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57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폴 가바흐니가 묘사한 매춘부(La lorette), 1842.



7장 8
(1864-1865)



천천히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마네는 결혼한 남자의 삶에 젖어 들어갔다. 마네는 이제 더 이상 빅토린느에게 매달리지 않았다. 그녀가 아틀리에를 떠나버린 뒤에 몹시도 그녀를 찾아 헤매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 그를 그녀는 직감했다.


“그녀가 다녀갔다.” 나다르의 작업실을. 정부이자 모델, 그녀는 그 둘 모두였다. 사진에는 그녀의 사치스러운 모습이 담겨있었다. 몸에 찰싹 달라붙은 바지를 입은 차림으로 그녀는 사진가의 작업실에서 소란과 난동을 피우기까지 했다.


폭발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오펜바흐는 단 10분도 포즈를 취할 수 없을 만큼 인내심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긴 해도 오펜바흐는 엄연히 마네의 이웃사촌이었다. 생 쉴피스의 종교적 윤리에 몸이 밴 오펜바흐는 마네에게까지 엄격하게 행실이 올바르기를 강요하기 일쑤였다.


Jacques Offenbach, Affiche.jpg 마네의 이웃사촌이었던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여자는 선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 순결한 처녀의 몸으로 결혼을 해야만 한다는 게 오펜바흐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결혼한 뒤로도 여자는 어처구니없게도 남편으로부터 정숙을 강요당하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윤리를 강요받게 된 것이다.


간통은 오직 남자에게만 허용된 것이고 남자들만이 오직 쾌락을 즐기기 위해 돈 주고 여자들을 살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으며, 이따금씩 화류계의 여자들과 놀아날 수 있는 특권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남자들이 속한 사회에서 능욕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파리 시당국은 약간이나마 창녀촌을 허용했다. 하지만 심각한 사회적이고도 종교적인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이유로 간통이나 자유연애는 여자들과 빈자들에게만큼은 금지되었다.


만일 마네가 사회적으로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여자를 임신하게 만들어 그녀를 절대 버리지 않은 채 결혼에까지 이른다면, 그는 아주 독특하게도 다정다감한 감성을 소유한 자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반대로 못난 인간들은 가련하게도 한 여자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이 여자 저 여자 가리지 않고 애를 배게 하는 것도 부족하여 또다시 여자들을 찾아 헤매기 마련이다. 마네는 이런 점에서 스스로 설정한 규약에 따른 신념이 너무나도 확고했던 정말 예외적인 인간이었다.


중산 계급의 출현은 여자들로 하여금 풍기나 풍속에 따른 암묵적인 규범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게끔 만들었다. 새로운 형태의 매춘은 발목 끝까지 보여주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다.


매춘굴과 잘난 체하는 남자들을 쩔쩔매게 만드는 내로라하는 화류계 여자들 또한 급증함에 따라 여자들 또한 어느 신분에 속해있건 간에 자유분방하게 쾌락을 즐기게 되었다.


오늘날에 와서 보면, 그리 비장할 것도 없고 죄를 지을 만한 일도 아니지만. 사회 최하층에 속한 이들이 가련하고도 비참한 불행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자신의 성을 파는 일밖에 없었다. 물론 성을 팔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또는 사악한 흉계를 꾸며서 간음의 대가로 상대방을 이용하여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있었다.


운 좋은 여자들, 재주가 있는 여자들, 대담한 여자들, 지나칠 정도로 애정이 넘치는 여자들 가운데 나이 서른도 안 되어 폐병을 앓다가 사망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상류사회에 속한 남자이거나 부자를 만나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점차로 도심이 정비되면서 라 로레트(la lorette)라 부르는 매춘부가 노트르담 구역에까지 밀고 들어왔다. 노트르담은 화류계 여자들이 드나드는 장소를 가리키는 이름과도 같았다. 매춘부의 정부는 아르뛰르(Arthur)라 불렸다. 복수 형태로 아르뛰르(Arthurs)란 이름이 흔했던 이유는 그들 모두가 서로 매춘부를 차지하려고 한꺼번에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로레트라 불린 매춘부는 나름 그 방면에서 확실한 성공을 거두고자 부르주아 성씨로 변장한 채, 자신의 신분을 은폐하기까지 했다. 또한 사람들이 자신을 대단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여자로 생각할 정도로 신분을 철저히 숨겼다. 그럼에도 매춘부들은 젊은 나이에 세상 모든 이들로부터 버려진 채, 돈 한 푼 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각 사회 계층마다 매춘부를 일컫는 용어도 다양했다. 거리의 창녀, 명함을 소지한 창녀, 매춘부, 바람기가 있는 젊은 여자, 매춘굴에서 몸 파는 여자, 화류계 여자를 가리키는 암탉 등 참으로 다양하기만 했다.


마네 친구들이 묘사한 창녀들의 삶의 모습에 비춰보면, 창녀들은 자주 예술가들의 여신 노릇을 톡톡히 했다. 오펜바흐는 「파리지앵의 삶(La Vie parisienne)」에서 자유분방한 화류계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했다.


Jacques Offenbach, La Vie parisienne.jpg 오펜바흐의 「파리지앵의 삶(La Vie parisienne)」 공연 포스터.


창녀들을 찬양하는 예술가들 덕분에 남자들이 무릎을 꿇고 그녀들의 발에 입을 맞추는 행운을 거머쥐었을 뿐 아니라, 항상 스캔들을 일으킨 관계로 행운도 따랐으며, 그럴싸한 비밀결사체의 우상이 되는 영광도 누렸다.


이보다 더 대단한 일은 세기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점이다. 내로라하는 여인네들이 앞다투어 그녀들을 부러워하고 시샘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그녀들은 독립적인 삶을 구가하면서 대부분 교양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곧잘 흥분을 유발하는 특별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어느 누구도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구가하고 있었다. 대단한 자유, 너무나도 자유분방한…….


매춘부의 사회에서 이름깨나 알려진 여인들은 사교모임을 위한 살롱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페라 홀 부근에 숙소까지 갖춰놓은 여자들도 있었다. 그녀들은 아름다움을 즐기는 법을 터득한 이들이었음은 물론 예술적 소양까지 갖춘 이들이었고, 간혹 이 방면에서 최고의 자질을 갖춘 여자들은 작위를 지닌 대단한 귀족과 결혼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상류층에 속한 화류계 여인들인 꾸흐티잔느(courtisanes), 역시 화류계 여자들인 암탉이라 불린 꼬꼬뜨(cocottes), 암사자란 뜻의 리온느(lionnes), 고관대작의 수족 노릇을 하는 여인들, 저명인사의 첩들, 이름깨나 알려진 매춘부들, 비버 모피를 두른 여인들, 침실에서 별별 짓을 다하는 여자들, 제2제정 제국의 인기 스타들, 상궤를 벗어난 온갖 괴상망측한 짓으로 유명해진 이들, 이 ‘파리의 여왕들’은 아무런 구속이나 제약을 받는 일없이 제멋대로 풍기 문란을 일으킬만한 소지가 충분한 온갖 향락을 부추겼다.


또한 서민층 뒷골목 출신들이 그들의 유일한 무기인 성 하나만으로 점점 빛의 도시를 점령해 가기 시작하면서 계산대 서랍을 가득 채울 만큼 값어치를 지닌 ‘황금 야수’로 떠올랐다.


당시 파리 경찰청에 등록된 매춘 일을 하다 처벌받은 여자들이 5천 명에 달했으니 약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이와는 달리 다소간 3만 명에 이르는 여유가 좀 있거나 신분이 분명한 여자들은 비밀리에 영업하는 곳에서 등록하지 않은 채로 일하거나 여자를 밝히는 호색한들에게 몸을 팔았을 것이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몸 파는 아가씨들로 온통 이끼가 낀 타락의 진창과도 같았다.


천방지축 몸놀림으로 무수히 스캔들을 일으켰던 여자들 가운데 카롤린느 오테로란 끓어오르는 열정에 넘친 스페인 무용수가 있었다. 그녀는 마치 승리의 전리품인양 목에 여러 줄의 진주 목걸이를 주렁주렁 매달고는 자랑스러운 듯이 이를 과시하고 다녔다.


여자는 일반인들에게 사치품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여자는 사냥개나 승마용 말, 또는 말과 수레와 같이 자신이 부유하다는 사실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기 위한 호사스러운 사치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상야릇한 호텔을 드나들 때 말과 수레를 맡기는 장소에서 자신이 부유하다는 걸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인네들이 활용되었던 탓이다.


이런 여자들은 남자들과 동반함으로써 마치 주가가 상승하는 주식처럼 자신의 값어치도 동반 상승하기 일쑤였다. 공공연하게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금지되었던 탓으로 상류층 화류계에 속한 여자들은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했다. 행실이 불량하다고 낙인찍힐 일은 없었던 탓으로 그녀들은 정부를 축첩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는 신분 상승을 노린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우아하고 멋진 여성은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현금과도 같은 지폐였다. 따라서 이런 여자들을 많이 거느리면 거느릴수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여자는 서명보다도 더 값어치가 있었다.”


남자가 돈을 지불할 때는 여자가 확실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라 파이바란 여자는 1만 프랑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애인을 다른 이에게 넘기기도 했다. 그리고 돈다발이 어차피 불에 타버리고 말 거라고 판단했는지 자신의 몸을 내던진 채, 지폐들을 한 장 한 장 불태우기까지 했다.


‘이름깨나 알려진 매춘부’들은 자기 과시욕에 빠져 돈을 물 쓰듯 쓰는 바람에 모처럼 찾아온 행운을 날려버리기 일쑤였다. 코라 펄은 자신이 기르는 개들을 위한 화장실이 딸린 목욕탕을 짓고 개들에게 샴페인 목욕을 시킬 정도였다.


퇴폐에 물든 폐해와 사치는 교묘하게도 타산적인 목적에 따른 삶의 기술에 근거하고 있었다. 남에게 과시하고자 한 목적으로 소비의 대상이었던 상류층에 속한 화류계 여자는 하나의 상품에 불과했다. 당연히 파리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매춘굴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 또한 마찬가지다.


돈 많은 고객들은 연극의 장면들에서 보는 것처럼, 최신 유행으로 꾸며진 레스토랑들에서 그들의 취향에 맞는 상품들을 골랐다. 파리 인근의 불로뉴 숲 또한 상품들을 경매하고 입찰하는 장소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 누구보다도 윤리의식이 강했던 막심 뒤캉은 이러한 매춘 행위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나섰다. “모든 연극 극장들이 매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칸막이가 되어있는 관람석들뿐 아니라 심지어는 무대에 이르기까지 매춘이 성행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매춘은 마치 경매로 나온 테이블을 최고 입찰자에게 판매하는 식이다.” 뒤캉은 옛날에 빈번하게 이루어진 매춘의 경우들을 언급하기까지 했다.


가장 선정적인 스캔들을 일으킨 장면은 무대에 선 여자들이 몸에 찰싹 달라붙는 옷을 입었을 때였다. 몸매가 그대로 드러난 옷차림에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걷잡을 수 없는 성욕을 느꼈다.


“화류계 여자들과 우리들 간에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는 아랫도리를 우리 손으로 씻는다는 점이다.”


남자는 자신의 아내에게는 흠잡을 데 없는 정숙함만을 요구하는 대신, 자신의 정부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과도한 에로틱한 자세만을 요구한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었다. 화류계 여성들의 옷차림이 최대한으로 선정적일 것을 요구당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순진한 모습을 보여주는 옷차림만으로는 부족했다. 정결한 모습이거나 그와 같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옷차림이어선 안 되고, 오직 상상을 초월하는 성적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차림이어야만 했다. 오로지 먹잇감을 쫓아 내달리는 한 떼의 사냥개들과도 같은 남자들을 쉽게 길들이기 위해서는 더욱.


새로이 등장한 중산 계급에 속한 젊은 매춘부는 우중충한 색깔의 싸구려 옷을 걸쳐서는 안 되고, 모가도르에서 만든 옷들을 입어야만 했다. 라 파리바에서 만든 옷이면 더 좋았던 것이 옷감이 끝없는 성적 쾌락을 불러일으키기에 적당했으며, 매일 더 강렬한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옷으로 갈아입어야만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흔히 대학생과의 사랑으로 청춘을 불태우기 시작한 매춘부는 서른 살이 되면 결혼 조건으로 처녀일 것이 요구되면서 사랑하던 남자를 포기한 채 병에 걸려 죽고 만다. 그러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화류계의 여자가 된다. 그러고는 호화로운 저택에 살도록 그녀를 물씬 양면으로 도와줄 수 있는 유력한 인사를 정부로 손에 거머쥐고자 꿈꾼다.


그녀는 또한 대로를 휘어잡는 암사자 같은 여인의 경력을 쌓고자 시도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간혹……. 꿈꾸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황제의 정부 또는 유명 인사의 정부였던 마담 사바티에같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보들레르의 저 유명한 정부였던 마담 사바티에는 고티에의 성적 파트너이기도 했다. 살롱을 운영하던 화류계 여인들은 당대의 내로라하는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의 둘도 없는 파트너였다.


화류계에서 신분 상승을 위해 정부를 두고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도 없었다. 완전한 미로였다. 정을 둘만큼 진지하고 점잖기만 한 신사였던 아르튀르는 창녀의 단골손님이자 여자에게 돈 잘 쓰는 사나이로 소문난 남자였지만, 그조차도 시궁창 속에서 건져낸 여자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나락의 심연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때가 되면 빅토린느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모델이 되어 포즈를 취했다. 그녀에게는 어떠한 회한에 섞인 표정이나 위선적인 태도도 없었다. 그녀에게서 기대하는 역할이 무엇이든지 간에 다 소화해 낼 수 있는 여주인공처럼 모델로서 대단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결혼한 이후로도 마네는 자신의 정부에게 여전히 노골적으로 관능적인 자세를 취할 것을 주문했다. 그녀 역시도 화가나 시인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이 되었을 따름이다. 세상 남자들이 생각하고 하는 짓이 다 그런 것처럼. 아닌가?


화가의 아틀리에에서 알몸으로 포즈를 취하던 여자는 모두 다 몸을 파는 화류계 여인들이었다. 빅토린느의 경우는 아주 매혹적인 몸매였을까?


“알몸을 한 여자는 전혀 추잡하지가 않습니다. 단지 옷을 벗어던져버린 것에 불과하니까요.”라고 디드로는 운을 뗀 뒤, “당신 앞에 있는 여인이 메디시스의 비너스라고 가정해 보세요. 그녀의 알몸이 당신께 뭐라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까? 두 발에 아름다운 자수가 놓인 예쁜 실내화를 신겨보세요. 그녀의 허벅지엔 분홍 색깔의 대님을 매어주고 하얀색 스타킹은 팽팽히 당겨진 채, 그러면 당신은 단정함과 그렇지 않은 차이를 깨닫기까지 할 것입니다.”


마네의 「비너스」에 대한 이보다 더 지적인 비평이 가능할 수 있을까? 마네는 무엇 때문에 「비너스」가 전시되는 걸 두려워했을까? 마네의 생각의 근저에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품을 출품하면서부터 맞닥뜨릴 지나칠 정도로 공격적인 반응에 대한 두려움은 회화작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예술로서 승화된 화면이 우선적으로 야기할 스캔들 때문이었다.


마네는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이 더 이상 스캔들로 바라보거나 이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 자신도 불온한 선동자로 여기는 일이 없기를 바랐을 따름이다. 그는 오로지 회화에 대한 고매한 생각들을 스스로 고취하고자 갈망했을 뿐이다.