에흐로 돌아가면 다음 계절을 위하여 흰 라일락 옆에다가 모란을 심고자 맘먹기까지 했다. 그곳에서 모란꽃 향기를 맡으며,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마네가 모란꽃을 소재로 하여 그린 정물화들, 「작은 탁자 위의 모란 화병」, 1864-1865(왼쪽)과 「흰 모란꽃」, 1864(오른쪽).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정물화 「배 2개(Deux poires)」, 1864.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해산물을 소재로 한 정물화(Nature morte au poisson)」, 1864.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장어와 생선」과 「연어와 새우」, 1864.


꽃가게에 상궤를 벗어날 정도로 돈을 물 쓰듯 하는 새로운 유행을 따라 하길 좋아하는 반은 활량인 사람들 덕분에 화초를 잘라 내다 파는 꽃시장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그와 함께 자연 꽃의 상징을 다룬 말들도 생겨났다. 뭐라 감히 중얼거릴 수조차 없던 것에 꽃다발(부케)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꽃을 매개로 한 말들을 서로 주고받았다. 사유, 걱정, 초조 같은 말들을 꽃에다 갖다 붙이기도 했다. 꽃의 언어를 발명해 낸 것이다. 예술가들에게도 뜻밖의 수확이었다.


팡탱을 먹고 살게 만든 것이 바로 이 수다쟁이꽃들이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복사화가였던 그가 꽃을 그리는 화가로서 유명해진 것이다. 그가 그린 꽃다발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만들었으며, 부인네들로 하여금 넋을 잃게 만들었고 꿀벌들을 찾아오게까지 만들었다!


꽃 이외에는 다른 건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회화에서 꽃을 빼면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특정한 인물들은 그들의 화신들로 대체되었다. 천국의 열매로 숭배의 대상이 된 체리들은 빅토린느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으려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지팡이, 레몬 혹은 고양이는 화가를 대신했다.


이번에는 마네의 차례가 되어 공쿠르 형제가 ‘스케치’를 돕기 위해 마네의 집에 초대받았다! 각자의 차례라! 비 온 김에 물 뿌리는 식이다. 영광이라고? 아니 명예스럽지 못한 일이었다.


에드몽과 쥘 공쿠르 형제는 꾸뛰흐 아틀리에 출신 화가들이 주인공들인 책을 펴냈다. 또한 더욱 기가 막힐 노릇은 책에다 화가들의 작품 모델들이 전부다 천한 여자들뿐이라고 평했다. 빅토린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의 저서에서 솔로몬의 손잡이라 불린 화가는 마네와 거의 닮은 꼴을 한 작중인물이었다.


끊임없이 쥘과 에드몽은 마네를 물어뜯었다. 거의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집요하기만 했다. 너무도 예의 바른 마네였지만, 더 이상 참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갑자기, 고마울 것도 없이 그들 형제가 마네를 귀찮게 들볶는 짓을 그만두었다.


공쿠르 형제는 비록 옛 그림에 관해서였기는 하나 회화에 정통한 이들이었다. 그들의 탁월한 감각으로 망각 속에서 찾아낸 인물이 바로 잊힌 화가들이었던 부셰와 프라고나였다! 앵그르와 들라크루아에 대해서는 거의 혹평으로 일관했다!


마네는 조용히 잠을 청할 수 있게 되었다. 공쿠르 형제가 저술한 책이 출판되면서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어 실력을 인정받는 화가로 자리매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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